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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을 위해 공무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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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을 위해 공무원 퇴직
  • 편집자 주
  • 승인 2012.05.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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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곳을 찾아서 50년... 연기새마을금고 이성원 씨

한평생 청소년선도와 사회계몽 운동을 해온 이가 있다. 꼬박 50년간이다. 연기새마을금고 이성원 이사장은 1960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구현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있다. 이 이사장이 청소년선도와 사회계몽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1960년 조치원역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6.25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버려진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하고 호적도 없어 학교마저 들어갈 수 없는 ‘무호적자’를 위해 ‘호적갖기국민청원’을 하기도 했다. 세종포스트는 이성원 이사장의 청소년선도, 사회계몽 운동을 중심으로 연재를 한다. ‘시민참여 일간지’인 세종포스트는 이처럼 세종시민이 참여해 만드는 신문이다. <편집자 주>

하루는, 아이들이 매일 동냥을 하는데도 한 푼도 없다며 밥을 쫄쫄 굶고 있기에 좌초지종을 알아보니 아이들 뒤에 보이지 않는 검은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똘마니이고 그 뒤에 왕초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서 작정했다.
거지들의 생각을 고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래서 잘 나가는 철도공무원직을 버리기로 했다.

말을 꺼리는 아이들을 달래서 겨우 그 왕초가 있는 곳을 알아냈는데, 조치원과 충북 경계인 조천천 다리 밑에 흙을 파고 구덩이에 너덜너덜한 가마니로 문을 만든 거지왕초가 사는 집(?)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어두컴컴해서 사람이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안에서 부시럭거리는 게 보여 자세히 보니 토끼였다. 토끼는 분명히 흰색토끼인데 아무리 봐도 재색으로 보였다. 흙바닥에서 사람과 같이 뒹굴뒹굴 깡충깡충 뛰면서 살아서 흰색토끼가 재색토끼로 바뀐 것이다.

구역질날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방안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덩치가 제법 큰 청장년 여러 명이 눈이 부신 듯 찡그린 얼굴로 귀찮다는 듯이 불청객인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바닥에 누워 드르렁거리며 코를 곯고 자고 있었다.

이들 중 덩치가 가장 큰 사람이 "누구냐?"하고 짧게 물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철도공무원 제복을 입었기에 태연한 척하고는 "조치원역에 근무하는 이성원인데…"라고 말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들과 멋쩍게 인사를 나누고 조치원읍내 식당에 데리고 가 음식 주문을 하니 주인이 눈을 부라리며 다짜고짜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 주인은 이들 중에 내가 함께 온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내가 나서서 주인을 안심시키고 주문한 음식을 먹을 때까지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들이 어찌나 음식을 빨리 먹던지 말할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서너 차례 거지 왕초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니 이들과 친분을 맺게 되었다.

하루는 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가서 몸을 씻게 했다. 홀딱 벗은 몸을 보니 생각보다 제법 통통했다. 동냥을 하는 어린아이들은 버쩍 말라서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는데, 이들은 아이들이 구걸해온 음식을 배불리 먹어서 그런 것을 알게 됐다. 기회를 엿봐 이들에게 아이들의 음식을 뺏어먹지 마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이들 중 사납게 생긴 녀석이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데, 그들 중 왕초가 말리며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줬다. 밥 먹고 목욕까지 했으니 좀 친분이 쌓인 덕이다.

이때부터 고민이 생겼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놔둬야하나, 당시는 절대빈곤의 시대인지라 읍이나 면에서도 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옷을 줄 형편이 못됐다.

어느 날인가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서 작정했다. 거지들의 생각을 고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나가는 철도공무원직을 버리기로 했다. 어렵사리 얻은 철도공무원직을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사표를 내고 거지 왕초들을 만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이 사실을 아버님이 아시고는 노발대발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나무라셨다. 나는 불효자식이었다. 하지만 거지들을 돌봐야한다는 사명감이 잠간 불효를 하더라도 기어이 해야겠다는 어떤 힘에 이끌린 것 같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거지들과 생활이 시작됐다. 1960년 자유당정권 말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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