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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이 보다 더할 수 없는 전쟁의 잔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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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이 보다 더할 수 없는 전쟁의 잔학상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6.1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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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作 ‘한국에서의 학살'
파블로 피카소 작'학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의 잔혹함이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외마디 탄식음과 함께 숨이 턱 막힌다.

무장한 군인이 전라의 임산부와 어린아이를 집단학살하려는 찰라의 순간이다. 발가벗은 어린아이는 겨누는 총을 피해 반사적으로 머리를 땅에 박고, 공포에 질린 여인의 표정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잔혹함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르니카의 작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1951)’이란 작품이다.

피카소가 6.25 전쟁의 참상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했다니, 다소 낯선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 내란 중이던 1937년 4월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독일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게르니카라는 작을 마을을 맹폭, 2000여명의 시민을 죽음으로 몬 사건을 주제로 ‘게르니카’라는 대작을 완성한 것과 연결지으면 아주 낯선 것은 아니다. 전쟁을 소재로 작품을 한 이력의 소유자이니 그렇다는 얘기다. 

다시 '한국에서의 학살'로 돌아가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자. 오른쪽 임신부와 소녀는 체념한 듯 넋이 나간 표정이다. 왼쪽 사내 아이는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 등 뒤에 숨고,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임박한 죽음을 아는 듯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왼쪽의 두 여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울부짖는 표정이 마치 괴물의 형상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으면 이런 표정을 지을까.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무장군인은 인간성이라고 찾아볼수 없는 로봇으로 묘사했다. 무쇠 마스크를 쓴 군인의 총부리와 칼끝은 연약하고 힘없는 여인들을 겨누고 있다. 발사 명령만 내리면 펼쳐질 비극은 너무도 뻔하다.

그림 중앙에 원경으로 폭탄에 부서진 건물과 불에 탄 잔해를 배치해, 전쟁의 참상을 암시하고 있다.

피카소가 6.25를 소재로 작품을 한 것도 의외이다. 작업과정의 뒷 얘기를 들어보면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다.  당시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1951년 5월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미군의 한국전쟁 개입을 반대하는 내용의 작품을 의뢰 받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완성한 피카소는 파리 ‘살롱 드메’에 전시를 했으나 관심은 기대 밖이었다. 의뢰자는 반미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국 등 자유진영은 반미 선전물로 치부해 평가절하했기 때문이다.

이런 창작배경 때문에 1980년 처음 미국에서 전시됐으며 1980년대까지 국내에서도 반미 예술품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논란의 곡절은 있었지만 요즘의 해석은 다르다. 철저한 반전주의자였던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통해 반전과 보편적 휴머니즘을 표현하려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붓은 전쟁에 맞서기 위한 무기이자 방패였던 것이다.

화면 중앙을 중심으로 극명하게 대비시킨 이 작품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년)’과 마네의 ‘맥시밀리언 황제의 처형‘의 구도를 차용, 큐비즘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번안한 작품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을그리면서 구도를 차용한 고야가 1814년에그린 ‘1808년 5월 3일’

‘한국에서의 학살’은 작품완성 70년만인 2021년 한가람 미술관이 피카소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마련하면서 한국에 처음 선보여 많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을 통해 6.25 전쟁의 참상의 되새겨 교훈으로 삼자는 의미로 6.25를 앞두고 이 작품을 소개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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