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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은 자에게 빛을 던지는‘일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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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은 자에게 빛을 던지는‘일대종사’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30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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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그녀는 결단의 마지막 순간에 끝끝내 포기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부처님을 모신 자비의 성전에서는 살의란 있을 수 없는 것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그녀는 그것을 넘어서 여전히 흔들리는 자신의 결심을 애써 바로잡으려는 듯했다.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응분의 복수를 다짐하는 혼자만의 공간속에서 그녀는 준엄히 용서를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완전히 물리치지는 못한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궁가 64수 마지막 계승자인 궁이(양쯔이)는 과연 피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분연히 들어가 평범한 행복을 저버린 채, 무예가문의 전승도 마다한 채 스스로 원한의 수인이 되어 살아갈 각오를 할 수 있겠는가.

최근 개봉했지만 아쉽게도 명품도시 세종시에서는 관람할 수 없는, 영화광들에게는 뜨거운 관심작 중 하나인 ‘명품 중의 명품’ 중국무협영화 <일대종사>(왕가위, 2012)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서두부터 냉소적인 것 같아 죄송하지만 ‘명품영화’를 볼 수 없는 도시를 ‘명품도시’라 할 수 있는지 매우 안타까워서 그러는 것이니 독자님들의 넓은 양해 바란다. 오늘의 냉소는 여기까지!)

잘 아시다시피 <일대종사>의 연출자 왕가위 감독은 <열혈남아>(1988)로 데뷔해 <중경삼림>(1994)으로 한국에도 폭발적인 팬들을 확보했고 이후 <해피 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 등으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중국(홍콩)의 영화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일대종사>는 거장의 회심작으로 기대된다는 것이 첫 번째 관람 포인트다. <일대종사>의 중심인물은 근현대 중국무술 영춘권의 거두 엽문으로 이소룡의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무협영화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여기에 관록의 배우 양조위가 해당 인물을 맡아 화제로 올랐다는 점이 두 번째 관람 포인트다. 그리고 한국 팬들은 엽문의 아내 역할로 등장하는 여배우 송혜교의 출연에도 시선을 각별히 두게 될텐 데 (조금 약하기는 하나) 그녀의 자태를 음미하는 것 역시 세 번째 관람 포인트로 삼을 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일대종사>는 훌륭한 영화감독이 훌륭한 배우들을 이끌고 만들어볼 수 있는, 가히 명품이라 할 만한 영화적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무술의 고수들이 펼치는 격투 장면은 우아하고 화려하며, 세심하게 안배된 인물배치, 각각의 인물 움직임에 대한 절제와 균형이 카메라 시선 안에 섬세하게 묻어나온다. 감탄을 연발하며 홀린 듯이 스크린에 빨려들려갈 듯 너울대는 격정과 침잠의 심리적 굴곡도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 모든 훌륭한 점들을 제쳐놓고 나의 눈에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고요히 자신만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궁이의 불상 앞 결심 장면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복수를 해야만 하는 절대 절명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바랐던 행복은 복수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궁가 무예의 전승을 멈추게 하는 죄보다 궁가 무예의 치욕을 씻어내지 못하는 죄를 더욱 큰 오명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지막 결심의 한 터럭, 그 작정을 굳건히 해줄 마지막 기원을 빌었다. "제 결심이 맞는 거라면, 이 길을 돌아선 저편에 등불을 밝혀주소서." 그것은 제 자신 뭇사람들에 대한 등불이 되고자 하는 바를 꺾되, 자신이 아닌 그 누군가가 등불의 역할을 해주게 될 거라는 가장 강렬한 염원이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복수를 포기하지 못한 것은 바로 등불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믿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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