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조선 후기에서 프랑스 근세로
상태바
조선 후기에서 프랑스 근세로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4.07.15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여행 | 보화각展·오르세미술관展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세종인’ 모임 회원들이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 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세종인’ 모임 회원들이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 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은근하지만 강렬한 에로티시즘 ‘미인도’

인상주의의 보고 오르세미술관 옮겨와

‘문화·예술 사랑하는 세종인’ 문화여행

 ‘미인도’ 신윤복, 114×45.5㎝, ⓒ간송미술문화재단
‘미인도’ 신윤복, 114×45.5㎝, ⓒ간송미술문화재단

"화가의 가슴 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 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盤薄胸中萬化春 筆端能言物傳神)" 혜원(蕙園) 신윤복이 ‘미인도(美人圖)’에 쓴 제화시(題畵詩)다.

‘미인도’가 첫 외출을 했다. 그림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에서 2008, 2011년 두 차례 보름씩 전시했을 뿐 외부에 내보낸 적이 없었다. 이 그림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디자인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간송문화’ 2부 ‘보화각’ 전시에서 선보였다. 보화각은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수집해 유출을 막은 간송(澗松) 전형필이 1938년 건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다.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그림 앞에 서니 촬영스텝도 ‘감동’을 받았다는 윤복 역 김규리(김민선)의 영화 속 뒤태가 중첩됐다. 왜 영화는 신윤복을 남장여성으로 그렸을까? ‘미인도’란 그림이 자아내는 상상력이 그만큼이나 풍부해서였을 것이다.

그림에 쓰인 제화시와 미인의 자태는 그녀가 혜원의 여인임을 짐작케 한다. 그녀는 귀족적인 자태에도 불구하고 분명 기방(妓房)의 여인이다.

국보 135호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성적 욕망을 30폭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선의 세기말 풍경일까? 혜원의 화첩은 당시 사람들의 호사와 향락을 노골적으로 담았다. ‘연소답청’(年少踏靑, 젊은이들의 봄나들이)은 탐욕의 노예가 된 양반집 자제들이 기생들을 조랑말에 태우고 나들이 떠나는 모습이 유머러스하다. ‘청금상련’(廳琴賞蓮, 가야금 소리 들으며 연꽃을 감상하다)에서 높은 벼슬아치로 보이는 이는 의관을 파탈하고 여체를 탐닉한다. ‘삼추가연’(三秋佳緣, 가을에 맺은 아름다운 인연)은 수위가 더 높다. 기생의 머리를 올려주는, 이른바 초야권(初夜權)을 사는 장면이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마담뚜 역할의 할멈이 ‘큰일을 치렀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술잔을 권하고, 남자는 상체를 드러낸 채 버선을 싣고 아랫도리를 여미고 있다.

‘미인도’의 여인은 <혜원전신첩>의 여인들과는 다르다. 요염하지 않다. 농탕질을 할 것 같지도 않다. 혜원이 제화시에서 밝혔듯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린다는 전신(傳神, 동양화에서의 초상화)의 의미가 그대로 느껴진다. 대상을 귀족여성처럼 귀하게 여긴 듯 자태가 다소곳하다.

가느다란 팔, 잘록한 허리가 요즘 시대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탐스럽게 얹은 가체(加),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짧고 타이트한 저고리, 거기에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가 물오른 여체를 상상하게 만든다. 뽀얀 볼 살과 목덜미, 살포시 오므린 입술이 앳돼 보이지만 큰 치마폭 아래 살짝 드러낸 버선발은 대상에 성적 매력을 부여한다. 청순미와 관능미를 동시에 표현했다. 은근하지만 강렬한 에로티시즘이다.

▲‘시인 외젠 보흐’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60.3×45.4㎝, 오르세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 ⓒwikimedia
▲‘시인 외젠 보흐’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캔버스에 유채, 60.3×45.4㎝, 오르세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 ⓒwikimedia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여인의 두 손이다. 한 손으로 옷고름을, 다른 한 선으로 노리개를 쥐고 있다. 미술평론가 손철주는 저고리 고름이 풀어진 채 밑을 향하고 있고, 고름을 풀 때 노리개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 손으로 노리개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옷을 벗으려는 순간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화가가 그림의 대상을 성애화(sexualization)하고 있는 셈이다. 화가의 욕망이 드러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인의 눈빛은 결코 에로틱하지 않다. 다소 멍할 정도로까지 느껴진다. 기꺼이 춘정(春情)을 팔아야 하는 조선 기생의 모습은 아니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권문세가의 자제가 탐닉했던 여인이지만 혜원이 진정 사랑했던 여인은 아니었을까? 혜원이 감히 가지지 못했던…. ‘미인도’는 그렇게 보는 이로 하여금 갖가지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그림, 불상, 서예, 자기류, 고서 등 114점으로 구성한 ‘보화각전’은 삼국시대부터 19세기까지, 작품만 봐도 한국미술사를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별 중요 작품을 골라 소개한다. 국보와 보물이 많다. 그림은 신윤복 외에 김홍도, 김명국, 정선, 이정, 김득신, 김정희, 장승업 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걸작을 망라했다. 서예도 한석봉, 김정희, 이광사 등 당대 명필들의 작품을 골랐다. 이번 전시는 9월 28일까지 이어진다.

‘보화각전’은 지난 5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세종인’(회장 박창수)의 7월 문화·예술 여행의 일환으로 모임 회원 20여 명이 함께 했다.

이날 여행 일정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 전’도 포함됐다. 클로드 모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폴 세잔, 앙리 루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 드가 등 거장들의 작품 175점이 전시 중이다.

이충건 기자 yibido@sjpost.co.kr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