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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찬권 잃은 아픔 딛고 무대 서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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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찬권 잃은 아픔 딛고 무대 서주길…
  • 세종포스트
  • 승인 2013.12.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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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 27년 만에 다시 핀 들국화

신군부 암흑기 청년문화 주도해
전인권 잇따른 대마초 시련 겪어
한국 록밴드의 전설 새 앨범 발표


원년멤버 전인권, 최성원, 고(故) 주찬권이 함께한 들국화 신보가 27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1980년대 신군부정권시절 문화예술은 암흑기였다. 대중음악계도 디스코뮤직의 잔재인 일렉트로닉 사운드 일색의 댄스와 발라드, 왜색 짙은 트로트가 주도했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들국화는 전진적이고 반항적인 가사, 전인권의 절규하는 보컬을 앞세워 한국적인 록을 선보였다.

들국화는 당시 방송환경에서는 출연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운타운 DJ들의 열띤 선곡과 라이브 무대가 유일한 통로였다. 반향은 엄청날 정도로 컸다. 들국화가 국내 최초로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한 음악방송채널에 출연한 들국화. 왼쪽부터 최성원 고 주찬권, 전인권. ⓒMnet
최근 한 음악방송채널에 출연한 들국화. 왼쪽부터 최성원 고 주찬권, 전인권. ⓒMnet


과거는 힘들었지만 미래를 향해 ‘행진’하고, 울며 웃던 꿈들에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치던 청년밴드 들국화! 들국화는 1983년 전인권(보컬), 최성원(베이스), 허성욱(키보드) 등으로 결성돼 1985년 조덕환(기타), 주찬권(드럼)으로 라인업을 이뤘다. 사회 분위기에 좌절하던 청춘들에게 들국화의 음악은 해방구였다. 이후 기타는 조덕환→최구희→손진태 순으로 교체됐다.

필자가 처음 그룹 들국화를 접한 것은 1985년 가을이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콘서트를 이어가던 이들을 대전콘서트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장소는 시민회관 대강당(현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이었는데, 당시 대전에서는 1000석 정도의 공연장은 이곳이 유일했다. 전국이 들국화 열풍으로 넘쳐나던 시절이었지만 공연장엔 빈자리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만큼 당시의 대전은 공연장과 공연문화가 낙후된 도시였다. 그러나 공연 시작과 함께 객석은 열기로 가득했다. 자유, 전진, 반항, 그리고 뭔가 모를 해방감 등 그때 필자가 받은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밴드가 있고 이런 음악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공연도중 무릎을 몇 번씩이나 꼬집어봤을까.

1980년대 중반 시작된 들국화 열풍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로 추앙받고 있는 비틀즈(Beatles)가 60년대 영국에서 청년문화를 이끌었다면, 들국화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청년문화를 주도했다. 들국화는 암울한 사회 분위기에 좌절하던 청춘들에게 위안을 주고 시대를 바라보는 가치관을 부여했다. ‘아침이 밝아 올 때 까지’ ‘그것만이 내 세상’을 외쳐 부르며 새 시대를 여는 동력을 갖게 했다. 이들의 데뷔 앨범이자 한국 음악사의 기념비적인 성역으로 평가받는 최고의 역작인 1집 <들국화>는 2007년 한 일간지에서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1986년에 발표한 라이브 음반 <Live Concert>와 함께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들국화 신보
들국화 신보

들국화에게도 시련의 기간이 있었다. 1985년 혜성처럼 등장하여 1집 앨범 <들국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1986년 라이브 음반 <Live Concert>와 2집 앨범 <들국화 2>를 발표하며 활동하던 중 전인권이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팀이 좌초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전인권은 자신의 전용밴드를 결성해 활동에 나서지만 거듭된 대마초와 금지약물 복용으로 D체형의 뚱보가 됐다. 노래는 고사하고 호흡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생활고를 겪으며 3류 트로트 가수들이 출연하는 밤무대를 기웃거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1997년 원년멤버 허성욱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충격적인 비보를 접한 전인권은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몸을 다시 만들고 재기를 선언했다. 그 해 말 팀을 재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지만 2000년에 다시 해체됐다가 2012년 재결성, 1년 만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새 앨범은 CD 두 장에 모두 21곡이 수록되어 있다.

지난 3일 공개된 ‘걷고, 걷고’는 전인권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난 후 가족들과 함께 살며 노래하는 생활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에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그는 하루하루 걸어가는 일상의 소중함과 아픔을 딛고 새날을 맞이하는 희망을 담백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했다. 최성원이 곡을 쓰고 전인권이 가사를 붙인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이들이 록 밴드임을 새삼 각인시키는 곡이다. ‘재채기’는 단순한 두 개의 멜로디 라인으로 완성된 곡으로 편곡의 테크닉이 돋보이며 고인이 된 주찬권에 대한 멤버들의 그리움도 곳곳에 묻어난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들국화로 필래(必來)’는 원래 버전에서 코러스로 참여한 주찬권의 보컬을 복원해 최성원과 함께한 곡으로 거듭났다. ‘하나둘씩 떨어져’는 주찬권이 쓴 곡에 전인권이 그를 그리는 마음을 담아 후렴구의 가사를 완성했다. ‘친구’는 주찬권과 함께 완작이 된 곡이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전인권이 고인을 위해 감정을 보태 완성했다. 그에 대한 헌시(獻詩)인 셈이다.

‘한국 록밴드의 전설’ 들국화가 돌아왔지만 활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등진 드러머 주찬권을 조용히 추모하겠다는 의미다. 드러머 주찬권이 음반을 준비하던 지난 10월 20일 사망해 허성욱에 이어 또 한명의 음악동반자를 가슴에 묻는 아픔을 감당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이 아픔을 딛고 무대에 서는 날 고인들도 박수를 보낼 것이라 확신한다. 전설의 밴드 들국화의 무대를 고대하고 또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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