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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살해 금기 살짝 건드린 ‘컨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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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살해 금기 살짝 건드린 ‘컨저링’
  • 송길룡
  • 승인 2016.05.26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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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스산한 냉기를 발산하며 등골을 시원스럽게 만들어주는 공포영화 시즌이 제법 지나간 요즘, 별달리 시각적인 기괴함을 조성하지 않고도 예전 1970~80년대 복고풍 공포영화 스타일을 끌고 와 소리 소문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내고 있는 영화가 있다. 2004년 <쏘우>로 선풍을 이끌고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말레이시아 출신 할리우드 영화감독 제임스 완의 <컨저링>(2013).


공포영화들이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은밀한 공포심을 발가벗겨왔는지는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으니 그때 가서 천천히 얘기하기로 하자. 나도 역시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보는 호러무비 마니아다. 보통 스크린을 통해 형성해주는 경이로움의 정반대 측면에서, 어쩌면 관람 자체를 거부하게끔 만드는 부정적 감정인 두려움을 창작적 표적으로 삼고 있는 공포영화는 의외로 영화매체의 중요한 한 장르로 각광받아 왔다.

조치원의 유일한 영화관에서 심야시간 어둠속에 쌓인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니 삼삼오오 젊은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 중간 무서운 장면들이 나타날 때마다 비명을 지르거나 두려움을 피하려고 온갖 부스럭거림을 다하는 그들의 풍경을 음미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었다.

자, 영화 얘기를 좀 해보자. 공포영화를 즐기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하나. 내 감정을 칭칭 둘러싼 심리적 방어막이 눈앞 공포영화의 집요한 공격에도 끄떡 않다가 의외의 초강력 타격에 어느 순간 열어버려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순간의 짜릿함을 느끼는 것.

1970년대 초반 미국. 가난 때문에 번듯한 집을 구하지 못하고 정체모를 어느 한적한 시골의 별장을 경매로 구입한 젊은 부부는 어린 딸 다섯을 이끌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마녀가 마을에 저주를 퍼붓고 자살한 곳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게 된 그들에게 그동안 숱한 어둠의 살인을 벌여온 마녀의 희생자들이 혼령이 되어 눌어붙어 다니기 시작한다. 이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마녀의 악령에 조종 받은 엄마가 자기 자식을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것.


다섯 딸의 엄마인 캐롤린은 자녀양육의 부담에 힘겨워하면서 새로 이사 온 이 집에 적응하려고 애쓰던 중 결국 엄청난 괴력으로 다가온 악령에 들씌워지고 만다. 표면적인 겁박을 주는 모든 장면들보다 결말에 가까운 지점에서 악령에 씌운 엄마 캐롤린이 어린 딸들을 데리고 (어느 음침한 장소에서 살해하기 위해) 굳은 표정으로 운전을 하는 모습은 진실로 무서운 장면이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만큼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은 이들이 어디 있을까. 그렇기에 도저히 그들이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어디선가 친자살해를 저지른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끔찍스러움에 몸서리를 치게 되고 자꾸만 스멀거리고 떠오르는 가상의 살해 장면 때문에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비록 과장스러운 모습으로나마 스크린에 비쳐지는 친자살해의 금기는 그저 관객들을 공포의 충격 속에 빠뜨리기 위한 소재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보는 것도 좋겠다. 경제적 결핍의 압박은 가난한 가족을 죽음으로 모는 가장 극악한 악령이다. 어느 순간 가족의 짐을 멘 우리 사회의 엄마들에게 성큼 다가설지 모르는 인성이 파괴된 마녀의 저주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녀는 애초에 이웃사람들의 무관심과 따돌림 속에 죽음을 맞았었다는 것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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