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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대고 울부짖어야 ‘디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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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대고 울부짖어야 ‘디바’인가
  • 성현기(팝 컬럼니스트)
  • 승인 2013.09.23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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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 1세대 디바 김추자

밝은 바이브레이션에 애절함 묻어난 음색 매혹적
파격적 의상, 사이키델릭한 무대연출도 센세이션
40년 전 대중문화 개화 이끈 그녀의 존재감 그리워

요즘 가요계에 ‘디바’(Diva)가 넘쳐난다. 노래 좀 한다는 여가수마다 언론이든 팬이든 디바란 호칭을 남발하다보니 너도 나도 디바란다. 물론 노래를 잘하는 여가수가 많아서 디바란 호칭을 자주 접할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일게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못한 것이 작금의 가요계 현실이다.

얼마 전까지 가수들을 줄 세워 경연을 했던 모 방송의 억지스러운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 음을 높이 올려 질러대고 울부짖으면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식이 되고 대우를 받자, 한동안 유사한 경연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요즘은 너도 나도 질러대고 울고 해야 노래 잘하는 가수인줄 안다. 질러대고 울부짖는 오버만 안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곡이나 가수를 접할 때 마다 ‘노래 잘하는 가수’에 대한 왜곡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수들은 높은 음으로 질러대고 울부짖고 해야 노래 잘하는 가수로 여겨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자신의 개성을 상실한다. 음악적 지식이 함량미달 수준인 가요 담당 PD와 기자는 디바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면서 디바를 남발하다 보니 요즘노래에는 겉멋만 잔뜩 들어서 알맹이가 없다.

우리가요를 통틀어 디바란 칭호를 들을만한 여가수가 몇이나 될까?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필자는 1세대 디바 김추자, 이미자, 패티김을 비롯해 정훈희, 윤시내, 한영애, 심수봉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김추자를 가장 뛰어난 대한민국 디바로 본다. 그래서 필자는 김추자를 80년대 김완선 쯤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을 간혹 접할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진다.

김완선은 시대의 유행 춤을 추는 댄스가수였고 김추자는 전위예술로 시대의 개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미닫이문이 달렸던 흑백 TV시대를 가득 채웠던 김추자. 김추자는 새콤달콤한 사과즙 같은 음악으로 청년문화의 개화를 주도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문화평론가 이성욱이 "김추자 이전에 가수 없고 김추자 이후에 가수 없다"고 평가할 만큼 1970년대는 김추자의 시대였고, 그녀는 진정한 1세대 디바였다.

1951년 1월 2일 딸부자집의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춘천에서 자란 김추자는 동국대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노래와 춤, 운동(체조)에 소질이 많았던 그녀는 대한민국 록뮤직의 개척자인 신중현을 찾아가 가수의 꿈을 키웠다. 신중현도 김추자의 재능에 반해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었다.

1969년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발표하면서 김추자 시대는 막을 올리게 된다. 밝은 바이브레이션에 애절함이 묻어나는 그녀의 음색은 매력이 넘쳤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의상과 스테이지 매너로 환각과 도발을 떠올리게 하는 사이키델릭한 무대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꽃잎’ 등 우리 가요역사에 남을 명곡들을 양산하며 ‘김추자 문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경직된 군사정부는 그녀를 풍기문란이란 죄목으로 활동을 제한했다. 공안당국의 관찰에서 벗어나려고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간첩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필자의 기억에도 초등학교 시절에 춤추는 그녀의 손동작이 간첩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해괴한 얘기를 중학생 형들로부터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김추자는 당시 우리가요에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입증하며 문화적 개화를 이루었다.

음을 높이 올려 질러대고 울부짖으면 노래 잘하는 가수로 대중들에게 어필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가수나 제작자에게 40년 전의 김추자 노래라도 듣고 느끼라고 강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새콤달콤한 김추자 노래를 기억한다면 새콤하고 향이 깊은 체리 빛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그 어떤 디바도 억지스럽게 질러대거나 울부짖지 않았다.

아쉽게도 1971년 폭력배 출신 매니저의 청혼을 거절하여 폭행을 당하고, 1975년 대마초파동에 연루되어 1세대 디바 김추자는 무대를 떠났다. 그녀를 떠올리며 진정한 디바에 대해 목이 타는 듯 갈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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