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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에서 ‘나의 여배우’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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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움>에서 ‘나의 여배우’를 보다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09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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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최근 개봉돼 상영되고 있는 SF영화 <엘리시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타급 배우 기용으로 스크린을 적절히 갈무리한, 평이한 스케일의 미래영화다. 별다른 자극 없이 비교적 담백하게 지구적 빈부 양극화를 배경으로 두고 미국영화 단골테마인 영웅 서사를 그런 대로 매끄럽게 담아냈다. 뭐 그뿐이다.

생활도 바쁘고 고전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양성영화, 그밖에 관심을 둘 특이한 영화들을 찾아보느라 짬을 내기도 어려운 마당에 멀티플렉스 킬링타임용 미국 SF를 굳이 찾아본 이유는 단 하나! <엘리시움>에는 관록의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그저 관록의 여배우이기 때문에 1분1초가 피처럼 아까운 여유를 낸단 말인가? 사실 나에게 조디 포스터는 엄청나게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늘 일거수일투족을 스토커처럼 지켜보는 여신 중의 여신 격 여배우다. 시쳇말로 허접한 영화에 간혹 출연한다 해도 단지 그녀가 스크린 한쪽을 점거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객석에 앉아 앙망의 고개각도로 그녀의 몸짓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인 고로 그녀의 옛날 출연작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만을 언급하는 정도로 그녀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하도록 하자. 이들 영화로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난 이후에도 꾸준히 1년에 한 번 정도는 주연급 출연작을 내거나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연출해내거나 다른 이의 영화를 제작해주거나 보조출연하거나 하면서 미국영화의 한 부분을 감당해내는 모습을 보여 왔다.

나의 머리 한쪽 구석에 늘 액자처럼 걸려있는 조디 포스터의 모습을 모처럼만에 극장에서 영화 <엘리시움>을 통해 보는 것이니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애초에 제쳐두고 탐미하듯이 그녀만을 바라보는 행복을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모든 걸 뒤로 하고 겨우 심야상영시간에 기회를 마련해 객석 맨 앞자리에서 달콤한 재회를 즐겼다. 물론 나만의 재회지만!


그녀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나는 이렇게 되뇌며 스스로 미소 지었다. "요즘 좀 야위셨군." 어릴 적 추앙해마지 않던 동네 어느 누나의 존재와 같이 이미 나의 심리적 정서 안쪽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여배우는 결코 스크린 속의 인물만이 아니다. 이런 친근감 때문에 때로는 영화 속 이야기가 혼란스럽게 이해되기도 한다. 심지어 그녀가 악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데도 그녀의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효과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생명회복을 꿈꾸며 지구바깥 천국의 우주도시 ‘엘리시움’으로 날아오는 빈곤한 이주민들의 낡은 우주선을 그저 한 마디 ‘폭파시켜!’로 가볍게 처리해낼 줄 아는 냉혈한 권력자의 모습인데도 그게 조디 포스터여서 멋져 보이고 다들 그렇게 해도 무방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내가 아무리 윤리적인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너무 좋아하면 판단력은 쉽게 무너져 내리는 법.
물론 그건 그때뿐이다. 캄캄한 상영관에 조명이 들어오고 삼삼오오 출입구로 관객들이 빠져나갈 때 내 눈 속에는 영화내용은 깡그리 증발되고 딱 그녀의 굳은 표정들만이 남았다. 이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그녀는 왜 악역을 선택했을까?" 절대 악역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표정의 사람들이 주로 엄청난 재난을 몰고 오는 파렴치한 악마였던 것을 수차례 보아오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어느 여성권력자의 미소가 겹쳐보이던 것은 우연이 아닐 듯싶었다. 물론 착각에 불과할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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