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죄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니까”
상태바
“죄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니까”
  • 송 전 교수(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 승인 2014.10.13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극읽기 | ‘순전(純全)한 진실’

남아공 ‘소웨토’ 민중봉기 역사 속
고통당한 한 흑인 소시민의 이야기
국가 차원의 범죄에 어떻게 답할까?


과거 역사에 묻힌 국가 차원의 정치적 범죄와 그 범죄에 의해 피해 입은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 되어야 할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여러 차례 제기된 질문이고 여전히 그 답이 모색되고 있는 질문이다.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이나 5·18 광주시민항쟁에서부터 제주 4·3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한국 현대사 안에 알 박혀 있는 굵은 마디들에 대한 질문들이 그것들일 것이다.


최근 진행된 <2014 대한민국소극장열전>(대전, 광주, 대구, 부산, 춘천, 전주, 구미 2014년 9월16일~10월12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연극축전에 포함된 <아무 것도 아닌 진실(Nothing but the truth)> ― 이 연극 제목은 ‘순전한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이라는 연극은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 늘 연계되어 그 이름이 언급되는 넬슨 만델라가 개입된 사건이며 세계 현대사의 중요한 드라마 중의 하나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시민항쟁(소웨토 봉기)과 그 이후의 역사 흐름 속에 고통당한 한 소시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적 사건장소는 아프리카 남아공의 중요도시인 요한네스버그 부근의 한 소도시다. 이곳 도서관 부(副)관장인 63세의 시포 마카야는 딸 탄도와 함께 영국으로 정치망명을 떠났다 거기에서 사망한 동생 템바의 시신이 담긴 관을 기다리고 있다.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는 시포의 머릿속엔 여러 상념들이 스쳐간다. 이윽고 동생 템바의 딸인 만디사가 아프리카의 관습과 시포의 예상과는 달리 템포의 시신을 화장한 뒤 남은 한 줌의 재를 작은 단지에 담아 나타난다. 시포는 분노하고 어이없어해 한다.


시포는 여태껏 생후 18개월 때부터 홀로 키워왔던 딸에게 삼촌과 가정을 떠난 아내에 대해서 언급을 피해온 터였다. 동생의 장례절차를 둘러 싼, 갈등을 내포한 대화가 아버지와 딸 그리고 조카딸 사이에 이어지면서 감춰져있던 진실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 시포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에 늘 치여 살아온 온순한 성격의 인물이다. 부모는 늘 형인 그의 양보를 요구했고 동생 템포는 양보 받은 모든 것을 잠시 보유하다가 곧 내던져버리는 행동양태를 계속했다. 옷, 장난감, 여러 기회 등이 그랬다. 시포 자신은 경제적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부친은 동생의 대학진학을 위해 생명보험을 파기하여 돈을 마련해 주었고 입학 후 모든 학비를 시포가 힘겨운 노동 소득으로 챙겨야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백인의 로펌에서 오래 동안 보조원 생활을 했지만 흑인이기에 번번이 나이 어리고 경력 미천한 백인 후배들에게 밀려 도제(徒弟)가 되는 것도 실패한다. 진로를 바꿔 선한 여성 백인 공공 도서관 관장을 만나 도서관학을 뒤늦게 공부하고 하위직으로 출발하여 33년 동안 근무한 끝에 정년을 2년 앞두고 부관장의 지위에 오를 때까지 집안 경제를 도맡아 꾸리며 성실한 삶을 살아온 터이다.


동생 템바는 남아공 민주화 투쟁 영웅이다. 유창한 정치 웅변실력으로 군중을 선동하며 인기와 돈과 여자를 얻어낼 수 있었다. 템바는 안에서 보면 무위도식의 정치모리배랄 수 있지만 밖에서 보면 투사임이 분명하다. 시포에게 동생 템바는 애증의 대상이다. 문학도였던 시포의 아들은 소심한 아버지보다 박력 있는 삼촌에 매료되어 학생 신분으로 정치집회에 나갔다가 경찰 총에 맞아 사망한다. 또 템보는 형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형수와 놀아나다 현장에서 들키자 집을 떠나 추방당한 것처럼 영국으로 도피했고 아내는 젖먹이를 두고 시포 곁을 떠나버렸던 터였다. 영국에서 새로운 상대와 가정을 꾸린 템바는 원격조정을 통해 부친 장례식을 정치투쟁의 기회로 활용하여 시포를 분노와 좌절에 빠뜨리기도 한다. 오랜 세월 박해와 영어의 몸이었던 만델라가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남아공 대통령이 된 정치상항의 변화 속에서 템바는 모국귀환을 하지 못한다. 차마 형 앞에 설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비밀을 묻은 채.


백부(伯父)를 통해 부친의 치부를 알게 된 만디사와 동생 템바와 아내 사이의 소산으로 추정되는 딸 탄도의 오열 소리를 뚫고 정치 투사의 발에 짓밟힌 소시민 시포의 외침이 솟구친다. “나도 그 투쟁의 한 부분이었어. 흑인으로 나도 고통을 받았어.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행진을 했어. 감옥에 가진 않았어. 로벤 섬에 갇히지 않았어. 난 이 나라를 떠나진 않았지만 나도 고통 받았어. 매주 토요일 장례식에 참석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바로 나야. 최루 가스에 눈물을 흘리고, 경찰의 채찍에 매 맞고, 셰퍼드 개에 상처 입은 그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바로 나라고. 투투 대주교가 수많은 사람들을 포트엘리자베스 백인 거리로 이끌었을 때 그게 나였어. 내가 바로 그 수천 명의 사람들이야. 나 역시 보답을 받아야 해, 그렇지?”


시포는 “오래 전에 용서했다. 내가 원했던 건 [템바가] 집에 돌아오는 거였어. 내 앞에 서서 ‘미안해 형’하고 말하는 거였다.[…] 이 나라에서 백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용서할 수 있는데, 어떻게 내가 내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겠니”라며 동생을 그리고 “사랑해. 영원히 사랑할거야. 네[탄도] 엄마니까”라며 부정한 아내를 용서한다. 아울러 그는 아들을 죽인 자에 대해서도, 진실과화해위원회를 통해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진실을 밝힌다면 사면에 동의하겠다고 밝힌다. 그는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가장 나쁜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정치투사에게 빼앗긴 오랜 소망의 도서관장 자리를 포기하고 조기 은퇴하여 아프리카 문학 섹션이 한 가운데에 있는 소박한 ‘아프리카’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말로 삶의 남은 그림을 그린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랄 수 있는 1976년 6월16일 남아공 ‘소웨토(soweto)’ 민중봉기 역사를 담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연출가, 작가, 배우인 죤 카니(John Kani, 1943~)의 <순전한 진실>(2002)은 우리에게도 <진실과 정의>의 관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