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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어 숫자만큼이 딱 당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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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어 숫자만큼이 딱 당신의 세계
  • 석길암(금강대 불교문화여구소 교수)
  • 승인 2013.09.13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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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단어를 사용하는가?

일상어라는 말이 있다. 일상에 사용하는 언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국어사전에 수록된 단어의 개수는 최대 50만 단어 내외에 이르기도 한다. 또 상용한자(常用漢字)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한자어라는 말이다. 보통 자전에 기록되는 한자의 개수가 5만개 안팎이고,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한자는 1~2000개 범위 안에 있다고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단어의 개수는 불과 1000개 안팎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사전에 수록된 단어 수 역시 50만 개 내외다.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상어는 불과 1000개 내외를 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1000개 내외의 단어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좁은 범위의 상식을 넘어서기 위해서 가장 많이 권장하는 방법은 독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경험의 범위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지각하게 되는, 혹은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좁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기 위해 또 하나 권장되는 방법은 여행이다. 여행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한다. 그 전혀 다른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서 내가 알고 있는 단어 혹은 상식의 범주가 깨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연의 풍경이란, 산이 있고 강이 있는, 달리 말해 강산이 이어지고, 그 끝 간 곳에 바다가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끊임없이 모래사막만 펼쳐지는 자연풍경도 있고, 끊임없이 초원만 펼쳐지는 자연풍경도 있다. 그런 이야기는 숱하게 들어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또 다르다. 그래서 여행은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 혹은 의미를 추가하는 행위이고,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과, 걸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을 전해준다. 그냥 다른 경험이 아니다. 전혀 다른 경험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독서 역시 넓게 보면 이 여행과 같은 맥락의 행위다. 독서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기 위해 떠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서와 여행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는 전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매개체가 된다.

불교에는 ‘유식(唯識, vijñapti-mtra)’이라는 말이 있다. ‘오로지 인식할 뿐’이라는 말이다. 일반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 역시 이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개념’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개념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세상을 구성하고, ‘나’를 구성한다는 이야기다. 곧 ‘나’ 스스로에게 인지되어 있는 세상이란 것은, ‘내’가 지각한 개념들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만큼의 언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이야기도 된다. 곧 알고 있는 만큼의 언어가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의 범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세계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각하는 단어들만큼 주어지는 것들이다.

다시 일상어로 돌아가자. 우리는 보통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 당장 볼펜을 들고서 당신이 아는 단어를 적어보자. 당신은 몇 개나 되는 단어를 적을 수 있는가? 일상어, 상용한자 같은 이야기를 앞에서 했는데, 적어도 1000개 내외의 단어는 적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려서 적어낼 수 있는 단어의 숫자는 1000개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1000개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으면 200여 개, 적으면 100여 개의 단어를 떠올리는데 그친다. 떠올리려고 애써서 떠올리는 단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적어 보라고 하면 그 숫자는 더욱 적어진다. 생각해보자.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부터 다시 적어 보자. 어떤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내 일상을 지배한다. 그것은 나에게 꼭 필요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내게는 없는 어떤 바람의 대상일 수도 있고,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어떤 물건일 수도 있고, 내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가장 먼저 떠오른 그것이 지금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삶들은, 거기에 아주 충실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핑계를 대면서 회피하고 있거나 적당히 모른 체하고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의 숫자에 놀란다. 너무 적어서.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세상이 그토록 좁았던 것에 대해서 놀라는 것이다. 또는 자신이 쉽게 떠올린 혹은 너무 자주 사용하는 일상어가 의외의 것이어서 놀란다.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자각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의 숫자만큼이 당신에게 익숙한 일상의 세계다. 비슷한 일상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비슷한 세계를 공유하는 것이고, 다른 일상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다른 만큼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의 세계에 익숙해져서 혹은 갇혀서 살아간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일상어의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

"아, 이 사람은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구나."

때로는 그 다름이 신기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다름이 외면과 배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대상을 생각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삶에서 그 다른 생각들은 배제의 대상이 되거나 무시된다. 그리고 그 배제와 무시를 통해서 나도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아픔을 겪게 된다. 내가 아는 일상어의 비좁은 세계가 나를 그리고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히는 칼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칼날을 칼날이 아니라 이해하고 보듬어야 될 세계로 인지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렇다면 일상어의 다름이 아픔의 칼날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는 여행을 권하고 싶다. 책 속으로의 여행이든, 도보여행이든 혹은 다른 나라로의 여행이든, 다른 형식의 삶 다른 형식의 일상어에 대한 경험을 새롭게 익힐 수 있는 계기를 스스로에게 주도록 권하고 싶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분이라면, 술 한 잔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가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부라면, 하루나 이틀 쯤 가사를 모두 손에서 놓아버리는 방법도 괜찮다. 그리고 생각해보자. 나는 어떤 일상어를 사용하는가? 나는 어떤 일상어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어떤 일상어를 싫어하는가? 그리고 난 뒤에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을 시도해보길 권한다. 단 그 여행 중에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길 권한다.

"나는 몇 개나 되는 일상어를 알고 또 사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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