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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장면의 결말을 넘어서야 일보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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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장면의 결말을 넘어서야 일보 전진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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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지난 2011년 1월에 개봉한 <평양성>이란 영화를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 영화로 흥행실패의 쓴맛을 본 이준익 감독은 그간의 대중상업영화제작상의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컸었는지 돌연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잠적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참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무도 그의 은퇴의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가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다시금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줘야 한다는 격려성 칼럼들이 신문잡지 지면에 실려 나왔고, 또 대부분의 영화팬들도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하는 낙관의 목소리들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등의 영화관련 메시지들은 대체로 그러했다.(쇼로 끝낼지언정 이제는 제발 은퇴선언 같은 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나 다를까? 3년도 채 다 채우지 못하고 이준익 감독은 예의 특유한 미소를 지으며 신작을 들고 나왔다. 최근 개봉한 <소원>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실룩실룩 자극케 하면서 험한 세상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뇌리에 남기며 객석을 훈훈하게 했다. 일단 <왕의 남자>(2005)의 흥행감독이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들이 나오고 제법 <평양성>으로부터 빠져나갔던 관객들이 다시금 <소원>을 향해 몰려드는 모습도 언뜻 보인다.

자, 이 시점에서 자칭 열혈영화광인 나의 감상평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일보전진 직전의 영화라는 것! 좋게 말해서 그런 것이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태의 영화라고 봤다. 정말로 연출자가 작품의 완성과 심미적 성취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단지 적당히 잘 만들어 흥행수입이나 올리자고 마음먹은 거라면 나의 이런 영화평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영화적 의미를 고려하는 관점이라면 창작자나 향유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으리라 본다.

아동성폭력을 핵심주제로 삼아 영화를 만들어 선보이는 일이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굳이 그런 영화들의 예를 나열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그 주제에서 <소원>이 어느만큼 진일보했는지 이다. 이러한 주제부문에서 진척 정도를 잘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있는데 2009년 발표된 전규환 감독의 <애니멀타운>이 그것이다. 독립영화로서 일반 멀티플렉스극장에서 널리 상영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성취에 큰 주목과 관심이 모아졌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동성폭력범이 자신의 형법적 죄과를 다 치르고 난 이후의 시간대를 보여준다. 피해자 가정이 고통스럽게 담지해내는 응징과 용서의 심리에 대해 긴장감 있는 문제설정이 돋보였다.

이에 비해 <소원>의 결말부분은 피해자아동을 통해 성폭력범을 붙잡았지만 응징과 용서에 대한 문제가 재판부의 법 감정 불일치로 치환된 상황을 보여준다. 극렬한 고통을 대가로 해서 겨우 심리적 부조화와 허탈감을 맛보게 하는 설정인 것인데, <애니멀타운>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창작적 후퇴로 간주될 만하다.

<소원>이 가닿은 지점은 재판부를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도 비판다운 비판을 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2011)이 멈춘 지점과 똑같은 것이다. 국내영화로 재판부가 주 무대로 다뤄진 것은 이제 초창기라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거나 결말처리의 마무리로 세워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인데, 이것을 한국대중영화의 성취로 보기에는 <애니멀타운>의 진척이 멀리 앞서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귀환(?)을 환영하지만 이제 그에게 복귀선언식을 마친 이상 동일 주제에 관한 한 재판부의 법 감정을 넘어서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보전진을 주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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