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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마담 ‘국무총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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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마담 ‘국무총리 잔혹사’
  • 라제기 기자
  • 승인 2014.07.1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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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이슈 |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
1994년 4월 김영삼(맨 앞줄) 대통령과 이회창(오른쪽 세번째) 국무총리가 교육부 업무보고회에 참석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충돌은 국무총리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한국일보
1994년 4월 김영삼(맨 앞줄) 대통령과 이회창(오른쪽 세번째) 국무총리가 교육부 업무보고회에 참석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충돌은 국무총리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한국일보

총리실만 15년 근무하며 총리 18명 겪어본 저자

허울뿐인 총리제 비판, 출간 13년 현실은 제자리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 정두언 지음 | 나비의활주로 펴냄 | 1만3000원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 정두언 지음 | 나비의활주로 펴냄 | 1만3000원

"정부조직법상 국무총리는 상당한 지위와 권능을 부여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총리들은 ‘얼굴마담’ ‘방탄총리’ ‘의전총리’로 전락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회에서 정치적·정책적 책임을 추궁 당하고, 국민들로부터 용도 가치가 떨어지면 폐기 처분되는 소모품에 불과한 적이 많았다."

시의적절한 언급이다. 그렇다고 최근에야 등장한 지적은 아니다. 신간 정치 서적이 품고 있는 문장도 아니다. 2001년 5월 출간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13년이란 제법 긴 시간이 지났어도 국무총리의 지위와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위 문장들은 역설한다. 나아가 제도 개선과 운영에 대한 성찰도 정치권에서 그 동안 그리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세월호 참사로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하고 두 명의 총리 지명자가 등장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비판에,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친일 역사관을 지녔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각각 스스로 물러났다. 역설적으로 두 달에 걸친 총리 공백 사태는 총리 무용론에 힘을 실어줬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두 달 동안 총리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국정이 돌아갔다"며 "총리는 국무조정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말했다.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는 대한민국 총리의 이런 어정쩡한 위치와 무기력한 존재를 증언한다.

저자는 정두언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행정고시로 관계에 들어온 뒤 20년을 공직에 있었다. 총리실에서만 15년을 근무하면서 제5공화국 유창순 총리부터 국민의정부 박태준 총리까지 열여덟 명의 총리 밑에서 일했다. 평균 재임 기간이 채 1년도 안 됐던 단명 총리들과 일하며 저자는 총리제의 허를 봤다. "국무총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고 한다. 하지만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 국무총리라는 자리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책은 일갈한다.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는 총리로 시작해 총리로 끝을 맺진 않는다. 저자가 공직에서 느낀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성을 기술하기도 하고, 정부 부처 내의 지역차별을 다루기도 한다. 총리제에 대한 평가와 역대 총리에 대한 품평은 책의 일부이긴 하나 단연 눈길을 끈다. "총리실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자신이 겪은 실상을 전하기에 총리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는 평이 따른다.

저자는 실명으로 누가 최고의 총리였고 최악의 총리였는지 명확히 거론하진 않는다. 다만 "강영훈, 이회창씨를 총리로서 자기역할을 충분히 한 사람"으로 꼽는다. "제도상으로 부여된 총리의 권한과 기능을 제대로 행사한 분들"이라는 이유에서다.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총리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대통령의 입장을 헤아려 알아서 처신하거나, 아예 정권의 실세들에게 굽실거리는 총리들도 적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1990년대 초 남북총리회담 당시 정원식 총리가 북한의 연형묵 총리에 대해서 이름만 총리지 당 서열이 10위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건 남한도 똑같지 않나?’"

책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의 충돌을 다룬 부분이다.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총리실이 배제되자 이 전 총리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논의사항도 총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맞불을 놓는다. 결국 충돌은 이 전 총리의 퇴진으로 이어진다.

교수 시절 저자에게 연구비 관련 리베이트를 전하려 했던 당사자가 총리가 된 사연도 담겨있다. 총리 취임 인사 자리에서 저자가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하다가 얼른 말끝을 얼버무렸다는 서술에선 냉소가 나올 만하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학자 출신 총리들은 공무를 수행하는 데는 무능한 경우가 많다. 그 중에 한두 분은 교수 시절에도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산 분들이다 〔…〕 나는 이런 분들을 공직에 기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을 낸 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아래에서 정무부시장을 지냈고 2007년 이명박 대선후보 전략기획팀장과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보좌역으로 이명박 정부 설립에 힘을 보탰다. 허울뿐인 총리제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주요 참모가 정권의 기초 설계에 참여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제는 참여정부보다 더 유명무실해졌다. 정치의 아이러니다.

정치학자와 정치평론가에게 대한민국 대통령과 총리의 위치를 다룬 양서 추천을 추가로 부탁했다. "총리제를 다룬 책이 거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름뿐인 총리제의 냉엄한 현실을 출판계는 그렇게 대변하고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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