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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기자 칼럼 | 낙엽처럼 나뒹구는 내 금융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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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기자 칼럼 | 낙엽처럼 나뒹구는 내 금융정보
  • 고영성(전 MBC 기자)
  • 승인 2014.01.28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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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채권정보처럼 관리하시오
고영성
고영성

아침 밥 겨우 얻어먹고 부랴부랴 회사로 출근한다. 아침 회의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전화가 온다. 02로 시작하는 전화번호인 걸 보면 서울에서 걸려온 거다. 무슨 일 일까 망설이다 벨소리가 시끄러워 할 수 없이 전화를 받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여기는 농협 캐피탈인데 혹시 긴급 자금 필요치 않으세요?"

조금 있으면 또 다른 전화가 걸려온다. 받아 보니까 무슨 은행과 제휴된 ○○보험사란다. VIP고객으로 선정되어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보험 상품을 안내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설명한다. 대꾸조차 안하고 끊어 버린다. 야박하지만 별 수 없다.

다시 얼마 안가서 전화가 또 온다. 역시 서울지역 번호다. 이번엔 ○○마트 특별 판매 행사가 있다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봐요! 나 바쁘니까 끊어요!"

몇 년 전부터 이런 전화가 내게 걸려오는 건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하루에도 10여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일할 때나 밥 먹을 때, 운전 중일 때, 누구와 대화할 때, 시도 때도 없다. 짜증이 나도 나로선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일 뿐이다.

얼마 전 내 지인이 스팸 전화번호를 식별하고 차단하는 앱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지체 없이 관련 앱을 깔았다. 제법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난 늘 의문이 들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전화하는데 대체 내 전화번호나 신상정보를 어떻게 아는 걸까. 그 것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오늘에야 해답을 찾게 된다. 은행에 적어 준 내 정보가 새어나간 것이다.

아들의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은행에 잔액 증명서를 발급 받으러 갔다. 오전 9시 은행 문을 열 무렵이었는데 은행은 인파로 장사진이다. 영문을 몰라 은행 직원에게 물었더니 아시면서 묻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은행의 고객 정보 유출로 카드 재발급이나 비밀번호 변경을 위해 사람들이 몰린 거란다. 대기시간은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설명을 듣고 이웃 은행을 갔다. 역시 마찬가지로 북새통이다. 대기 순번이 113번이다. 날 보고 어쩌라고. 할 수 없이 은행 일을 포기해야 했다.

은행 고객 정보 유출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무려 1억 400만 건의 정보가 유출되었다. 나처럼 국민카드와 롯데카드를 중복해서 갖고 있는 사람을 포함해 8245만 명의 정보가 털렸다. 전 국민의 신상 정보가 유출된 꼴이다.

고객 정보 유출 파문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어 왔다. 그럼에도 금융기관이나 금융 당국은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일단 사태만 수습되고 나면 그 뿐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은 미흡했던 터다. 이번 파문에서도 미봉책으로 일관한 그들의 태도가 또 다시 입증되었다.

나는 이런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 되는 것은 그들의 인식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의 정보가 중요하듯 다른 사람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결여된 데서 비롯된 게 틀림없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갖고 있는 채권정보가 유출되는 사례를 보았는가. 그들이 갖고 있는 채권 정보가 해킹되었다는 소릴 들어본 적 있는가. 그래서 금융기관들이 받을 돈 못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가. 난 아직 그런 뉴스를 접한 적이 없다. 이는 달리 생각하면 자신들의 정보는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고 그럴 능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이처럼 손해 볼 일 절대 안하는 금융기관들이 어찌 고객 정보는 그리도 허술하게 관리하고 부실하게 운용하는지 답해야 한다. 국민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위임받아 관리하는 고객정보도 금융기관 자신들의 채권 정보 수준으로 관리돼야 한다. 자신들의 채권정보는 중요하고 위임 받은 정보는 허술하게 관리하는 그들이다.

우산이 필요할 때 우산을 뺏는 금융기관들의 횡포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도 모자라 위탁 받은 내 정보를 스팸이나 광고에 낙엽처럼 나뒹굴도록 만든 당신들, 금융기관.

대체 언제쯤 당신들은 정신을 차릴 생각이오? 국민들, 아니 나를 설득시키려거든 당신들 채권 정보를 잃어 버렸다는 뉴스가 나오게 해주시오. 그래서 받을 돈 못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뉴스가 나오게 해주시오. 그러면 당신들의 잘못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걸 나도 인정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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