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된 말에만 귀 기울이니 공명정대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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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말에만 귀 기울이니 공명정대 할 수 있나
  • 김유혁
  • 승인 2019.02.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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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혁 칼럼] 편청생간 겸청제명(偏聽生奸 兼聽齊明)
김유혁 단국대 종신명예교수 | 전 금강대 총장

‘편청생간(偏聽生奸)’ 편향적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릇된 생각이 돋고, ‘겸청제명(兼聽齊明)’ 여러 의견을 고루 듣는다면 매사에 공명해진다.

이 말은 전국시대 성악설(性惡說)로 유명했던 순자(荀子)의 문집 중, 군도편(君道篇)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를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역행하는 그 주장 하나만을 가지고 외고집을 부렸던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자가 맹자와 학설상으로 논쟁을 펼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의 깊고 넓은 학문연구의 경지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자의 전집과 서지(書誌)를 살펴보면 당대 학자 중에서 출중한 학술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던 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순자의 학설에 심취하여 순자 연구에 노력하는 후학이 많다는 것은 그의 학문적 경지를 편향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귀띔해주는 실증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학문은 맹인모상(盲人摸象)하는 방식으로 코끼리 더듬는 듯이 오류를 범하는 맹인의 판단을 흉내 내서는 안 될 것이다. 판단의 착오는 모든 사상(事象:social phenomena)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발달해 날마다 자고 나면 온갖 세상사가 생생히 유전(流轉)하는 정보로 넘쳐나면서 이를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시청자와 독자의 몫이다. 넘쳐나는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계반경(視界半徑), 이해심도(理解深度), 청문고도(聽聞高度)가 전제돼야 한다. 판단의 적확도(的確度)를 보증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판단의 기능을 전담하고 있는 사법부의 경우일수록 그 판단의 척도가 공명하지 못하면 사회적 정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상식적인 법언(法諺)에서도 기판력(旣判力)은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했다. 기판력은 이미 새로운 사회적 사실과 사상(事象)으로 형성된 역사로 축적되어 그 바탕 위에서 이미 또 새로운 역사의 길을 열면서 지내왔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판력을 함부로 파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의 생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의 지혜는 짧지만, 세상일의 기미(機微)는 무궁무진하여 인지유단 사기무궁(人智有短, 事機無窮)이라 했다.

어떤 경우에도 공간적 구조물은 개축과 보수작업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기판력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다름없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조소(彫塑)한다는 것은 권력적 폭력 수단 이외엔 없다. 그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정도가 아닌 것을 가지고 사회적 공명(共鳴)을 유도하려 든다면 그것은 백일몽이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의 환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백일몽을 편신적(偏信的)인 신(神)의 계시(啓示)인 듯 여기거나, 환각을 창신적(創新的)인 발상으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논어에서 이야기하는 십목소시(十目所視)이며 십수소지(十手所指)의 눈총과 지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곧 국민 여론인 것이다.

정다산은 그의 목민심서에서 말하기를, 천인소시 천인소지하면 무병이사(千人所視 千人所指 無病而死)라고 했다. 좀 심한 표현이지만 많은 사람이 눈총을 보내고 지탄을 퍼부으면 그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아도 죽게 된다는 뜻이다. 논리적으로 일리 있는 이야기다.

눈총은 총(銃)이요, 지탄은 탄(彈)이다. 따라서 이는 총탄과 같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총탄을 겨누면 누구나 겁에 질려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국민적인 인심의 소향(所向)은 이처럼 엄정하다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중국의 대역사 서적인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 분량이 무려 294권에 달한다. 송나라 시대의 사마광(司馬光)이 주편했다. 사마광은 마지막 편에서 모든 왕조가 패망한 공통된 이유는 겸청(兼聽)하지 못하고 편청(偏聽)했던 6가지 탓이라 지적하면서 그것을 육난(六難)이라 했다.

육난이란 스스로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일을 스스로 등한히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첫째 천언(踐言), 둘째 방기(防欺), 셋째 거사(去邪), 넷째 임현(任賢), 다섯째 득인심(得人心). 여섯째 지천도(知天道)다. 스스로 한 약속을 실천하지 못하고, 스스로 마음을 속이며, 스스로 품는 간사한 뜻을 버리지 못하고, 어진 인물을 등용하지 못하며, 인심의 소재를 터득하지 못하고, 불가역의 천도(天道)를 따르지 않은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현신(賢臣)은 민심을 다스리고, 능신(能臣)은 민생을 다스린다 했다. 그러나 겸청을 하지 못하고 편청에 기울다 보니 현신과 능신을 영입 못 하고 아울러 육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라와 왕조는 폐망하고 만 것이다. 편청생간(偏聽生奸)이라는 병인(病因)이 이처럼 무서운 독소라는 것을 사마광은 경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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