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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깍지와 마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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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깍지와 마마보이
  • 최광
  • 승인 2012.05.16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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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농장에 오가던 몇 해 전에 콩을 심은 적이 있었다. 콩 농사가 그래도 쉽다는 말만듣고 시작한 것이다. 웰빙 상품으로 서리태(검은 콩)의 주가가 높아지면서 내 마음도 솔깃해졌다. 그러나 소문대로 쉬운 농사는 없었다.
씨를 사다 땅에 심고 싹이 트면서 벌써 시련은 시작되었다. 콩 싹이 떡잎을 앞세워 밀고 나오면서 까치, 산비들기, 꿩 등 야생조류가 극성을 떨었다. 떡잎을 떼어 먹거나 아예 싹을 분질러 놓기가 예사였다. 밤낮으로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농약의 힘을 빌려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식물은 떡잎의 자양분으로 초기성장을 하는 것인데 떡잎을 떼어 먹으니 타격이 심각했다.


야생조류의 폐해를 성토하는 농민들의 심정을 알만 했다. 그러나 콩 싹도 그대로 주저 앉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뿌리에 힘이 실리자 찢기고 부러진 줄기에서 새 순이 돋았다. 생명은 저마다 자생력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불굴의 의지로 돋아난 새 싹을 돌보고, 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자리에는 모종을 따로 키우고 이식해서 겨우 씨를 세울 수가 있었다. 농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비가 한 줄금씩 내릴 때마다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대게 잡초는 작물보다 생명력이 훨씬 강해서 방관하면 순식간에 작물을 뒤덮고 마는 것이다.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았다. 어디서 그 많은 풀씨들이 날아와서 싹이 트고 자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바랭이, 뚝새풀, 개망초, 강아지풀, 명아주, 쇠비름 등 헤아릴 수 없는 잡초들이 자랐다. 오죽해야 고난 속에서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을 잡초 같은 인생이라 이렀으랴. 생태계의 위협과 오염에도 제초제를 써야하는 농민들의 심정, 그러나 제초제도 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면 함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별 수 없이 손품으로 김매기를 해야 했다.

어느 여름 날, 아내와 함께 날을 잡아서 호미를 들었다. 땀이 나고, 벌레가 물고, 허리가 아프고 뻐근했다. 그러나 맘먹은 대로 김매기를 한 덕에 콩밭은 말끔해졌다.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리자 한 줄기 바람이 땀에 전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일을 마친 보람에 더하여 바람이 몸과 마음을 씻어줬다. 무성하게 자라는 줄기를 바라보면서 갈걷이의 풍요함을 떠올렸다.


드디어 늦가을에 이르러 갈걷이에 나설 때였다. 거둔 콩을 친지들과 나눌 생각으로 웃음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왼 일이람? 줄기에 다닥다닥 달려있어야 할 콩 꼭지는 없고, 빈 깍지만 듬성듬성 매단 줄기가 찬 서리에 마른 잎을 달고 쓸쓸하게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콩은 잎이 무성해지면 열매가 열리지 않으니까 비료도 주지 말고 순을 잘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게 콩 농사라더니, 세상에 거저먹기는 하나도 없는 게 분명했다. 매가리 없이 힘이 쏙 빠졌다.


얼마 전에 우리의 주거문화 실태 조사연구를 접한 적이 있었다.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크게 바뀌면서 이웃과의 단절이 고착화되고 더불어 자녀양육 문제가 부각되었다.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단독주택에 사는 애들보다 이웃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적고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와 대면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아예 며칠씩 외출하지 않는 애들도 늘어난다고 밝히고 있다. 고층으로 갈수록 이 결과는 더 심각했다. 이는 애들의 과보호로 이어져서 이웃과 부대끼며 배우는 사회성과 자립심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마마보이의 양산인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지나치게 기름진 땅은 잎만 무성하게 할뿐, 열매없는 빈 쭉정이만 거두게 되는 것이다. 성장기에 화려하게 부모의 서포터를 받던 애들이 나중에 형편없이 추락하는 꼴을 주변에서 흔히보게 된다. 우리의 주거환경과 더불어 자녀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연(年) 전의 실패를 새기면서 금년에는 비료도 주지 않고 콩 순 자르기에 나섰다. 일일이 손품으로 하기가 만만찮아서 낫으로 순 치기를 감행했다. 수북이 자란 줄기를 자르기가 아깝기는 했지만 과감하게 낫을 휘둘렀다. 잘려나간 콩 순이 고랑에 그득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여름철이 기울어지고 제법 선들바람이 부는 처서에 이를 무렵, 콩잎을 헤집고 들여다보니, 줄기에 자잘한 콩꽃이 환하게 피어 있고 아랫도리에는 벌써 콩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순이 잘린 콩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얼른 자손을 퍼트릴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잎과 줄기가 지나치게 무성하지 않아야 병에 걸리지도 않고 열매가 탱글탱글하게 달린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면 모자람과 같다는 것일까. 나는 서리태가 수북한 가을날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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