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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광기의 사회, 오늘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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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광기의 사회, 오늘 우리는?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4.02.25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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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읽기 | 막스 프리쉬의 ‘안도라’

스위스인 허위의식·나치 유대인 박해 비유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얼마나 더 나올까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희곡 ‘안도라’는 소수자(유대인)를 향해 테러를 가한 자들의 비열하고 부정직하며 야만적인 행태를 고발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처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도 집단광기의 재판 예로 남지 않을까? ⓒwikipedia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희곡 ‘안도라’는 소수자(유대인)를 향해 테러를 가한 자들의 비열하고 부정직하며 야만적인 행태를 고발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처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도 집단광기의 재판 예로 남지 않을까? ⓒwikipedia

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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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정의 ‘하얀 나라’ 안도라의 한 교사는 유대인을 처절하게 박해하는 인접 강대국 ‘검정 나라’ 한 여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게 된다. 그는 안드리라는 이름의 아이 출생과정을 숨기고 자국인들에게 ‘검정나라’ 사람들의 유대인 박해로부터 이 아이를 구해내어 아들로 삼았다고 밝힌다. 부도덕한 나라 여인과의 부끄러운 혼외관계를 숨기고, ‘안도라’ 국민들의 허위의식을 차후에 폭로하는 방책으로 아이를 이용하려 한 것이다.

교사는 아이를 전문 목수로 키우기 위해 한 대가에게 아들을 부탁한다. 이 대가는 아이 출생의 약점을 들어 터무니없는 교육비를 요구한다. 심지어는 나중에 안드리가 만든 훌륭한 의자를 불량 제품을 만든 다른 안도라 젊은이의 것으로 돌리고, 안드리를 유대인에게 적합한(?) 판매부로 이직 시켜버린다. 안드리는 부당한 차별에 처음 분노를 터뜨린다.

자신의 출생비밀을 모르는 안드리는 교사의 딸 바블린을 사랑한다. 공동체로부터 ‘유대인’으로 낙인이 찍혀 있는 탓에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교사에게 마음을 털어 놓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유대인’인 탓이라 생각한다. 그에 대한 편견에 매번 부딪치면서, 세상이 말하는 ‘돈 밝히는 유대인’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바블린과 해외로 도피할 생각을 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교사는 어느 날 밤 매일 밤 바블린의 방 앞에서 웅크리며 잠을 자는 안드리에게 뒤늦게 출생비밀을 털어 놓으며 그를 설득하지만 안드리는 이를 거부한다. 그 사이 방안에서는 군인이 소리를 지르려다 실패한 바블린을 강간하고 방을 나선다. 전후 사태를 파악할 수 없는 안드리는 이를 목격하고 연인 바블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 신부(神父)는 안드리에게 유대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담은 위로의 말을 건네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안드리의 모친 세뇨라가 아들을 보기 위해 ‘검정 나라’에서 ‘하얀 나라’인 안도라를 찾아왔다가, 아들을 유대인으로 만들어 버린 교사를 비난한다. 교사는 진실을 밝힐 결심을 하고, 이를 알게 된 신부가 안드리에게 출생의 비밀을 밝히지만, 안드리는 이를 거부하며 지금까지 감당해온 ‘희생양’ 유대인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의 모친이 모국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스파이로 몰려 돌팔매질을 당하여 죽게 되는데, 이 혐의를 또 다시 안드리가 덮어쓴다.

‘검정 나라’ 군대가 ‘하얀 나라’를 침공한다. 그러자 애국을 열창하던 인사들은 맨 먼저 무기를 던져버리고 새로운 세력에 투항한다. 다시 한 번 교사는 아들을 설득하려하지만, 안드리는 이를 거부한 채 유대인의 숙명을 감당하며 희생양의 역할을 작정한다. 그는 바블린의 구명시도도 뿌리친다. 대신 그녀에게 군인과 그 모든 사람에게 허용하면서 자신에게만 거부하고 있다고 추정한 그녀와의 잠자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때 적군에 투항한 강간범 군인이 그를 체포한다.

안도라의 넓은 광장에서 유대인 검증이 실시된다. ‘검정 나라’ 전문위원회가 외모 특성에 따른 유대인감별 작업을 벌인다. 바블린은 안도라 시민들에게 침략자에게 저항할 것을 선무하지만 모두 침묵한다. 감별대를 통과하던 안드리는 유대인으로 판정을 받아 체포되고, 안도라 시민들은 ‘검정 나라’ 출신 모친이 아들에게 끼워주고 간 반지를 손가락을 부러뜨려 제거한다. 그 순간 교사는 목매달아 자살하고, 바블린은 광기에 빠져든다.

주된 극적 흐름 사이사이에 일종의 법정장면이 끼어든다. 그 안에서 안도라 시민들은 자신의 비열하고 부당한 가해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한다. 자신은 죄가 없고 상황이 문제였다고. 오직 신부만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만, 그 역시 ‘당시에는’이라는 말로 자신의 범죄를 국지적인 것으로 제한한다. 그 누구도 범죄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15년이 지난 즈음 스위스 작가인 막스 프리쉬가 스위스인들의 허위의식과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빗대어 창작한 비유극 <안도라>의 내용이다. 당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프리쉬는 사건 자체 보다 안드리라는 소수자를 향해 테러를 가한 자들의 비열하고 부정직하며 야만적인 행태를 고발한다. 그는 이런 행태가 과거의 일이 아니며 조건만 성립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비이성적이고 비겁한 인간 집단이 지닌 추악한 본성이라고 비판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이런 집단히스테리가 횡행할 때 깨어있는 누군가 "스톱!"하고 외칠 수 있는 용기라고 그는 말한다.

최근 언론은 20년 전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범인이 무죄로 결말지어졌다고 보도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19세기말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 마냥 일종의 집단광기의 재판이었다. 거기에 관여했던 이들은 현재의 권력에 참여한 채 아직 그 누구도 참회하지 않고 있다. 또 최근 조금은 엉뚱한 한 국회의원의 어설픈 객기의 모임에 대해 법원은 ‘내란음모’라는 상식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거운 판정을 내렸다. 품격 잃은 언론이 시끄럽다. 이 또한 세월이 흐른 뒤 바보스러운 집단광기의 재판 예로 비웃음 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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