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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성숙한 ‘우리 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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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성숙한 ‘우리 선희’
  • 세종포스트
  • 승인 2013.09.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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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꼭 좋아해서는 아니라도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현재를 가늠해보기 위해서 꼭 찾아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워낙에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다 찾아서 보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또 꼭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일 년에 한번쯤 때가 되면 찾아오는 몇몇 감독들의 영화는 솔직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다 보니 요즘 영화들에 대한 나의 견해는 시각을 달리한다. 이를테면 100편의 영화를 모조리 관람한 다음 어떤 장르의 영화가 얼마만큼의 관객을 동원했는가로 제작흐름을 짚어내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분석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는 터다. 매년 꾸준히 작품을 내놓고 있는 감독들은, 그것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영화제작상의 현재적 상황에 대해 어떤 감각들을 보여주고 있는지, 어떤 관심들을 영화 속에 담아내는지, 해마다 자신의 창작테마를 어떻게 변주해내는지 등등 바로 그런 것을 짚어보는 일에 나의 관심이 기울 뿐인 것이다.

그래도 영화를 남보다 많이 보고 싶은 욕망이야 완전히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지간히 내달렸다면 적당한 지점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크를 다 먹어야 그 맛을 알게 되는 게 아니잖은가. 반대로 크림 한 부분만 손가락으로 훔쳐 먹고 케이크 맛을 다 안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알 만큼 알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멈춤이다. 매년 관심 작을 선보이는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가 그런 각성을 내게 주었다.

하여간 그의 영화 <우리 선희>는 이전에 꾸준히 보아왔던 그의 영화적 스타일의 또 다른 변주를 즐기게 하는 기회가 돼주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유학을 준비하는, 아직 제 갈길을 잘 찾지 못하는 한 여성 영화학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연령대가 다른 세 남성들(교수, 선배, 동기)을 만나며 들쑥날쑥한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비교적 ‘담백한’ (나는 이 영화를 로맨스로 분류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로맨스다. 물론 이런 ‘담백함’ 때문에 일반 멀티플렉스영화관 메인 상영관에서 상영되지 못하게 된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건 어지간히 조미료에 입맛을 잃어버린 영화관객들의 자극취미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 선희(정유미)는 잠적 2년 만에 불쑥 나타나 미국유학을 위해 최 교수(김상중)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한다. 최 교수는 평소 귀여워했던 이 제자 여학생에게서 연애의 활력을 받는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고 싶어 하지만 자의반타의반 추천서를 예쁘게 써주는 것에서 멈춘다. 아내가 있는 집에서 나와 독거생활을 하는 남자선배 재학(정재영)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선희와 술을 마신 후 ‘하고 싶죠?’라는 그녀의 말에 솔직담백하게 ‘응!’ 하고 대답한다. 아마도 선희의 알 수 없는 과거의 연애상대였음직한 재학은 깊고 달콤한 키스만을 그녀와 나누고 바로 거기서 멈춘다. 한편, 여전히 뜨겁게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을 선희가 알아주지 못한다고, 게다가 자신도 선희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남자동기 문수(이선균)만이 끝내 사라진 선희의 흔적 뒤에서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걸음을 멈출 뿐이다. 세 남자의 서로 다른 멈춤들. 그래서 차라리 이 영화 <우리 선희>는 ‘멈춤의 드라마’라고도 하고 싶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동행하듯이 따라가며 보는 영화감독의 최근 영화를 보고나면 요즘 영화들을 조망할 수 있는 한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어 기분이 좋다. 무언가를 향해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기만 하는 요즘 영화들, 그것은 결국 요즘 사람들의 마음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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