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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14조가 규정한 과실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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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14조가 규정한 과실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 이충건 기자
  • 승인 2019.04.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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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과실의 본질에 대한 문헌작업’ 조훈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음 | 시스템출판사 펴냄
우리 일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실 범죄를 논할 때, 왜 그 사건을 과실 범죄로 봐야 하는지를 정하는 기준이 불분명하다. 과실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논의를 출발해보자.

A는 졸업 후 동기들과 술자리가 있어 학교 주변 주점으로 갔다. 다음 날을 생각해 매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운전하여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다.

자신의 체중을 고려하여, 또 도로교통법에 나오는 음주운전의 기준을 고려하여 조심하던 A는 어느 순간, 소맥까지 마시며 자리를 즐기게 됐다. 모임이 끝난 후, 다른 친구들은 걸어가거나 택시를 이용해 귀가하는데, 자기 차를 끌고 온 A는 자신의 상태를 과신해 직접 운전했다.

귀갓길은 유난히 원활했다. 교통신호까지 연속적으로 작동해 딱히 정차할 일도 없었다. 혼동은 다음 날부터였다. A의 차량 바퀴에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옷과 핸드백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차량 위에 정체불명의 사체까지 얹혀 있었다.

A가 귀가한 구간의 CCTV와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했더니 과속에 신호위반, 횡단보도 정차 불이행 등의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여러 보행자를 다치게 했고 1명은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차량 위 사체는 바로 그 사고로 인한 것이었다.

이 사건에 대한 형사 재판을 고려하려면, 범행 당시 A에게 고의가 있었는지부터 검토돼야 한다. 우선 술자리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A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CCTV와 블랙박스로 촬영한 자료에 따르면, A는 매 교통사고 발생 시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졸았거나 사고 발생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자명했다. 이 상황이 형법의 과실에 해당함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고, 형법 제268조에서 따로 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을 규정했기에 이에 대한 재판은 큰 변수가 없이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가상의 사건에서 과실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는 ‘정상의 주의’가 이 사건에서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 확인돼야만 한다.

정지신호에 따라 횡단보도 앞에 정차해야 함에도 만취된 상태에서 ①정지신호를 인지하지 못했고 ②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보행자를 인지하지 못하였으며 ③보행자를 죽거나 다치게 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주행하는 운전자에게 ‘정상의 주의’를 요구하고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만취한 사람에게 술에서 깨어나라고 얘기해야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시간을 주고 자연히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해결책이니 말이다. 역시 만취해 주변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주행하는 운전자에게 ‘정상의 주의’를 기울이라고 해봐야 나올 답은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

'過失의 本質에 대한 文獻作業' 조훈 지음 | 시스템출판사 펴냄. 종이책은 인터파크(http://shopping.interpark.com/product/productInfo.do?viewTp=preview&prdNo=6466770680)에서 e-book은 부끄끄(http://www.bookk.co.kr/book/view/57122)에서 판매 중이다.

그렇다면 형법 제14조의 규정은 뭔가 이상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인가? ‘정상의 주의를 태만함으로 인하여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분명히 발견된다. 하지만 정상의 주의는 이미 비정상인 행위자에게 부과할 수 없다. 만약 정상의 주의를 찾아낸다고 해도 행위자가 그 주의를 언제 그리고 어떻게 태만했는지 증명할 수 없다.

우리가 술을 먹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의 주의’에 해당한다면, 술집은 물론 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이 ‘정상의 주의’에 소홀한 것이 된다. 즉 술 마시는 자체가 과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태만이라는 요소를 고려하면 술을 먹지 말라고 했음에도 술을 마신 그 자체가 태만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확인하려면, 형법 각칙 규정을 도출한 과실의 본질과 연결하면 된다. 술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술을 마셨고 그래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결과로 이어졌다. 술을 마시면 사람을 죽게 한다고? 이것은 정말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 세상에서 술은 이미 사라졌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다시 과실의 본질로 돌아가 보자. 이 황당한 사건에서 발견돼야 하는 과실은 술을 마셨다는 자체가 아니어야 한다. 술을 마시고 자동차에 탔다는 것 자체도 아직은 과실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술을 마신 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직접 운전한 것, 바로 이것이 과실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면 형법 제14조가 전제하는 ‘정상의 주의’는 술을 마신 후 운전하지 말라가 되는데, 이미 술을 마신 사람에게 술을 마신 후 운전하지 말라는 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미 늦은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운전하지 말라는 ‘정상의 주의’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우선 정상이 아닌 사람에게 ‘정상의 주의’를 요구하고 그것이 준수되기를 기대한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그렇게 과실의 본질을 파악하면 과실범은 신분범이 돼야 한다. 일정한 신분을 가진 사람만 범행에 나설 수 있다는 구조가 발견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도 우리에게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 도대체 형법 제14조가 규정하는 ‘정상의 주의’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고 그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만약 우리가 그 기준을 구체적 과실범, 고의범에서 찾지 않고 그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제삼자에서 찾는다면 그 기준은 바로 확인될 수 있다. 술에 만취된 상태에서 운전하겠다고 차 안으로 들어가는 A를 보는 행인들은 모두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다 사고 나는데,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할 수도 있는데 라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행위자가 과실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추지 않거나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형법에서 처벌하려는 결과 발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제삼자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안에서 제삼자가 보기에, 해서는 안 되는 또는 꼭 해야 하는 내용이 ‘정상의 주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봐야 하고 그 ‘정상의 주의’를 태만하는 것이 과실범인 것이다.

음주운전 자체는 ‘정상의 주의’ 태만이고, ‘정상의 주의’는 이미 술에 취한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는 술에 안 취한 일반인들에게는 복잡한 인식 과정 없이 바로 확인되는 내용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 다만 그 실수의 결과가 다른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침해로 나타날 정도의 실수!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훈 교수의 <과실의 본질에 대한 문헌작업>(시스템출판사, 2018년)은 책 제목처럼 ‘과실의 본질’을 다룬 국내 첫 전문서적이다.

저자 조훈(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내외 문헌을 찾아봐도 과실의 본질을 다루는 전문서적은 전무하다. 간혹 과실의 본질을 다룬다고 제목에서는 표시하지만, 그 내용에서는 다른 논점만을 다루는 경우가 있어서다.

결국, 과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본질을 무시한 채 겉모습에 현혹된 상태이거나 실체가 없는 허상에 매달린 것과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일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실 범죄를 논할 때, 왜 그 사건을 과실 범죄로 봐야 하는지를 정하는 기준은 이제부터 찾고 정립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그 출발점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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