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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SOFA 개정논란’다시 불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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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SOFA 개정논란’다시 불붙다
  • 김재중
  • 승인 2013.03.22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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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주한미군 범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事實)은 모두 진실일까.
사실과 진실은 대부분 부합하지만 간혹 사실로 믿고 있는 상식이 허구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사실에 ‘우상(偶像)과 왜곡’이 끼어들면 여지없이 거짓 상식이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언론의 ‘사실 보도’란 것도 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우상과 왜곡’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때로 우상과 왜곡은 인간의 집단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식과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진보언론의 종가(宗家)였던 월간말부터 신생언론 세종포스트까지,
필자가 13년 동안 빼곡 히 적어놓은 취재수첩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다.
<편집자 말>


주한미군의 잇따른 범죄행위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불평등 조항이 합리적으로 개선되지 않고서 주한미군 범죄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최근 벌어진 주한미군 범죄는 경찰관을 차량으로 치어 다치게 하거나 주먹으로 가격하는 등 공권력을 무시하는 양상이어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더욱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 국내법대로라면 경찰에 물리적 위해를 가한 주한미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당장 구속해 엄벌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미 소파협정’ 때문이다.
‘한-미 소파’는 ‘(주한미군) 피의자의 신병이 주한미군에 있으면 모든 재판 절차가 종결되고 대한민국이 구금을 요청할 때까지 주한미군이 계속 구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구금 인도 요청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이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적시했을 뿐, 피의자 인도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전혀 없는 상태다.

‘한-미 소파’ 전면개정론 점화

다만 살인과 죄질이 나쁜 성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이 현행범으로 붙잡혔을 경우, 주한미군의 허락 없이 한국 측이 구금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또한 현행범으로 붙잡혔을 경우에 한한다.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필사적으로 범죄현장을 벗어나 부대로 도망치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단 부대 내로 들어가면 한국 법에 따른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한미 소파는 지난 1967년에 최초로 만들어졌고 1991년과 2001년에 두 차례 개정된 바 있다. 2차 개정 때에는 12개 주요 범죄에 한해 피의자 신병 인도시기를 ‘재판 종결 후가 아닌 기소 시점’으로 앞당기긴 했지만 최근에 불거진 특수공무집행방해 사건은 12개 주요 범죄에 포함되지 않아 제대로 된 처벌을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결정적으로 ‘한-미 소파’에는 미군이 공무수행 중 저지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한국이 재판권조차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 2002년 1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일명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 미군은 ‘과실치사’가 아니라 ‘근무태만’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미군범죄, 국제사회 골칫거리

해외주둔 미군의 범죄가 국제적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례는 무수하게 많다. 다만 그 처리과정이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1995년 당시 미국대통령 클린턴은 주일미군의 성폭행 사건에 대해 일본 여론이 들끓자 재판권 포기는 물론 공개적인 사과메시지를 일본에 전달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성폭행, 성추행 사건이 일간신문의 사회면 단신기사로 처리되는 한국적(?) 현실과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사과를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도 문제였다.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이 벌어지고 반미감정이 봇물처럼 확산되자 당시 미국의 조지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는 비공개적인 사과표명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간접적으로 공개했을 뿐, 클린턴이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공개석상에 등장에 고개를 숙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반미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애쓰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인 것처럼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효순 . 미선이를 기억한다면…

한국정부의 태도는 1999년 미국의 유고 공습 시, 오폭으로 중국대사관이 불탔을 때 중국정부가 취한 태도와도 크게 비교가 됐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장택민 중국 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전달했으나 중국 정부는 "미국의 사과에 주목한다"는 외교적 수사로 답변했다. 사과는 받아들이되 자국민의 자존심을 훼손시키지 않았다는 국제사회의 평가가 뒤따랐다.
최근 주한미군 범죄로 국내 여론이 들끓자 청와대가 나서 강력한 유감표명에 나서고 주한미군 측도 금주령을 포함해 강력한 통제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전 미군 장갑차에 치여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효순이, 미선이’의 이름을 기억하는 국민들이라면 이 같은 조치가 얼마나 무성의한 임기응변에 불과한 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불평등한 ‘한-미 소파 개정’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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