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선녀와 나무꾼’이 음식을 내온다면...
상태바
‘선녀와 나무꾼’이 음식을 내온다면...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4.05.30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천 맛집 | 구름나그네

주인장 부부, 월요일에 장사하지 않는 사연

고복저수지 옆 ‘산골할머니 댁’ 같은 풍광

마음으로 전해지는 정성, 비법은 ‘가슴에’

‘맛’처럼 까다로운 주관의 영역이 있을까. 세치 혀가 느끼는 미각의 호불호라는 게 ‘백이면 백’ 엇갈리기 마련. 그러나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엔 쉬 공감대가 형성된다. ‘라면 한 그릇을 끓여도 정성이 담기면 보약’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바로 그런 음식을 만났다. 세종시 연서면, 고복저수지가 훤히 내려 보이는 외딴 산기슭. 연서면 사무소에서 고즈넉한 시골길을 달려 고복저수지 수문에 이르면 왼편 좁은 비탈길을 따라 수변도로에 올라야 한다. 이후 대략 1㎞쯤 풍광에 취하다보면 ‘구름나그네’를 만날 수 있다.

도회적 기대를 가진 사람이라면 ‘구름나그네’의 첫 인상에 실망할 수 도 있다. 황토방 위에 양철지붕을 얹은 산골 할머니 댁 같은 분위기랄까. 그러나 등을 어루만지는 선선한 산바람을 느끼며 나무계단을 오르다보면 나는, 그리고 당신은 그 집의 가족이 된다.

"한적한 곳에서 장사하려고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입소문을 타서인지 좀 바빠졌네요."

‘구름나그네’의 주인장 조원상(57)·김도향(54)씨 부부가 특유의 순박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이들 부부가 이곳에 터를 다진 것은 지난 2012년. 20년 동안 여기저기서 식당을 운영하며 각박한 삶을 살았지만, 아들·딸이 장성해 품을 떠나고 나니 "여유를 찾고 싶었다"고 한다.

가족을 대하는 마음으로 손님들에게 상을 내고, ‘잘 먹었다, 또 오겠다’ 인사 한마디 남기고 흡족하게 떠나는 손님들을 배웅하는 낙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처음엔 이런 저런 메뉴를 내고 후식으로 정성껏 차(茶)까지 대접했지만 이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왔던 손님이 주말에 가족들과 또 찾아오고, 가족들과 왔던 손님이 주중에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오면서 처음 생각했던 ‘여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매주 월요일 휴무, 메뉴 간소화다. ‘구름나그네’의 주 메뉴는 능이백숙과 능이계탕, 도토리를 직접 갈아 만든 묵과 무침, 해물파전, 산채비빔밥 등이다. 외형상 능이와 도토리가 주재료다.

"월요일에 장사를 하지 않지만, 사실 더 바빠요. 일주일 손님맞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주인 부부는 한식 맛의 근원이 되는 장류를 직접 담근다. 합성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다보니 된장 고추장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고 청국장은 물론 각종 효소도 충분히 준비해 둬야 한다. 특히 풍부한 자연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덜 맵고, 덜 짜게’ 하면서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둔다. 능이는 최상품, 소금은 토판염, 고춧가루는 태양초 등 식재료 선택에 지켜야할 원칙도 많다.

찰진 도토리묵을 ‘후루룩’ 들이키며 주인장에게 "비법이 뭐냐"고 물었다. 사실 우문(愚問)인걸 알면서 늘 묻게 되는 질문이다. 주인장의 대답이 더 걸작이다. "그냥 열심히 쑤면 된다"고.

"그래도 자랑할 만한 비법이 있을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솔직히 현답(賢答)을 기대하진 않았다. 뭐랄까. 기자의 오기랄까. 그러나 주인장이 기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바로 이거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린다. 비법은 가슴에 담겼다는 의미다.

"똑같은 재료인데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요. 왜 그럴까요? 정성 때문이에요. 밤늦게 공부하는 수험생 자녀에게 끓여주는 라면하고, 밤새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끓여 준 라면하고 어떻게 같은 맛이 나겠어요. 요리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거예요."

주인장이 벽면에 붙인 글귀를 가리킨다.

"우리 부부가 이 식당을 시작하면서 써 붙인 글이에요. 초심을 버리지 말자고 약속한 내용이에요."

한지 위에 붓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귀에 눈에 들어온다. 명필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정성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손님은 왕이 아닙니다. 저희 가슴속에 자리한 가족입니다. 저희 부부는 가슴으로 음식을 만들어 여기 오시는 모든 가족들께서 저희들의 가슴을 느끼시며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밥 한 그릇, 차 한 잔이라도 여유롭고 흐뭇한 마음으로 즐기시면 저희도 행복하겠습니다. -구름나그네 선녀와 나무꾼 부부 올림-"

그날 ‘선녀와 나무꾼’ 부부가 내온 음식을 그렇게 처음 맛 봤다.

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구름나그네 : (044) 867-2259 세종시 연서면 고복리 안산길 146 / 2시간 전 예약은 필수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