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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펑펑 흘리며 본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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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펑펑 흘리며 본 ‘바람이 분다’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16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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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이 영화는 요즘 은퇴설로 한 번 더 세간의 귀추를 주목시킨 일본 출신 애니메이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니까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습관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바람이 분다>는 아이들이 보기에는 내용이 좀 심각한 편이다. 성인이 된 남자주인공이 줄곧 담배를 피워대는 것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으니 간단히 청소년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하여간 나는 별로 관객들이 들지 않은 썰렁한 주말 객석에 앉아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키고 5분이 멀다 하고 눈물을 흘렸다. 애써 감정을 눌러놔도 주책없이 퐁퐁 눈물이 솟아나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슬픈 영화냐 하면 별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비행기 만드는 꿈과 재능을 동시에 겸비한 소년이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하여 숱한 좌절과 고난을 겪으며 마침내 늘 그리던 새로운 비상의 성취를 일궈낸다는 줄거리에서 슬픔은 역경의 통과를 위한 보조감정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내가 깊게 공감하는 아름다움에 근접한 장면을 보게 되면 나는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아름다운 공명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다. 이 영화 <바람이 분다>에서 나는 정확히 그런 경우의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주절거리다 보니 "뭐가 그렇게 아름다운가?" 이런 질문이 귓가에 왱왱거린다. 맑은 마음을 가진 인물이 소년 시절의 갸륵한 꿈을 향해 건실하게 성장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선망을 어깨에 건 채 부단히 꿈을 둘러싼 겹겹의 벽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 자신의 재능이 가지는 선과 악 두 측면 사이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꿈의 본질을 이룰지 모르는, 목표 너머 또 다른 미지의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추구의 극한에까지 도전하는 그 표정.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이 영화 <바람이 분다>에도 굽힘 없는 의지로 자신의 운명적 과제를 풀어가는 캐릭터가 애초부터 나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적합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쉴 새 없는 눈물줄기를 이루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자신이 끊임없이 오류를 고쳐 만든 비행기들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차 없이 추락해 폭파하는 모습을 보며 이 가당찮은 꿈의 청년이 의연히 보여준 행동들에 실마리가 있다.


만일에 그가 영웅다운 캐릭터를 표상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면 어떤 강렬한 절망이나 어떤 강건한 의지가 그의 표정과 몸짓을 전부 사로잡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무수한 실패에 태연했다. 하지만 그 태연한 모습은 초월하거나 달관한 방식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그런 모습을 내보일 수 있었을까. 바로 주어진 문제에의 더없는 몰입과 천착이다.

여기서 그의 몰입과 천착에 무언가 더욱 큰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 그의 곁에 있었음을 또한 놓쳐서는 안되겠다. 무슨 성공담 공식 같아서 유치해보일지 모르겠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 힘이란 사랑의 힘이다. 단순한 헌신과 희생으로 버무려진 동기부여의 힘이 아니라 그 자체 아름다움으로 견인되는, 소중한 존재의 발현을 향한 묵묵한 동행의 힘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또 눈물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조금만 울고 다시 시작해보자. 아름다움 앞에서 울 수 있을 때 아름답게 살 힘이 생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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