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암 이철영 선생 100주기', 되살아난 민족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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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이철영 선생 100주기', 되살아난 민족정신
  • 이계홍 주필
  • 승인 2019.12.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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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의 시선] (1편) 왜 나쁜 역사는 반복되는가, 민족의식 퇴색

후대에 평전으로 되살아난 이철영 선생 정신
지난 27일 어진동 초려역사공원에서 열린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출판기념회'. 그의 정신은 퇴색되어가는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불씨가 되고 있다. 

[세종포스트 이계홍 주필] 지난 27일 세종시 어진동 초려공원 갈산서원에서 열린 구한말 유학자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인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출판기념회’는 여러모로 필자에게 생각을 가다듬게 했다. 

오늘날 한일 갈등이 여전히 유효한 과제가 되어있고,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처해진 위치에 따라 비틀어지고 뒤틀렸다는 점에서 드는 생각들이다. 

평전 출판기념회는 뜻있는 이들이 찾아 성암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기리는 시간이었다. 평전은 성암 선생의 4대 후손 이상익 교수(부산교대)가 집필했는데, 책을 사무실로 가져와 대충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몇 대목을 발견했다.  

√ 성암 선생 평전을 읽기에 앞서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성암 이철영 선생 평전. 

우선 자신을 체포하러 온 왜경을 준엄하게 꾸짖는 ‘대화’가 눈길을 끌었다. 유림 특유의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레토릭이 아니라 직접화법으로 당당하게 나서는 언어들이 생생해서 바로 눈  앞에서 선생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성암 선생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유교적 멘탈리티에 젖어있다. 

‘레거시 유림’ 특유의 꽉 막힌 선비의 캐릭터로도 비쳐진다. 그러나 망국의 현실을 보면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본 관원에 대한 질책,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서세동점의 격류 속에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고 의연히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는 숭고하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성암 선생 평전을 읽기에 앞서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밝히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성암은 1867년 충남 공주 중호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이 나던 해 타계했다(평전에는 1920년 타계로 나와 있어서 통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성암은 조선의 국운이 기울 때 태어나서 일본 정부와 수구 집권세력인 을사오적이 야합해 조선을 병탄한 망국의 과정을 모두 겪었다. 이를 지켜보며 실천적 유학자로서 선비의 양심으로 이의 부당성에 저항한 인물이다.

그는 중앙 무대에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시골에 묻혔을지라도 시대의 모순을 고뇌하고, 식민지 약탈을 노리는 일본을 향해 저항하는 의로운 시골 선비였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오히려 더 값지고 고귀하다고 평가된다. 

나라를 잃자 자결해버린 저항시인 매천 황현보다도 망국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적극적 행동으로 나선 자세는 또 다른 구국의 초상이다.   

성암 정신의 궤적은 그의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속의 언어는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다. 백성들이 고뇌하고 아파하는 언어들이 응축되어 있어서 백성들의 절망과 비참함과 고통을 기록한 정약용의 ‘흠흠신서’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 '왜경과 담판' , 저서에서 드러난 기개(氣槪) 

고인의 100주기에 되살아난 평전. 그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선생이 쓴 ‘치일국정부서(致日國政府書)’(1909) ‘기유일기’(19089) ‘경술일기‘(1910) 등을 통해 왜경과의 담판과 대화를 몇 대목 간추려서 인용해보자. 

1. "내가 지금 그놈(이완용)의 살점을 씹어먹더라도…"


왜경-대한이 우리 일본의 보호에 힘입어 러시아의 침략을 면했거늘 어찌하여 (물러가라는)장서를 보냈는가.

성암-그대는 하늘을 속이려 하는가, 사람을 속이려 하는가. 그대의 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왜경-그렇다면 조선에 정부가 없는가?

성암-너희에게 빼앗겨 점령되었다.

 

왜경-총리대신은 바로 이완용인데 어찌 일본이 빼앗아 점령했다고 하는가.
성암-이완용은 바로 우리나라의 역신이요, 일본의 창귀다. 내가 지금 그놈의 살점을 씹어먹더라도 비린 줄 모르겠다.

 

2. "나라를 그르친 간신들이 너희가 주는 뇌물을 탐내고…"

 

왜경-우리는 본래 우리 정부의 명령으로 와서 조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성암-일본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말할 때는 ‘조선을 보호한다’고 감히 말했으나, 실제로는 온갖 흉악한 짓을 끝없이 저지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 조선의 잘못은 다만 나라를 그르친 간신들이 너희가 주는 뇌물을 탐내고, 너희의 간계에 빠져서 강화를 맺은 것 뿐이다.

 

3. "무슨 까닭으로 조선에 와서 이러한 악독한 짓들을 하는가."

