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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적 자유주의 사회를 꿈꾸다
  • 세종포스트
  • 승인 2013.12.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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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 노암 촘스키

언어학에서 출발, 철학·정치학·인지과학·심리학 포괄
‘좌파’ 딱지 싫어하지만 언제나 진보진영 운동 상징
아무도 억압·강요하지 않는 사회 꿈꾸는 행동주의자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 )를 분류하는 일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언어기호학자로 출발하지만, 정치학, 과학, 사회 이슈 등 그가 언어를 근거로 다루는 분야가 너무 다양해서다. 오지랖도 넓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문화나 정치 그리고 과학에서조차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로버트 F. 바스티의 말이다. "우리 시대에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모차르트 또는 피카소가 있다면, 미래에는 촘스키가 있을 것이다."

학자들이 논문이나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촘스키다. 저서만 약 70권에 이르고, 다루는 학문 분야도 방대하여 언어학, 철학, 정치학, 인지과학, 심리학을 포괄한다. 그를 따라 다니는 다양한 별칭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언어학의 교황’이다. 물론 그는 이렇게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는 언어학자지만, 좌파 지성인을 대변하는 인물이란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촘스키는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과 같은 보수 언론인과도 접촉을 가질 정도로 교류 폭이 넓다. 그에게는 로티가 말하는 아이러니를 지닌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우파 신문기자들과는 언어학이나 과학관계 이야기만 나눈다는 것. 정치이야기는 절대 언급하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2004년의 노암 촘스키 by Duncan Rawlinson ⓒwikimedia
2004년의 노암 촘스키 by Duncan Rawlinson ⓒwikimedia


왜 언어가 중요한가. 왜 언어는 세계를 지배하는 구조를 갖는가. 그가 관심을 갖는 궁극적인 물음들이다. 촘스키는 두 가지 점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하나는 편향적 지식인으로서, 다른 하나는 언어학자로서의 명성이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매우 편향된 생각을 전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말 이래로 그는 핵무기와 팔레스타인 국가창설 등 모든 좌익 관련운동과 연계된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좌파라는 딱지를 싫어한다. 그는 언제나 좌파인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를 반대해 왔다. 그가 문제시하는 쟁점은 간명하다. 촘스키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개별적인 이슈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말한다. 그게 그의 장점이다. 언어의 왜곡을 크게 염려하는 그는 사실적 입장에서 사물과 세계를 볼 것을 강조하고 가르친다.

1957년 아직 채 30살이 되기 전에 촘스키는 언어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사회학에서 마르크스가, 인류학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차지하는 위치를 그는 언어학에서 차지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사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말을 배우지 않는다. 언어는 생득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생명 속에 본래부터 싹트고 있다. 이것을 촘스키 혁명이라 부른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아무렇게나 말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말로 할 수도 없다." 무엇을 말하는가. 모든 언어는 단 하나의 보편적 문법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구조가 제한되어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명하다. 인간이 유전에 의하여 상속을 받은 것으로 조건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생물적인 특성은 옛날에 있던 소리를 만들거나 조합시키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는 언어가 인간의 자연적인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촘스키의 언어학은 구조주의와 유사하다. 특히 레비스트로스가 문화에 적용한 것과 같다. 레비스트로스에게 있어 하나의 문화는 아마존의 원주민이든 현대사회에 속하든 ‘제한된 수의 가능한 행동양식의 합계’일 뿐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구조가 있고, 그것이 수많은 양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1950년대 초 유전기호가 발견되면서 한층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유전자가 가진 프로그램 메커니즘을 통해 언어가 말해진다. 이러한 주장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생물학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노암 촘스키는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필라델피아에서 러시아 이민세대의 아들로 출생했다. 언어에 대한 흥미를 일찍부터 보여 중세 언어학 연구가인 아버지가 편찬한 13세기 히브리어 문법을 읽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구조언어학을 공부한 그는 1957년 <구문론의 구조>(Syntactic Structure)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구조언어학을 주류로 하는 미국의 언어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게다가 그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데, 어린이가 몇 마디 표층언어의 물리적 음성만으로 언어의 변형구조와 심층구조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구조주의 언어학의 기반인 경험주의를 넘어 데카르트나 훔볼트에게서 철학적 근거를 찾으려고 한 시도는 1966년에 출간한 <데카르트주의적 언어학>(Cartesian Linguistics)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뉴레프트 운동의 기수이기도 한 그의 주요 저서로 <미국의 권력과 신관료계급>, <생성문법의 의미론> 등이 있다. 번역본으로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그린비)과 <지식인의 책무>(황소걸음)는 그를 이해하기 좋은 저서들이다. 그가 꿈꾸는 사회는 무정부주의 사회다. 누구도, 어떤 집단도 서로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사회다. 그가 표적을 삼는 집단은 지식인 집단이다. 지식인 집단은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옹호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불리하면 반대하는 이른바 지극히 비양심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비양심적인 지식인들을 고발하는 것이 촘스키의 목표다. 특히 베트남 전쟁이 지식인의 비양심적인 태도가 드러난 기점이었다. 글 쓰는 사람과 지적인 책임은 분리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문의 기사는 비판의 대상으로 읽어야한다. 우리는 지금 "메마르고 상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촘스키는 고발하면서 진정한 지유민주주의는 아나키스트적 자유를 보호받는 사회라고 강조한다.

<지식인의 책무>에서 그는 현시대의 정치적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제퍼슨적 의미에서 민주주의자의 길을 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귀족정치주의자의 길을 택할 수도 있다. 귀족정치주의자의 길은 넉넉한 삶을 보장한다. 부와 특권과 권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민주주의자의 길은 투쟁의 길이다. 그 투쟁은 쓰라린 패배를 겪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어라! 너만을 생각하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에 굴복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보상을 받는다." 그를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통합적인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울 수 있다. MIT의 교수인 그는 지금도 세계의 흐름에 민감해 하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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