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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준 선물 상상력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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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준 선물 상상력의 도약
  • 정은형(한남대 예술문화학과)
  • 승인 2013.05.2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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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붓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를 타고난 천재로 상찬하거나 혹은 정반대로 세기의 사기꾼이라 비난하기도 하지만 그의 영향력 있는 위상에 대해서만은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피카소의 작품을 미적으로 감상했다거나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개인적인 고백을 듣기는 그리 쉽지 않다. 상징주의로 시작하여 입체파 미술을 거쳐 초현실주의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경향을 넘나들었던 그의 작품이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기에는 너무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간혹 너무도 지고한 명성이나 끈질기게 따라붙는 악명으로 인해 오히려 실제 작품을 진지하게 감상하려는 시도가 조기에 좌절되는 경우도 있다. 걸작으로 손꼽히는 유명한 문학작품들이 가끔 제목만 널리 알려진 채 정작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경우와 흡사하다.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 같은 회화가 형식적으로 너무 파격적이어서 감상하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게르니카’(1936)와 같은 대형작품에서 그 명성에 부합하는 진한 감동을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피카소의 작은 소품들로부터 감상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 캔버스에 유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예컨대 유쾌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자아내면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그의 작품 ‘소의 머리’(1942)를 보자. 제목에서처럼 분명 소의 머리 모양을 한 조각 작품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근사한 조각으로만 보였던 것이 다름 아닌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버려진 폐자전거의 부품들이 피카소의 눈에는 소의 머리와 뿔의 형태가 되어 순식간에 흥미로운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고 기발한가. 일상의 사물이나 제품의 일부를 재조립하여 만든 이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앞에 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철학이나 심오한 의미로 인해 작품의 감상이 좌절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소의 머리’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상상력의 도약’이다. 상상력의 도약. 미술사 서적의 고전으로 꼽히는 <서양미술사>의 저자 호르스트 잰슨(H. W. Janson)이 피카소의 ‘소의 머리’를 상찬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창조성은 보이는 대상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손재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능력인 상상력에 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인간일수록 상상력의 움직임과 도약이 활발하여 주어진 것의 변형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욕이 넘친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적인 변형은 항상 즐거움과 유쾌함이 동반되기 마련이어서 그 결과물 또한 건강한 생동감이 넘친다.
파블로 피카소, ‘소의 머리’, 1941. 자전거 부품. 파리 피카소미술관 소장.

그런데 피카소의 놀라운 창조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내다버린 자전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속에서 소의 형상을 찾아냈던 피카소는 창조적인 변형을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작품이 또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기를 희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창조적인) 변형이 일어났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반대 방향으로 또 다른 변형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 소의 머리가 쓰레기 더미에 던져져서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것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린다고 상상해 보라. ‘내 자전거에 손잡이로 쓸 만한 게 여기 있군.’ 이렇게 되면 또 한 번의 변형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일상의 사물이나 익숙한 대상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피카소가 강조하는 창조성이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있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을 발휘할 때 우린 모두 예술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그는 분명 거장임에 틀림없다.
파블로 피카소, ‘꽃을 든 손’, 1958.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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