 

왜경-만일 일본의 개화한 힘이 없었다면 조선은 이미 러시아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개화는 진실로 좋은 것이다. 우리 일본이 40년 전에 영국에게 거의 망했다가 40년 후에 다시 천하의 강국이 된 것은 개명의 도를 이용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일심으로 단결한 까닭이다.


성암-일본이 이처럼 개화를 좋아한다면 능히 개화의 법도를 다 발휘했는가. 개화의 근원은 서양에서 나온 것인데, 일본이 영국으로부터 개화를 받아들일 때 영국이 일본 정부를 빼앗았던가, 군대를 해산시켰던가, 도성을 허물었던가, 일본의 군주를 겁박하여 파천시켰던가. 일본의 왕비를 살해했던가? 영국은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거늘 일본은 무슨 까닭으로 조선에 와서 이러한 악독한 짓들을 하는가. 

 

4. "그대는 오랑캐다. '그대'라고 부르는 것이 뭐가 공손치 못한가."

 

왜경-그대는 보잘것없는 백성으로서 대관(大官)의 앞에서 당돌하고 공손치 못하구나. 형법이 두렵지 아니한가. 


성암-의로 말하면 그대는 나의 원수요, 존비(尊卑:신분의 높고 낮음)로 말하면 나는 중화(中華:보편적 예법 숭상의 선비)이고, 그대는 오랑캐다. ‘그대’라고 부르는 것이 뭐가 공손치 못한가.

 

5. "내가 어찌 먼저 자살하겠는가. 당연히 먼저 너희 무리를 벨 것이니…"


왜경-그대가 호적 편입에 불응하는 것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리라고 들었다. 그러나 백이숙제는 은나라가 망한 다음 수양에서 굶어죽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합방한 날에 죽지 않고 지금까지 세상에 살아있는가.


성암-사군자가 절개를 세워 의리를 이행하는 것이 어찌 다만 백이숙제를 본받아 굶어죽는 것만 있겠는가.(중략) 너희 무리의 포학이 원나라보다 심하여 몇 번이고 나를 잡아다가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차고 부월(斧銊:도끼)로 겁박하고 옥에다 가두었다. 그런데도 내가 한결같이 굴복하지 않은 것은 소중랑과 김청음(병자호란 때의 김상헌의 다른 이름으로 알려진다)의 절의를 남몰래 흠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가 죽더라도 진실로 유감이 없을 것이요...


왜경-그대가 죽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내가 총검을 빌려줄테니 죽을 수 있겠는가?


성암-내가 어찌 먼저 자살하겠는가. 당연히 먼저 너희 무리를 벨 것이니, 이는 매우 어리석은 말이다.

 

6. "그대의 나라는 참으로 이 세상 도적들의 괴수이다."


왜경-일본제국이 조선을 합병한 것이 5-6년이나 되었다. 이 나라의 비와 이슬, 흙과 곡식 등 모든 것이 일본 황제의 소유 아닌 것이 없다. 그대가 일본을 배격한다면 무슨 마음으로 일본의 비와 이슬을 맞고 일본의 땅에서 난 곡식을 먹는단 말인가.

 

성암-몇해 전 이른바 ‘합병’을 할 때, 너희는 감히 군대를 이끌고 대궐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을 위협하고는 오히려 ‘그 나라 군주가 양여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의 충성스럽지 못한 신하들을 유혹하여 작위와 은사금(恩賜金)을 주고서는 오히려 ‘그 나라의 대신들이 즐겁게 복종했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농간으로 감히 여러 나라들에게 선전하면서 ‘조선을 점령했다’고 하니 그대의 나라는 참으로 이 세상 도적들의 괴수이다.

 

7. "그대는 어찌 나의 의로운 마음을 악심이라고 하고…"


왜경-이제 360州의 백성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거늘 그대는 홀로 무슨 악심을 품고서 이처럼 행패를 부리는가.

 

성암-그대는 어찌 나의 의로운 마음을 악심이라고 하고, 곧은 말을 어긋난 말이라고 하는가.  

√ 퇴색된 민족의식,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자산 

글들이 하나같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지사적 풍모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런 올곧고 꼬장꼬장한 실천적 유학자를 가까이 모셨다는 것은 빈약한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성암 이철영 선생. 
성암 이철영 선생. 

신념 하나로 망국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헤쳐나간 지도자를 세종시에서 만났다는 점에서 필자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요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정파적 이해에 따라 보는 기준과 관점이 다르고, 대응하는 태도 역시 다르다. 민족의식이 많이 퇴색했다는 현실도 목격한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우리의 허무와 좌절과 고난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안락과 행복과 이익을 기꺼이 헌납한 선각자들이 너무도 쉽게, 너무도 빨리 잊혀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불과 70여 년 전의 야만과 폭력과 광기에 둔감해져버리고, 정파적 이익 중심으로 사물을 보는 ‘편견의 눈’만 갖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보는 눈이 특히 그러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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