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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 구하는 자, 온 세상 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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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 구하는 자, 온 세상 구하리
  • 강수돌 교수(고려대 경영학부)
  • 승인 2014.10.06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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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동무사회 | 홀로코스트



위안부·용공조작·광주학살 등 현대판 홀로코스트
한국에서 해마다 닭 4억·돼지 1600만 마리 살육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에 대한 감수성’ 가져야


원래 홀로코스트(Holocaust)란 ‘완전 소각’이란 어원을 가진 말로, 대량학살을 뜻한다.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는 1933년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은 나치당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1945년까지 유대인 등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사람이 사람을 학살하다니, 그것도 대량으로 말이다!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과거 역사를 굳이 여기서 들먹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올바로 애도, 성찰하고 그 위에서 올바른 삶을 영위할 때 비로소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명언도 있지 않던가. 결국, 현재와 미래를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끔찍한 과거의 역사조차 기억 속으로 불러내야 한다.


“(강제 노동수용소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에서 그(마르크 버코위츠, 동물생명권 운동가)는 어머니와 (쌍둥이) 누이 하나가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어요. 그는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죠. 만약 그랬다가는 그도 죽음을 당해서 결국은 그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도 구할 수 없게 될 걸 아니까요.”(안네 뮐러, 야생동물보호 운동가)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요제프 멩엘레는 당시 12세였던 버코위츠와 그의 쌍둥이 누이를 쌍둥이 실험용으로 선택해, 척추수술을 받게 했다.”(찰스 패터슨, <동물 홀로코스트> 저자)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어린 딸 둘이 나치의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고 말해주었어요.”(루시 카플란, 인권변호사)


이런 식의 학살 경험담은 한도 끝도 없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런 인류의 비극이 다른 형태로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가? 따지고 보면, 일제 아래서 조선 민중이 받았던 억압과 학살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흔히 ‘종군 위안부’라 불리는 수십 만 명에 이르는 한·중·일, 베트남 등 주로 아시아 여성들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끌려가 심신을 유린당하고 죽임을 당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 해방 이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비판적 지식인, 떠돌이 노숙인, 무고한 양민들이 마을마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씩, 전국적으로는 수십만 명이 국군이나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 박정희 개발독재 아래서 자행된 수없이 조작된 ‘간첩, 좌경·용공 조직사건들’도 바로 그런 것이다. 가까이는 1980년의 광주학살이 또 그러하고, 더 가까이는 최근의 세월호 사태가 현대판 ‘홀로코스트’들이다.


한편, 우리의 시야를 돌려 가축 내지 동물의 세계로 가보자. 게일 아이스니츠가 쓴 <도살장>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1억 100만 마리의 돼지, 3700만 마리의 소, 400만 마리 이상의 말, 염소, 양, 그리고 80억 마리 이상의 닭, 칠면조가 대량으로 도축, 공급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렇게 대량 학살되는 동물들의 생명권에 대한 인식이 없이, 유명 연예인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고기를 맛있게 먹는 광고를 한다는 사실, 또 일반 대중들은 그런 광고를 보고 나도 저걸 먹고 싶다며 나서는 일이다. 이런 현실이 한국이라고 다를까? 한국도 규모는 미국보다 작겠지만 기본 패턴은 유사하다. 예컨대, 한국에서 닭은 해마다 약 4억 마리가, 돼지는 1600만 마리가 살육된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되고 빠른 시간에 대량으로 살육되며, 빠른 시간에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맛있게 소비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해외 각국에서 동물권 또는 생명권 보호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앞의 인용이나 뒤의 인용에 나온 사람들도 모두가 그런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가족 또는 생존자의 가족들이다. 그들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부나 사람들이 당신 가족이 쓸모없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야만적 폭력을 행사해서 당신 가족을 죽였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런 사실들을 자라면서 알게 된다면, 당신은 곤경에 빠진 사람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안네 뮐러)


“나는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어간) 내 어머니의 묘를 (내가 보호 운동을 하는) 캐나다 거위에게 바칩니다. 어머니는 아직 무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덤을 갖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거위에게 봉헌할 것입니다. 나 또한 거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마르크 버코위츠)


“인간에게 가해진 극도의 잔혹함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그것이야말로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교훈 아닌가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인간 이하’라고 판단한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했어요. 지금 우리가 동물에게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바바라 스태그노)


“(나는) 종을 가리지 않고 다른 생명체를 구조하고 돕는다. 그때마다 ‘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전 세상을 구한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음을 느낀다.”(수잔 칼레브)


그렇다. 다른 생명체가 학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온 세상을 구한다’는 신념으로 사람이건 동물이건 생명체를 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소수 나마 있다. 비록 작은 수이지만 이것이 희망이다.


“동물을 지키려고 뭔가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중에 10%만 있어도 혁명은 가능합니다.”(안네 뮐러) 생명에 대한 경시와 학살을 ‘더 이상 여론이 용인하지 않는 시대’가 와야 한다는 말이다. 여론이 중요하고 풀뿌리가 중요하다. 결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하게’ 즉, 무감각하게 살아선 안 된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오늘 저녁 밥상부터 잘 살펴보고 뭔가 하나씩 바꾸어야 하며, 동시에 주변에 고통 받는 이웃들을 찬찬히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볼 일이다. 그것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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