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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명예 초월한 19세기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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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명예 초월한 19세기 ‘공부의 신’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10.1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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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공부, 그가 사는 목표이자 살아있다는 증거
밥벌이 기예·개인 수양 연마에만 그친 현실
왜,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사유해야 하는가


발터 벤야민이 누구인지 꼬집어 말할 수 있을까.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살다간 벤야민.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글을 썼지만 특정 분야에 매몰되기를 거부했다. 한나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학식은 위대했지만, 학자는 아니었다. 원전과 해석에 관심을 가졌지만 언어학자는 아니었다. 종교 아닌 신학에 매력을 느꼈지만, 신학자는 아니었다. 천부적인 문장가이면서도 최대의 야심은 전부가 인용문으로 이뤄진 글을 써보는 것이었다. 프루스트와 생-존 페르스를 번역한 최초의 독일인이지만, 번역가는 아니었다. 숱한 평론을 썼지만, 문학 평론가는 아니었다. 독일 바로크 문학과 19세기 프랑스에 관한 방대한 연구를 남겼지만 문학가도 역사가도 아니었다.”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유>는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 모두이기도 했던” 벤야민이 사고하고 글 쓰는 법을 적은 책이다. 벤야민을 흠모하는 후배 학자가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벤야민의 일생은 오로지 공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는 그에게 노동이기도 취미이기도 특기이기도 했다. 그가 살기 위한 목표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방대한 글쓰기는 실험적 사고가 원천이었다. 이를 테면 지도 읽는 데 숙맥이었던 벤야민은 약점을 되레 강점으로 만들었다. “어떤 도시에서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며 낯선 도시를 배우는 그만의 기술로 바꾼 것이다. 나폴리 에세이와 모스크바 일기는 ‘지도 없이 여행하기’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벤야민 필생의 역작으로 불리는 미완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도 이런 생각이 엿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로로부터의 일탈인 것이 내게는 항로를 결정하기 위한 자료가 된다.” 그가 다른 이와 다를 것 없는 눈을 지녔더라면 모더니즘의 탄생지인 19세기 파리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해체하고 다시 맞춰가는 작업은 불가능했을 터다.


버려지고 말았을 광고 쪽지도 그의 손에 가면 훌륭한 원고지가 됐다. 그가 만든 이론인 ‘아우라’는 산펠레그리노 생수의 광고지에도 등장한다. 궁핍했던 파리 망명 시절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명함 뒷면, 도서대출 용지, 초대장, 여행 티켓 등 모든 종이의 여백을 활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종이의 특성까지 글쓰기에 반영하려고 고민했다. “학자들은 자신의 저작이 카탈로그처럼 읽히길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책을 카탈로그처럼 쓸 수 있게 될까.”


저자는 우리가 벤야민의 공부하는 법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대의 ‘공부’는 점점 더 밥벌이의 기예를 익히는 데만, 또는 개인의 ‘수양’을 연마하는 태도로써만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공부는, 그것이 비록 실험과 실패의 연속일지라도, 더 좋은 삶을 위해 자신과 더불어 이 세계를 호흡하는 모든 ‘존재’를 해방시키는 쪽에 서야 한다.”

<한국일보 제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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