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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지, 왜 서울대 규장각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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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지, 왜 서울대 규장각에 있나?
  • 김교년(행복도시건설청 학예연구관)
  • 승인 2013.09.02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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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문화자산이야기 | 왕의 친필을 모신 어서각

예전에는 신언서판이라 해서 사람의 됨됨이를 몸가짐, 말씨, 글씨, 판단을 보고 따졌다. 몸가짐이나 말씨, 판단은 증거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테지만 글씨만큼은 경우에 따라 수천 년을 살아남는다. 우연한 기회에 옛 글씨 전시회에서 대의와 명분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린 조선의 선비 조광조선생의 글씨를 본 적이 있다.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글자에서 마치 선생을 직접 뵙고 있는 듯 감흥을 느낀 후에는 누군가의 글씨를 대할 때면 글쓴이의 품성이 어떠했을까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 도시의 소중한 자산 하나가 임금의 글씨를 모셔두었던 어서각이다. 이런 고건축물이 우리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담긴 우리도시만의 역사는 소중하기 그지없다. 알려지기로는 원래 이 건축물에는 태조 이성계, 세조 이유, 영조 이금, 고종 이철의 글씨가 보관되었으나 지금은 태조의 어서만 남아, 그 진본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고 어서각에는 복사본이 걸려 있다.

세종시 남면 고정리에 소재한 어서각
세종시 남면 고정리에 소재한 어서각

태조에게는 신의왕후 한 씨와 신덕왕후 강 씨 두 분의 왕후가 계셨다. 신의왕후는 정종 이방과와 태종 이방원 등 6남 2녀를 두셨지만 조선개국 1년 전에 돌아가셨고, 신덕왕후는 2남 1녀를 낳으셨고 조선개국 후 4년째 되는 해에 운명하신다. 어서각에는 태조의 둘째부인이신 신덕왕후의 친오빠 강순룡에게 벼슬을 하사한 왕지가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진본을 보려면 서울대 규장각을 찾아야 한다. 문화재조사차원에서 규장각을 방문하여 왕지를 실견한 적이 있다.

태조이성계의 어서
태조이성계의 어서

오랜 세월을 이겨낸 왕지에는 조선을 개창하고 무수한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생사고비를 넘나든 무인의 강건한 기개와 풍모가 남아 있었다. 또한 왕지하고는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실견하는 동안 전장에 나서는 한 젊은 장군과 마을 처녀의 아름다운 버들잎사랑 이야기가 어렴풋이 스쳐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작은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로 출발했지만 이방원과의 갈등은 왕자의 난을 거쳐 곡산문중의 참화로 이어졌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끝내 권력투쟁에서 밀린 왕지의 주인공 강순룡은 죽임을 당하고 신덕왕후 역시 처음에는 왕릉이 정동에 모셔졌으나 태종이 즉위 후 태조의 정궁은 친모인 신의왕후뿐이라고 하면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시켜 지금의 정릉으로 이장한 잔인한 궁중비사가 전해져 온다.

그럼 우리 도시에 있어야 할 태조어필이 무슨 이유로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을까. 태조가 강순룡에게 내린 왕지는 어서각이 세워진 헌종12년(1846) 전까지는 곡산 강씨 문중에서 소장하였고, 이후에는 어서각에서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갑자기 1931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서 이 유물을 구입하게 되면서 왕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 왕지를 판 사람은 강씨 성을 가진 자가 아니라 현고선이란 뜻밖의 인물이 당시 유물대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강씨 문중에 문의하였지만 현고선은 문중에서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며 어떤 연고도 없다고 하였다.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왕지를 소장하게 되었고, 왜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팔게 되었는지 역사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왕지의 역사적 가치는 어떨까. 태종2년(1402년) 문신 성석린에게 영의정부사겸판개성유후시사라는 벼슬을 내린 왕지가 1983년 보물 제746호로 지정된 바 있다. 유물의 역사적 가치를 시간의 장단으로만 가늠할 순 없지만 성석린 왕지보다 시기적으로 7년 앞서고, 태조 이성계의 친필인 점, 크기도 성석린 왕지(가로 61.3㎝, 세로 32㎝)보다 강순룡왕지(가로 68㎝, 세로 155㎝)가 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강순룡 왕지는 보물이상의 문화재로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문화재는 원래의 장소에서 보관하고 전시해야 제대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강순룡 왕지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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