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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함께한 여름 애니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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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함께한 여름 애니극장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3.08.2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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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애니메이션에 몰입하는 어린이들의 뒷모습
애니메이션에 몰입하는 어린이들의 뒷모습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40대 여성들을 주요 관객으로 하는 영화를 고르다가 그들의 자녀들이 동반 관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7월 하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추억의 명화극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조치원읍 신흥리 커피쿰 세미나실에는 직전에 열린 체스반 어린이들이 진을 치고 들이닥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러 가자고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이끌고 객석을 채운 것이었다.

이 날 상영사고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됐다. 영화는 시작되고… 스크린에 펼쳐지는 수녀들의 대화는 자막 없이 영어 원음 그대로 발성됐다. 참석했던 한 어머니는 "평소에 우리 애들은 원어민 발음으로 영화를 보곤 했어요"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조명을 꺼서 어두워진 실내였기에 망정이지 그때 나의 얼굴은 새빨간 석류열매 같았다. 살짝만 만져도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눈물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겨우 10분 만에 빔 프로젝터를 꺼버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에 반드시 여러분이 제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골라오겠습니다." 양해 말씀에, 부탁 말씀에, 감사 말씀에 나의 목소리는 그 낭패감을 만회하기 위한 말들로 목멘 소리가 됐다. 황금 같은 아이들과의 저녁 시간을 보상할 수 있는 길은 그 방법밖에 달리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지루하지 않은 걸로 부탁해요." 지나가며 나에게 던진 한 아이의 요청이 귓가를 때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다음 주 상영회를 마련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첫 작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스크린에 올렸다. 의자를 꺼떡대며 오프닝 장면을 보던 한 어린이는 극중 인물 나우시카가 바람처럼 비행기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에 갑자기 모든 동작을 정지하고 화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장장 두 시간에 이르는 상영시간 동안 옹기종기 모여든 아이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스크린에 빨려들어갔다.

왜 지금까지 어린이 관객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어떤 어른 관객들보다도 영화 관람에 대한 몰입도가 큰지 모른다. 즐거운 장면, 괴로운 장면, 슬픈 장면, 기쁜 장면 각각에 대해 눈앞의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아이들만의 보물 같은 심성인지 모른다.

열화와 같은 호응에 힘입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중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이웃집 토토로>를 2주 간격으로 연이어 상영했다. 이 작품들은 비록 동심을 자극하는 상상 속 애니메이션 세계를 담고 있지만 어른들이 봐도 좋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것들이다. 관람 도중 물을 달라, 바람 쏘이게 해 달라는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들어주는 어머니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통해 감동을 얻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현재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확대돼 왔다. 어린이들에게 바짝 다가선 미국 3D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애니메이션영화가 없어서 관람하지 못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것인가. 이건 뜻하지 않게 아이들과 함께한 여름 애니 극장에서 알게 된 새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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