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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의 인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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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의 인간학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4.07.1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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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읽기 | 레싱의 ‘현자(賢者) 나탄’

유대 처녀·독일출신 성당기사의 사랑이야기

이슬람·기독교·유대교 세 종교간 화해 겨냥

좌·우, 영남·호남 편협한 대립 돌아보게 해

송전 교수
송전 교수

십자군 전쟁은 유럽의 최고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기 하나님을 등에 업고 벌인 최초, 최대의 200년 종교전쟁(11세기 말~13세기말)이다. 이 200년 전쟁으로 약 2000만 명의 인명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가톨릭 측에서는 800년이 경과한 2002년 1월 교황 바울 2세가 종교적 오류가 야기한 대참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그 잔향은 21세기 현재까지 여전히 폭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대한 사건을 희곡 안에 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십자군 전쟁을 다룬 한 편의 연극이 있다. 독일 근대문학의 아버지이며 극작가이자 계몽철학자, 연극비평가, 신학자였던 레싱(1729~1781)이 쓴 <현자 나탄>이라는 드라마다. 최근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가 중후한 연기자들과 함께 이 작품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가츠가 그린 레싱의 초상화. 1767~1768년, 할버슈타트 글라임하우스 박물관 소장. ⓒwikimedia
가츠가 그린 레싱의 초상화. 1767~1768년, 할버슈타트 글라임하우스 박물관 소장. ⓒwikimedia

이야기의 중심 흐름은 한 유대인 처녀와 무뚝뚝한 독일출신 성당기사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사건의 시작은 제3차 십자군 원정 시기인 12세기 말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당대의 현자(賢者)이며 유대인 거상(巨商)인 나탄의 집 화재사건이다. 그가 긴 장사여행 차 장기간 집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해 아끼는 딸(레카)이 불타 죽을 순간, 마침 당대의 이슬람 현군(賢君) 살라딘의 포로로 잡혔다가 방면된 성당기사(쿠르트)가 현장을 지나다 그녀를 구해준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찬사와 감사도 거절한 채 떠나버린 기사에 대해 레카는 재회를 갈망한다. 그러나 기사는 일체의 접촉을 거부한다.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온 나탄은 어렵게 기사를 설득해 자신의 딸과의 만남을 유도한다. 그런데 첫 만남의 순간 기사는 그만 레카에게 반해 연정에 휩싸이게 된다. 레카 역시 신앙적 망상에 휩싸여 기사가 자신의 수호천사라고 굳게 믿어버린다.

한편 살라딘은 이 기사가 행방불명된 동생 아싸드와 너무 닮아 그의 처형을 면제 시켜준 터인데, 이 아싸드는 이 지역의 기독교 여성들에게 매우 인기 있었던 청년이었다. 전쟁 속에서도 인적 교류는 이뤄지고 사랑은 경계를 뛰어 넘는 법이니까! 살라딘의 여동생 시타 공주도 우연히 얻은 오빠의 초상화를 본 후 이 기사가 조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탄에게도 이 청년의 이목구비가 낯설지 않은 터이다. 그랬기에 기사가 레카에게 청혼을 해왔을 때 즉시 허용할 수가 없다. 이에 기사는 분노하고 나탄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생각한다. 그의 걸음은 그를 악용하려는 예루살렘 대주교를 향한다. 기사는 그러나 대주교의 추악한 거래(살라딘의 암살의도)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주님의 일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인간적 배신도 가능하다"는 거짓신앙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현자 나탄’(연출 김석만) 포스터. ⓒ극단 전설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현자 나탄’(연출 김석만) 포스터. ⓒ극단 전설

후반부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는 산뜻하게 풀린다. 성당기사의 부친은 살리딘의 동생이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해 독일출신 여성과 결혼 후 기사로 활동했다. 그의 사후 아들(쿠르트)은 독일의 외가로 가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해 나중에 성당기사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왔던 것이고, 딸(레카)은 나탄이 갓난이로 건네받아 유대교 처녀로 성장시켰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 아이(쿠르트)의 외삼촌인 기독교 기사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기독교 기사들에게 몰사 당한 뒤 절망 상태에서 건네받은 갓난이 레카를 신의 선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살라딘(모슬렘)-쿠르트(기독교)-레카(유대교)가 인척관계임이 드러나고 이들을 모두 감싸는 인물이 톨레랑스(관용)의 화신인 현자 나탄이다.

이 이야기는 세 종교의 갈등관계 해소를 겨냥한다. 오직 자신만이 진정한 종교라고 강변하기 보다는 종교의 본질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진실성을 증명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레싱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반지 우화를 원용한다.

어느 왕가에 가보(家寶)로 내려온 반지가 있었다. 이 신묘한 반지를 끼고 있는 왕은 선정을 베풀 수 있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어느 왕이 죽기 전 이 반지를 물려줘야 하는데, 똑같이 사랑하는 세 아들 모두에게 나눠줄 수가 없어 반지를 두 개 더 똑같이 만들어 나눠준다. 그가 죽자 자식들 사이에 반지의 진위를 가리려는 싸움이 벌어진다. 세 형제는 싸움에 지쳐 어느 현자를 찾아가 진위를 가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그 현자는 자신도 알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서로 정치를 잘해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이 왕을 칭찬하면 그 반지의 위력이 증명될 것이라고. 이 마법의 반지를 작품구도에 기발하게 적용한 레싱의 구성력이 빛을 발한다.

사랑의 열기에 휩싸여 유대 적대감을 드러내는 기사에게 나탄은 진지하게 묻는다. "기독교인, 유대인은 인간이기 이전에 먼저 기독교인이고 유대인인가?" 이 질문은 우파·좌파, 영남인·호남인, 남한사람·북한사람 등의 맹목적이고 편협한 대립 항에 계속 던져야 할 질문이다. 18세기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주의가 아직 맹위를 떨치던 시절 목사 아들이었던 레싱이 유대인 나탄과 모슬렘 지도자 살라딘을 긍정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그의 관용 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가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데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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