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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꿈 다른데 가는 길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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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꿈 다른데 가는 길은 ‘하나’
  • 김기남(대전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승인 2014.07.2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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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이야기 | 여덟 살의 꿈
김기남
김기남

좁은 길에 줄서게 만드니 행복할 수 있나
입학사정관제 조차 점수 매겨 합격 가려
각자 생긴 모양대로 평가받을 수 있어야

얼마 전 우리를 또 다시 행복하게 해 주었던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놓고 한국과 서양언론의 해설을 비교한 글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연아 선수의 연기에 가슴 벅차하면서 한 마리 나비와 천사에 비유하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해 하는 서양 해설자와 달리, 한국 해설자는 피겨스케이트의 어려운 전문용어들과 함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성공 여부, 감점요인과 난이도를 꼭꼭 짚어 주고 예상점수와 금메달 획득에 대한 자신감으로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출처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는 글이긴 하지만 모두들 기술과 점수만을 따지는 한국식 해설이 점수와 순위가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하는 듯해 씁쓸하다.

그랬나? 생중계 땐 늘 내 아이 학예회 때처럼 혹시 넘어질까, 실수할까 안타까운 마음으로 봐 와서일까 해설자의 멘트들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익숙한 멘트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성적지상주의니, 점수지상주의니 하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우리 엄마들의 일상일 수도 있다. 96점을 받아 온 초등학생 아들에게 4% 부족한 영혼이 담긴 "잘했네!"하고 칭찬을 한다. 그리고는 슬쩍 질문을 던진다. "100점 받은 애도 있어?" 100점 받고 신이 나 엄마 퇴근 시간을 못 참고 전화한 아들에게 "정말? 잘했네!" 누가 들어도 96점 때랑 다른 목소리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넘어서는 안 될 선마저 넘어 버린다. "100점 받은 애 또 있어?" 그래 놓고선 입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다오"라고 말한다.

한 교육전문가는 엄마들의 성적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의 성적피로증후군, 성적강박증을 야기하고, 아이들을 성적의 노예로 만든다고도 했다. 하지만 관심과 집착은 종잇장 앞뒷면과 같아서, 내 아이에 대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게 틀림없다. 내 아이 성적에 대한 관심은 그저 아이의 꿈을 이루어 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우리 아이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엄마,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고민해 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생물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해야 할 것 같고, 과학고나 영재고를 가야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학교 내신을 잘 챙기고, 영재원 경험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엄마 아빠가 챙기기엔 정보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다. 학원을 보내든지 과외 선생님을 붙여 줘야할 것 같다. 여기까지 결론을 내리고 나니 요즘 인터넷 상에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유치원생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나는 ○○초등학교(유명 사립초등학교)를 나와서/국제중학교를 나와서/민사고를 나와서/하버드대를 갈 거다/그래 그래서 나는/내가 하고 싶은/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제목은 ‘여덟 살의 꿈’이란다.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나름 가방 끈 길다는 엄마의 생각 수준이 고작 여덟 살 꼬마 수준이었나 보다.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미용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만이 하버드대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09년에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는 이런 점수 위주의 선발방식에서 벗어나, 내신과 수능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잠재능력과 소질, 가능성 등을 평가하여 각 대학별 인재상이나 전공특성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어쩌면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평가제도 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점수를 매겨 합격, 불합격을 가려야 하다 보니, 가끔은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의 순위를 매기려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원하는 대학의 입학은 어쩌면 꿈을 이루는 가장 쉬운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결국 그 꿈이 무엇이든 모두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꿈을 이루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꿈이 다른 아이들이 여러 갈래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좁은 한 가지 길로 줄서서 가려니 꿈과는 점점 멀어지는 듯 보인다. 교실 내 대다수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경쟁사회에서 점수를 포기할 수도, 석차를 무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동그라미대로, 세모는 세모대로, 네모는 네모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최고들만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꼴찌도 꿈꿀 수 있는 곳, 나름의 꿈이 나름의 노력으로 인정받는 그런 곳에서 아이들의, 또 엄마들의 웃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저마다 꾸는 꿈이 다르고, 잠재능력과 소질, 적성이 다른데 우리 교육은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니라 좁은 한 길에 아이들을 줄 세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엄마들이 행복할 수 없다.
아이들이 저마다 꾸는 꿈이 다르고, 잠재능력과 소질, 적성이 다른데 우리 교육은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니라 좁은 한 길에 아이들을 줄 세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엄마들이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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