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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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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을 위한 '변명'
  • 이계홍
  • 승인 2021.05.20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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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백신 쟁탈전과 반도체, 전기차 등 새로운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는 요즘
엄중한 처벌과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리도 중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국민여론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법치주의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필수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어왔는가. 우리는 기득권에만 관대한 법치주의를 바라보며 오늘까지 왔다. 시민을 위해 작동되지 못한 역사를 보고 우리는 법치주의에 관한 한 공허감과 좌절감을 맛봤다.

정치와 사법부, 대기업집단, 그리고 언론이 시대정신이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했던가. 그렇다고 흔쾌히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기득권과 힘 있는 자, 법을 이용할 줄 아는 엘리트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학자는 ‘시민의 적은 바로  법치주의’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기업인들이 특히 법치를 외면한 경우를 본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자본주의의 가장 취약한 구조를 이들이 마구 흔들어놨다. 실정법이라는 그물망을 자본력으로 뚫어버린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봐왔다.


그러나 근래 예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

그는 한국 최고 재벌기업의 소유주다.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모든 ‘국민환시리’에 그를 법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추이를 예의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도, 법도 관대하게 볼 처지가 아니다. 언론-특히 경제지-과 전문가, 심지어 종교단체까지 사면을 요구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섣불리 단안을 내리지 못하는 것도 ‘국민환시리’라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재용을 사면하거나 가석방하면 민주개혁정부로 표를 얻어 당선된 문재인의 정치철학을 배신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것이고, 반대로 그를 감옥에 그대로 두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데다 상속세도 사상 초유로 냈으며, ‘백신’ ‘반도체’ 등 경제적 실리를 고려해서라도 풀어줘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게 들끓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뇌물 공여로 기소되었을 때 이재용 회장은 “내가 원해서 뇌물을 준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달라는데 한국 사회에서 그걸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삼성 경영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서는 “내 의지로 삼성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시세를 조정하라고 시킨 적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투자자의 피해가 있는 이상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은 면할 수 없겠지만, 그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1988년 전두환 정권의 5공 비리 청문회에서 “(권력이) 달라는데 안 주고 배기겠느냐”며 권력에 뜯기는 기업의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권력 앞에서는 싫어도 뇌물을 갖다 바쳐야 한다는 씁쓸한 레토릭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다.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는 5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만큼 삼성은 국민 기업이 됐다. 그렇다고 그것을 볼모로 삼성이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다면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최고 기업주이기 때문에 모범적으로 법의 과도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재고되어야 한다.

삼성 최고경영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할 CEO는 없을 것이다. 외국처럼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우리의 경우는 오너가 기업의 경영권, 인사권, 투자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한다. 그것이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이라고 해도 엄연한 현실이다. 차제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합당한 자본과 경영 분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다는 것이다.

장기간의 오너 부재는 삼성전자의 리더쉽 부재와 신산업 진출 및 빠른 의사 결정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은 ‘속도감’이 가장 큰 투자고 자산인 시대다. 적절한 시기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되거나 도태될 수 있다.

그리고 속물적으로 말해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타계와 함께 유족들이 상속세 12조원을 납부하기로 하고,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 기증, 감염병 대응 7000억원 기부, 소아암·희귀 질환 어린이 치료를 위한 3000억원을 기부한 것도 국민은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많은 상속세와 소장 미술품 기증은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그래서 삼성이 저지른 범죄의 파급력은 국민들이 피상적으로 느낄 뿐이다.


팽팽한 의견 속 정부·여당은 눈치를 보고 있는 형국


물론 준엄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백신 사면’에 이은 ‘반도체 사면 여론’을 비판한 정의당은 “고 이건희 회장 유산 관련 상속세 납부와 기부 계획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기부 천사로 미화하고 있지만, 이재용은 기부 천사가 아니라 범죄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벌인 분식회계, 주가 조작, 뇌물수수는 시장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린 중대한 범죄자다. 삼성은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제일모직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시세 조종을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동원되었고 금융위원회 등 관련 당국이 조력했다. 그 모든 것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판 중인 사람을 사면하자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사익을 위해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히고 정권 실세에 불법 로비를 한 중범죄자에게 사면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그러나 경제계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위기와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면서 이 부회장이 일선에 복귀해 우리 반도체 산업을 일구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가운데 실형 확정 전에 이미 1년 가까이 수감 생활을 해 가석방 요건이 충족됐다. 가석방의 필요충분조건은 갖춘 셈이다. 최고의 재벌기업인이기 때문에 모범적으로 역차별을 당한다는 것도 문제일 수 있다.

백신 쟁탈전과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새로운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제고되는 마당에서는 신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엄중한 처벌과 명분도 중요하지만 국가 경제의 실리도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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