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소묘' 소시민 세계로 뛰어든 김제영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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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소묘' 소시민 세계로 뛰어든 김제영 문학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9.08.08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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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조치원 배경으로 투영한 한국사회 자화상

2018년 12월 4일 오후 9시 30분, 故 김제영 소설가가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등단 소설가이자 기자,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를 기억하는 후배 문인들이 세종시 문화예술 거점 역할을 할 ‘김제영 문학관’ 건립에 뜻을 모았다. 생전 고인이 살던 자택을 보존해 그를 기리고, 지역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문학관 추진위원회는 오는 8일 출범식을 갖는다.

진보적 문화예술인으로서 분단 문제와 민주화, 정의 실현에 목소리를 높였던 고 김제영 선생.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평생 글을 쓰며 살아온 삶, 조치원과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 세계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① '쓰고, 품은 사람' 문학·예술 선구자 김제영 선생

② 조치원 역전소묘, 소시민 세계로 뛰어든 김제영 문학

#. 70년대 조치원 배경, 대한민국 자화상

지난해 12월 28일 조치원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故 김제영 소설가 작품 세미나’ 자료. 임관수 교수는 이날 '김제영론'을 주제로 강의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조치원 작은도서관에서 열린 ‘故 김제영 소설가 작품 세미나’ 자료. 임관수 교수의 '김제영론' 평론이 실려있다.

故 김제영 소설가는 1956년 조치원에 정착한 이후 단편소설 <석려>로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이후 두 권의 소설집을 내고, 장편 소설 등을 발표했다.

작품집 <거지발싸개 같은 것>(1981)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사형제 존폐논란부터 연좌제, 운동권 탄압, 빈부격차, 사법 모순 등 온갖 사회모순을 풍자하고, 꼬집었다.

임관수 충청대 교수(세종문학회장)는 지난해 12월 28일 ‘故 김제영 소설가 작품 세미나’에서 ‘김제영론’을 강의했다.

임 교수는 평론에서 “김제영은 현실비판 경향이 강하고, 비판의 경지를 넘어 반공 이데올로기 비판의 경지까지 도달했다”며 “창작 의욕이 왕성한 등단 초기, 70년대 개발독재가 본격화되면서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 못했던 불운한 작가였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경향인 비판적 리얼리즘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은 <역전소묘>로 꼽힌다. 1978년 ‘한국명작총선’에 발표한 소설로 한국전쟁 이후 조치원역을 배경으로 삼았다. 역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당대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냈다.

승객을 상대로 일하는 호객꾼과 지게꾼, 구두닦이가 소시민 계층으로 등장한다. 건달 각다귀는 역무원들과 부정한 거래를 통해 횡포를 일삼고, 이권을 독차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석탄을 줍다 열차에 치어 갈기갈기 몸이 찢겨져 죽은 아내를 둔 황달객, 고아원 출신의 주인공 김성환 등 삶의 애환을 가진 인물도 비중있게 다룬다.

임관수 교수는 “사회상 묘사에 남다른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바로 김제영 작품의 특성”이라며 “어려움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보고자 하는 작품 속 인물들은 곧 사회 제도의 모순 때문에 비극을 맞이하곤 한다”고 말했다.

작품 <역전소묘>도 마찬가지다. 호객꾼과 지게꾼들은 각다귀의 억압으로부터 벋어나 직접 손님 유치에 나선다. 하지만 선동자를 알아챈 각다귀는 주인공 성환의 멱살을 쥐고 폭력을 휘두른다.

임 교수는 “각다귀의 얼굴을 머리로 받아버리면서 칼에 찔린 성환의 죽음은 장렬하고 찬란하게 묘사된다”며 “불의에 항거한 죽음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비판적 리얼리즘 측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고, 60년대 조치원 삶을 그린 초상화로서의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 이름 없는 여죄수, 비정한 사회 고발

조희성 화백이 그린 '역전소묘' 속 조치원역 모습.
조희성 화백이 그린 '역전소묘' 속 조치원역 모습.

서울신문 신춘문예 입선작 <석려>도 비판적 리얼리즘을 토대로 쓰여졌다. 동시에 이데올로기 비판성이 짙은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름 없는 미결수, 여죄수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일상을 다루지만, 결말로 갈수록 깊은 파급력을 지닌다.

남편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 죽인 아내, 가난 때문에 낳은 지 한 달된 갓난아이의 코와 입을 막아 죽인 영아살인범, 빨갱이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형을 기다리고 있는 돌부처까지. 등장인물 할매 역시 아들과 세 손주를 위해 도둑질을 하다 감옥에 들어온 여자다.

임 교수는 “아들이 전쟁으로 다리를 잃었지만, 돌부처가 무기징역을 받고 사형을 면하는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할매의 모습은 곧 이데올로기의 초월과 휴머니즘으로 융화되는 삶을 보여준다”며 “한국 이데올로기 소설사의 한 이정표가 될 수 있을만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소재는 김제영 소설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석려>에서도 할매는 빨갱이에게 다리를 잃은 아들을 뒀지만, 감방 내 빨갱이 여자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희열을 느낀다.

단편소설 <우문의 설계도>도 간첩과 사형제도의 불합리성을 말하고 있다. <장미 그 창가에> 도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임 교수는 “작가의 시각은 당시 이 작품들을 쓸 때 김지하 등이 사형선고를 받고 김근태 등이 고문을 당했던 독재 시대였음을 고려해야 한다”며 “김제영 작품세계의 문학사적 가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천착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故 김제영 소설가는 충남문화상(1972년), 일붕문학상(1982년), 황희문화예술상(1999년), 허균문학상(2000년), 탐미문학상(2007) 등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지역 문단과 문화예술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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