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반년을 돌아보며
상태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반년을 돌아보며
  • 박승권
  • 승인 2019.12.30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승권의 백살까지 일하기] 은밀한 피해 ‘직장 내 괴롭힘’

병원 내에서는 하급 직원에게 훈계하거나 못살게 괴롭힐 때 소위 ‘갈구다’라는 표현보다 ‘태운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사실 필자에게 ‘갈구다’라는 표현은 다소 가볍고, 심지어 친근하기까지 하다.

태운다는 것은 불로 ‘활활’ 태워 잿더미가 되도록 누군가를 꾸짖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의료계 조직은 다른 조직에 비해 다소 수직적, 위계적인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안 태우면 정신 못 차린다”, “적당히 태워놔야 사고를 안 친다” 등의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2010년대 발생한 간호사의 잇따른 자살로 인해 사회의제화 되면서 관련 연구, 정책 논의가 본격화됐다.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적정한 업무 범위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상대 직원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를 뜻한다. 예컨대 폭언, 폭행, 성추행, 따돌림 등이 대표적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3.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고, 이중 12%는 거의 날마다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6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인건비 손실 비용이 연간 4조 7800억 원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직장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은 더 이상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수면장애를 비롯해 우울, 불안, 사회 부적응, 적대감, 강박증 등을 보일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이 문제가 스트레스나 적응 등 정신 건강을 넘어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피해는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목격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날이 갈수록 복합화되고, 진화하는 형태를 보여 사회적 개입에 대한 요구도 증대되고 있다. 올해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까닭이다.

다만, 법과 관련해 실제적인 효력이 미흡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아 정작 보호가 필요한 낮은 사회·경제적 계층에게는 손길이 닿지 못한다. 또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취업규칙(사규)에 관련 조항을 넣지 않은 경우, 피해 신고자에게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 딱 두 가지 뿐이고, 가해자 처벌 조항도 빠져있다.

사업주에게 예방조치 의무를 부여한 법이므로 정작 사업주가 이른바 ‘갑질러’인 경우, 이에 대한 방어 근거가 없다는 것은 명확한 한계로 꼽힌다.

‘괴롭힘’의 개념 자체가 모호해 악의적 신고의 소지가 있고, 기업의 자유로운 인사 관리를 침해하는 ‘과잉 입법’이라는 일각의 볼멘소리도 있다. 하지만, 존엄성이 침해되기 쉬운 하급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명문화된 것 자체는 고무적이다.

다만, 법의 목적이 강제적 규율이나 처벌이 아닌 점에서 각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예방, 보호, 구제 절차가 자율적으로 마련되기를 유도할 뿐이다.

법이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사업장 조직 특성에 맞는 실질적인 절차를 마련하고, 노동자 배려 문화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어야 한다.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유성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 진료과장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대전·충청 지부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