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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일까 죽음일까? 다시 쓴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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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일까 죽음일까? 다시 쓴 잔혹동화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4.10.12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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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푸른 수염’

여덟 명의 여인을 죽였다는 남자
그의 화려한 저택에 뛰어든 아가씨
달콤한 유혹 속 비밀의 긴장감 팽팽


두 남녀의 치고받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본질적으로 연극적인 이 소설은 일관되게 등장하는 배경 또한 연극적이다. 매일 밤 벌어지는 호화 저택에서의 찬란한 저녁 만찬. 산처럼 쌓인 바다가재와 보드카를 곁들인 캐비아, 톨레도 크리스털 잔에 담긴 돔 페리뇽, 크룩 클로 뒤 메닐 같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최고급 샴페인.


끊임없이 먹고 마시며 주고받는 통통 튀는 대화는 유혹하려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는 여자, 사랑했던 여덟 명의 여인들을 모두 죽였다는 풍문의 살인자와 그의 아홉 번째 여인이 될지 모르는 미래의 희생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적이고도 스릴러적인 긴장으로 팽팽하다. 다시 쓰는 잔혹동화에 가장 어울리는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2012년도 장편 소설 <푸른 수염>.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등단한 지 20년째 되는 해에 발표한 스물한 번째 소설이다.


소설은 제목이 암시하듯 샤를 페로의 잔혹동화 <푸른 수염>을 변주했다. 비밀의 방 열쇠를 건네주며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던 귀족 남편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문을 열었다가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전 부인들의 즐비한 시체들을 보게 된 아내의 이야기를 노통브는 거의 원형 그대로 소설 속으로 들여온다. 벨기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온 25세의 아름답고 총명한 루브르 미술학교 비정규직 교사 사튀르닌이 주인공. 친구의 허름한 자취집 소파에서 매일 밤, 잠을 자야 하는 이 가난한 아가씨는 월세 500유로에 파리 중심부에 있는 대저택의 대리석 깔린 방을 빌려준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간다.


면접 대기실에는 귀부인 차림새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이미 열다섯 명이나 자리하고 있지만, 방을 얻는 건 초라한 행색의 사튀르닌. 정녕 방이 필요해서 온 사람은 그녀뿐이고, 나머지 여인들은 20년간 그 방에 묵었다가 실종돼버린 여덟 명의 여인과 그 여인들을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택의 부자 주인을 만나보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저렴한 월세와 사진 암실 문만 열지 않으면 된다는 의심스런 조건의 렌트였지만, 사튀르닌은 “난 결코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야”라는 자신감과 “실종되는 게 눈치 보이는 친구의 좁은 변두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덜 끔찍하다”는 이유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부모가 폭파 사고로 사망한 후 20년 동안 한 번도 저택 바깥으로 나간 적 없는 에스파냐 귀족 출신의 집 주인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는 매일 밤 사튀르닌에게 저녁식사를 청하고, 그녀의 당돌한 지성과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다. “전 당신의 여자가 아니에요”라고 선을 긋는 사튀르닌에게 “내 여자요. 오늘 아침부터는”이라고 단언하며 애정공세를 퍼붓는 이 위험한 남자는 결국 사튀르닌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운이 나쁘게도 수상쩍기 짝이 없는 남자에게 반해버린” 사튀르닌은 이제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남자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고자 하지만, 남자는 “도대체 뭘 알고 싶소? 그리고 뭘 차라리 모르고 싶소?”라고 되묻는다.


소설은 노통브 특유의 고딕 스타일에 걸맞게 그로테스크한 와중에도 재기발랄한 유머로 번득인다. 남성의 폭력에 기지로 항거하는 여성이라는 원전의 페미니즘적 의의를 계승하면서도 당위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남녀 간 매혹의 논리, 한 인간의 삶에서 비밀이 갖는 의미 등 여러 겹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작가적 엄격성과 다산성은 통상 충돌하는 개념이지만, 아멜리 노통브는 다르다. 매년 가을이면 신작을 발표하는 이 성실한 다산의 작가는 매년 3, 4편의 소설을 집필하고 그 중 한 작품만을 골라 출간한다. 원고의 낱알까지 탈탈 털어 썼다 하면 출간하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원고의 바다 한가운데 있으면 세상에 내놓기 적당해 보이는 것이 눈에 띈다”는 게 이유다. 그는 긍지를 담아 스스로를 ‘과잉 생산 활동 중인 인간’이라고 부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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