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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며 드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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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며 드는 생각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3.09.02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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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한 마디로 재미있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 <괴물> 등 한국영화 흥행사의 기록을 새롭게 갈아치우며 기염을 토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설국열차>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영화 잘 봤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즐거움을 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우선은 이 자리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설국열차>가 지금 시각 몇 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느냐는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천만 관객도 훨씬 뛰어넘어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수치에 육박하리라는 전망도 별로 내놓고 싶지 않다. 정색을 하고 묻고 싶다. 관객 수에 왜 그렇게들 골몰하는가? 향유자의 숫자가 작품의 진가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한국에서 라면과 소주는 시대를 초월하며 엄청난 성취를 드높인 희대의 예술작품일 것이다.

하여튼 그런 질문에 대해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설국열차>가 관객 수에 비례할 만큼의 성취가 없는 평범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가 이를테면 주목할 만한 영화라고 평가된다면 그것은 관객 수의 크고 작음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 이해돼야 한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엄청난 관객들이 몰리는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이미 흥행규모 담론에 영화문화가 세뇌된 결과일 뿐이다.

내 관점에서 <설국열차>에 대해서는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상 인류사회의 종말적 현상이나 한국사회의 계급적 현상에 대한 은유를 언급하기 이전에 이 영화가 오롯이 ‘오락영화’라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 맞춰 말하자면 <설국열차>는 재미있게 보고 즐기고 시간을 잘 때우게 해주는 영화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한 영화로 간주된다.

또 다시 이런 평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영화표 값 아깝지 않게 하면서 2시간 남짓 아무 생각 없이 스크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영화라고 언급하면 엄청나게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하는 열혈 팬들의 아우성이 몰아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평은 ‘오락영화’에 대해서는 극찬에 가까운 호평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설국열차>의 돈 값하는 재미인가? 인류 자신의 자학적 붕괴로 말미암아 불의에 빙하기로 접어든 지구에서 오로지 달려야만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세계일주기차를 배경으로 열차머리 탑승객인 상류층과 열차꼬리 탑승객인 빈민층이 드러내는 극단적인 대립관계가 기묘한 쾌감을 유발한다. 전체 생명을 조율하며 고독을 운명처럼 여기는 포스 작렬의 열차소유자 한 명과 바퀴벌레 ‘영양갱’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연장하다가 끝끝내 참지 못하고 봉기를 한 수많은 열차불청객들.

이미 이러한 계급적 대립은 새로운 영화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취의 한 국면으로 평가될 수 없다. 차라리 그것은 하나의 장르적 배경이 될 뿐이다. 한국사회 또는 인류사회의 은유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은 사실은 <설국열차>의 다른 무언가를 위한 단순한 배경이라는 것이다.

<설국열차>에 대해 오락영화의 한 국면을 보여줬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내 관점에서는 사회계급적 대립관계를 가학-피학의 쾌감관계로 풀어낸 데에 있다. 통치자의 즐거움은 피치자의 굴욕이고, 피치자의 쾌락은 변함없는 자신의 굴욕에 대한 발견에 있다. 그것이 한국사회 오락영화에서 누구나에게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한편으로 끔찍하고 다른 한편으로 전망 없는 사회의 절망을 이제는 즐길 줄 아는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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