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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살 선인장의 죽음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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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살 선인장의 죽음에서 배우다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3.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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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 호텔’과 사회적 상속

동화작가 브렌다 기버슨이 멋진 이야기를 쓰고 미간 로이드가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린 동화책 <선인장 호텔>은 뜨겁고 삭막한 사막에서조차 숱한 생명들이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원래 어린이들을 위해 쓴 동화책이지만 어른들이 읽고 생각해볼 점도 참 많은 것 같다.

어느 사막에 사구아로 선인장의 열매 하나로부터 씨가 툭 떨어진다. 쥐 한 마리가 그 씨를 옮기고 씨앗은 서서히 싹을 틔운다. 10년이 가고 25년이 되면서 토끼 한 마리가 선인장 그늘에서 쉬다가 좀 갉아먹고 가기도 한다. 새, 벌, 박쥐도 모여든다. 50년이 지나자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매를 먹으러 왔다가 아예 눌러 앉아 산다. 60년이 지나자 온갖 새들이 둥지를 튼다. 150년이 지나면서 선인장 자체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된다.

마침내 사막의 온갖 동물들에게 호텔이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0년이 되자 더 이상 기력이 없는 선인장은 쿵-하고 쓰러진다. 그러나 선인장은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지네, 전갈, 개미, 도마뱀 같은 생명체들에게 좋은 집이 된다. 동시에 그 주변에는 새끼 선인장들이 더 많이 자라면서 서서히 숲을 이룬다.

참 아름다운 이야기다. 생명체가 살지 못할 것 같은 사막에서조차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의 과정이 진행될 줄이야.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사막은 아무 쓸모없는 땅이지만, 자연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삭막한 곳조차 넉넉하고 소중한 생명의 공간이다.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상부상조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탐욕적으로, 그리고 이기적으로 자기들만 잘 살고자 하는 바람에 나무를 베고 함부로 공장을 짓고 함부로 오폐수를 버리고 함부로 산을 허무는 바람에 아프리카나 중국 등지에 온갖 사막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인간이 망쳐놓은 지구의 일부, 인간이 쓰레기처럼 내다 버린 사막에서조차 자연의 생명력은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선인장 호텔’은 인간의 겸손함을 촉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선인장 하나가 새와 벌, 쥐와 토끼 같은 온갖 생명체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점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소중함을 일깨운다. 어쩌면 선인장은 다른 생명체를 위해 자기 몸을 내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모든 존재는 ‘상호 존재’이다. 바로 이것이 ‘관계’의 본질이 아닐까. 네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깨우침, 이것 또한 선인장 호텔이 우리에게 알려준다.

나는 또한 사구아로 선인장 이야기를 통해, 25년이고 50년이 지나도 꽃이 필지 안 필지 모르는 상황에서조차 씨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설사 오늘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당장 어떤 결실을 맺지 않아도 좋다. 그것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좋은 꽃과 열매를 맺으리라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늘 좋은 씨 하나를 뿌릴 수 있고 뿌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값지게 만드는 근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치는 교육에도 적용될 수 있고 경제에 적용될 수도 있다. 우리 삶의 전 과정에 이런 발상이 필요하다.

끝으로 나는, 선인장이 200년 뒤에 쓰러지고서도 지네나 전갈, 개미나 도마뱀 같은 이웃들에게 좋은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상속’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사람이 죽을 때 유족에게만 물려주지 말고 온 사회를 위해 물려주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네 인간은 각자 많이 벌어 제 가족과 제 자식만 챙기기에 바쁘다. 재벌가 자손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랍시고 국제중학교에 특혜 입학을 하는 일이라든지, 대기업 2세는 물론이고 3세조차 10억 이상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 같은 것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비단 부자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 팔꿈치로 옆 사람을 치는 살벌한 경쟁을 하며 힘겹게 산다. 그러면서 세상의 흐름은 너무나 빠르다. 오죽하면 외국의 사람들조차 해외 현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빨리빨리’라고 인사를 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빨리 성장을 외치면서도 우리네 삶은 어떤가? 개인의 삶은 고달픈 반면, 사회적 양극화는 심해지고 사회적 불행도는 높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사막의 선인장처럼 ‘사회적 상속’ 개념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좀 더 느긋하게 일하며 더욱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 모두가 이 아이디어에 동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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