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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던져줘도 받아먹는 건 아이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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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던져줘도 받아먹는 건 아이 몫?
  • 김기남(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승인 2014.07.2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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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남의 배움터 이야기 | 가르치기와 배우기

마지막 한 명까지 수업 참여시키는 건 교사의 몫
이마저 힘들면 배우고 싶은 마음·열정은 심어줘야

마흔 두 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양학과 생화학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아직은 교육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저력도 없고,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할 내공도 없다. 게다가 누구의 스승이라고 할 만큼 아이들의 인생에 힘을 실어 줄 재주도 없어 ‘조교수’라는 직함조차 낯설고 어색하다. 그저 아이들이 ‘교수님~’하고 불러주고 아는 척 해주는 게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거리에 나가면 바로 ‘아줌마’건만 나의 썰렁한 농담에 재밌는 척 해주고, 남편이나 아이 조차 건성건성 듣는 내 말을 필기까지 해가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정말 예쁘다.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잘 가르쳐 주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는다.

그런데 교실 속 현실은 꼭 그런 분홍빛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르침에 대한 열정으로 제 흥에 겨워 나름 ‘열강’이라는 걸 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그저 버티고 있는 아이, 버티다 자는 아이, 문자하는 아이, 심지어 슬쩍 슬쩍 눈치 봐가며 옆 사람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도 있다. 슬슬 기운이 빠지고 자신감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애써 무시하며 똘망똘망한 대부분의 아이들만 생각하려 애를 써 본다. ‘이거 시험에 꼭 나와요~’ 미끼도 던져 본다. 그래도 빨간 볼펜 꺼내 별표하고 밑줄 긋는 건 그 똘망똘망했던 아이들뿐이다. ‘자, 우리 수업에 집중 좀 합시다~’ 사정도 해보고, ‘수업 중에 떠드는 사람들 다 기억하고 있어요~’ 협박도 해 본다. 그래도 미안한 표정으로 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의를 보이는 건 여전히 그 똘망똘망했던 아이들뿐이다.

가르친다는 것, 분명 배운다는 것과 한 날 한시에, 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게 그렇게 맘 같지는 않은가보다. 한 교실에 앉아 똑같이 수업을 듣는데, 누군 지난시간에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되래 물어보는 아이가 있는 반면, 또 누군 수십 번 반복한 문제마저 비워둔 채, 시험지랑 구분 안될 만큼 깔끔한 답안지를 만들어 내는걸 보면 참 희한하다. 길거리에 과자 부스러기들을 확~ 뿌려놓고 나면, 어디선가 비둘기 떼들이 몰려와서 콕콕 쪼아 먹기 시작한다. 도저히 날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덩치 큰 녀석이 제일 열심이다. 저 뒤에 비리비리하게 생긴 비둘기 한 마리가 안쓰럽다는 생각에 이번엔 남은 부스러기들을 그 뒤쪽으로 던져본다. 멍~하게 있던 그 녀석. 한 박자 늦게 먹이를 먹어볼까 여유를 부리더니, 어디선가, 어느 샌가 나타나 또 열심히 먹고 있는 녀석은 아까 그 덩치 큰 녀석이다. 교실의 상황도 비둘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을 냇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어쩌면 최근 강조하고 있는 ‘학습자 중심교육’도 이런 맥락에서 도입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학습자 중심 교육은 1990년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고 창조적이고 창의적 사고를 가진 인재를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제 7차 교육 과정에 적용되었다. 학생 스스로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학습활동이 강조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 듯하다.

‘똑같이 던져 주어도 받아먹는 건 아이들의 몫’이라고 나름 위안을 해 보기도 하지만, 수업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얘기가 나올 때만큼은 고개를 번쩍 들고 초롱초롱해 지던 걸 생각하면, 딴 짓을 멈추게 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던 마지막 한 명의 아이도 끌어 들일 수 있는 그 무언가는 가르치는 사람의 몫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힘들면 어쩌면 배우겠다는 마음이라도, 또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라도 심어주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전문용어로 ‘동기부여’라고 하던가? 성인 학습자의 동기는 3가지 수준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학습에 선택이 있을 때이다. 이는 학습자의 의견이 수업에 더해 질 때 생긴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이 첫 번째 동기에 가치가 더해진 경우다. 가치를 통해 학습이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 가장 높은 수준의 동기는 즐거움이 더해졌을 때 생긴다고 한다. 그래, 즐거워야 하는데…

어느 한 교육 전문가는 ‘학교에 와서 배우는 일에서 소외되는 아이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 보다 배움에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학교에 와서 배움이 즐겁지 않은 아이들, 그 마음은 오죽했을까. 어쩌면 내 수업이 신나고 즐거웠으면 저절로 따라왔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괘씸해 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건만…’하고 내가 한 것만 내세웠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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