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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신드롬’ 누가 폄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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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신드롬’ 누가 폄훼하나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3.12.2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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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 | ‘광우병 촛불’과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첫 대자보 쓴 고려대 학생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심각한 보수의 난독증, 숲은 못보고 나무만 주시
실존에 대한 젊은이들 응답, 우매한 대중으로 매도

대한민국이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 학생인 주현우(27)씨가 대자보를 통해 철도민영화,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 밀양주민 자살 등을 거론하며 "하수상한 시절에 모두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화두를 던진 뒤, 한국사회가 들끓고 있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 대자보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전국 각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직장, 아파트 단지까지 응답 대자보가 줄을 이었다. 인터넷에서도 ‘000해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인증 퍼포먼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안녕하십니까"는 이제 일상적 인사말이 아닌 신드롬이 돼 버렸다.

#닮은 꼴, 촛불과 대자보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지난 2008년은 소위 말하는 ‘광우병 파동’이 정국을 강타했던 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이 전국에 불을 밝혔다.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엄마들부터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까지.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 ‘촛불 문화제’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촛불 신드롬’이란 표현이 가능할 정도였다. 촛불이 MB정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뜬금없이 ‘촛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광우병 촛불시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촛불을 켜는’ 은유적 저항을 불렀다면,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안녕들하십니까’란 일상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저항 언어’의 매개만 다를 뿐 본질은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다.

촛불과 대자보에 대한 보수진영의 대응논리도 흡사하다.

과거 광우병 촛불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보수 언론과 정치권은 "일부 직업적 선동가들에 의해 대중이 현혹된 결과"라며 촛불의 의미를 평가 절하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주현우 씨 대자보 내용을 ‘잘못된 선동’이라 비난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잘못된 선전선동에 대중이 놀아나면서 국가가 큰 혼란에 빠졌다"는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대표적 보수논객인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JTBC ‘정관용 라이브’에 출연해 "대자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인데, 파업한 지 하루 만에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일자리 잃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직위해제라는 걸 이 대학생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런 대자보를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논설위원은 또 "제2의 광우병하고 비슷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예를 들자면 정확한 내용도 모르고. 동조하는 일부 대학생들은 무슨 노동자들이 수천 명이 해고됐다. 이 말에 자극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현우 씨 대자보에 대해 "진리탐구의 전제는 팩트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인데 첫 문장이 팩트 왜곡"이라며 "팩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 자체가 정말 우리 대학들이 병을 앓고 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주현우 씨가 잘못된 사실을 적시해 대중을 선전 선동했다는 의미다.

#누가 팩트를 왜곡했나

주현우 씨가 정말 팩트(사실)를 왜곡했을까. 주 씨는 대자보에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라고 썼다. 김진 논설위원과 하태경 의원은 바로 이 내용을 두고 ‘팩트 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글쎄다. 주씨의 글에는 "일자리를 잃었다"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해고"란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었다"는 추상적 내용을 이어진 문장에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이라고 보완하고 있다. 팩트를 왜곡한 사람이 정말 누구인지 되물어볼 만한 일이다.

‘직위해제 됐을 뿐인데 이를 해고로 왜곡했다’라는 주장엔 직위해제가 별일 아니라는 시각이 묻어난다. 팩트 논란은 곁가지에 불과할 뿐, 직위해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 시각이 더 큰 문제다.

고려대 학생 주 씨가 직위해제 당한 코레일 직원의 입장에서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대중에게 실존적 질문을 던졌다면, 보수논객들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입장에서 "직위해제는 해고가 아니다"라는 반박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최 사장은 지난 15일 대국민 발표문을 통해 "대학교 벽보 등 일부에서 직위해제가 엄청난 직원을 당장 해고시킨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직위해제는 인사대기명령이다. 직위해제가 곧바로 해고가 아니다. 추후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가담 정도에 따라 경징계와 중징계로 처리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코레일의 파업가담자 직위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을 살펴보자.

세계 178개국 708개 운수노조로 구성된 국제운수노련(IFT)은 지난 17일, 코레일 노조원 8565명을 직위해제한 것과 관련 "이런 노사관계는 이란과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행위로, 한국이 아닌 다른 OECD 국가에서는 찾아 볼 수도 없고 용납도 되지 않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IFT는 또 "한국 정부당국이 취한 불법적 행위와 관련해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정부가 국제노동기구에 제소당할 지 모르는 창피한 상황에 다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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