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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수혜'의 공주, 금강 '수해'의 공주[전재홍의 근대도시답사기 ‘쌀·米·Rice’] <13>일제 강점기, 공주의 변천사
공주 공산성 공북루 나루터. 일제강점기 금강에 설치된 배다리와 금강철교 이전 시기에는 배를 타고 강북으로 건너야 했다. 2019년 전재홍의 촬영 사진.

우리나라의 근대도시는 일제강점기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근대도시를 답사하고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건축공학박사인 전재홍 근대도시연구원 원장이다.

세종포스트는 전 원장이 근대도시에서 발굴한 우리 삶과 문화, 식민지 질곡의 역사적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에는 백제의 왕도인 공주가 금강 수로의 역할변화로 인해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전재홍 근대도시연구원장 | 건축공학박사

공주는 예로부터 금강의 물길로 인한 수혜를 입었지만, 철도가 비껴가며 근대화의 물결에 올라타지 못했다.

경부철도가 놓이지 못한 것과 홍수 때 도시가 고립되며 야기된 행정 마비가 대전으로의 도청 이전 빌미를 준다. 결국, '금강 수혜의 도시' 공주가 '금강 수해의 도시'가 된다.

​공주는 왕도와 조선의 감영 시대, 일제기의 도청시대를 거쳐왔다. 1500여 년간 백제 왕도와 오랜 행정의 역사도시인 것이다.

조선 시대 충청도의 감영은 충주에 있었다. 그러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3년 공주로 옮겨진다. 300년이 넘는 감영 도시 공주가 충청도 제1의 행정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충청도가 남도와 북도로 1896년 분리, 도청 소재지가 된다.

일제강점기 공주 봉황산 아래에 자리한 충남도청과 경찰본부(왼쪽). 도청 정문인 금남루 누각은 유리창이 껴 있고, 경찰본부는 양식 2층으로 건축되어 전통과 근대의 이질적인 풍경을 보인다.
옛 충청감영의 정문인 포정사 문루가 공주사대부고에 복원되어 2018년 12월 준공되었다. 2019년 전재홍의 촬영 사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지방통치 체계인 도를 승계하며 입법, 사법, 행정에서 전권을 행사했다. 이러한 중앙집권체계가 말초까지 이르게 했는데, 도산하에 시와 부, 읍・면・리를 설치했다.

강점기인 1935년 3월 10일 오케레코드 연주 단원들이 백제의 고도 공주산성을 찾았다. 가운데 연주복은 트럼펫연주자 현경섭(玄景燮), 윗줄 오른쪽 모자 쓴 이가 작곡가 김해송(金海松), 윗줄 왼쪽 두 번째가 가수 고복수(高福壽), 모자를 쓰고 앉은 이가 작곡가 손목인(孫牧人).

도청 소재지인 공주에 법원과 등기소, 경찰서, 세무서, 형무소, 우체국과 각종 조합이 집중되었다. 더불어 보통학교, 심상소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가 세워졌다.

공주봉황초등학교 교장관사로, 지금은 멸실되어 주차장으로 변했다. 2000년 전재홍의 촬영 사진.
공주여자사범부속국민학교 제4회 졸업 기념사진. 일제강점기 초기와 말기에는 선생들도 군복을 입고 근무했다. 뒤편으로 조선인의 영혼을 지배한 신사의 도리가 보인다.
공주공립보통학교 제18회 졸업 기념사진. 학생은 두루마기를 입었고 선생들은 양복 차림이다.

그러나 철도가 충남 제1의 행정도시인 공주를 피해 가면서 도시는 서서히 전방위적인 변화가 초래된다. 새로운 철도 시대를 맞았지만, 공주에서 경성과 조치원, 대전을 가려면 공북루 나루터에서 배로 금강을 건너야 했다.

공주산성 공북루 나루터에서 사람과 소까지 태운 배. 공주는 금강의 수혜를 입었지만, 수해로 인한 행정 마비가 빈번해 도청을 대전에 넘겨줘야 했다.
일제강점기 공주산성 아래 나루터에서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멀리 공북루와 강북을 오가는 배가 보인다.

배를 이은 배다리는 김갑순이 승합차 사업을 위해 설치했다. 30여 척의 배에 폭 3m, 길이 150m의 배다리를 깔아 만들었다.

이로써, 중동시장 근처에서 승합차를 탄 승객들은 배다리를 건너 강북에 도착, 다른 지역으로 편히 갈 수 있었다. 그러다 1922년에 자동차가 강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배다리 시대를 지나면서 강북을 잇는 다리가 설치되어 타 도시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다리 입구에 가로등이 보이고 지게꾼과 공주 군민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우편엽서에 게재된 금강교 사진. 왼쪽 중간이 공북루.

당시까지만 해도 선박과 뗏목을 이용한 금강의 물류가 활발했다. 1915년 총독부 관보에는 “금강교의 선박과 뗏목 통과를 위해 다리 여닫는 시간을 정한다” 고 나와 있다.

금강은 서해 해산물과 충청도 내륙 생산물의 유통로였다. 공주는 강경과 부강같이 하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공산성을 배경으로 뗏목이 금강 하류로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뱃사공과 말 세필이 있고 뗏목 뒤에는 짐을 매달고 있다.

대전은, 일본-부산-대전-경성-만주로 이어진 신세계였다.

공주는 철도의 수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배의 불편함은 1933년 금강철교가 세워질 때까지 계속된다. 홍수나 호우시 다리가 유실되며 행정도시의 고립이 빈번했다. 그로 인해 도정이 마비되는 비상사태가 반복되었다.

​일제강점 초기 도청은 대부분 조선의 감영 도시를 승계・유지했다.

한반도에 경제적 수탈과 군사적 목적의 철도망이 X자형으로 구축되며 도청 이전설이 제기된다. 철도역 주변 도시들이 성장하고 일본인 수가 늘며 철도 도시로 이전을 실행한다.

1910년 경기도청을 수원에서 서울로 옮겼다. 이어 함북도청을 경성(鏡城)에서 나남으로, 평북도청을 의주에서 신의주로, 경남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바 있다.

서울역의 옛 이름인 경성역.
수원에서 당시 경성으로 옮겨진 경기도청. 좌측에 해태상이 있고 말과 기수를 연출해 찍었다.
군인들이 나남정거장에 모여 있다. 일제강점기 나남은 군사도시였다.
북한의 경성(鏡城)에서 나남으로 옮겨진 함북도청 청사.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겨진 경남도청. 2층 벽돌조로 입구에 포치를 설치해 권위적으로 보인다.
1910년 준공된 부산역. 높이 22m의 벽돌조의 2층 건물이었다.
중국 단둥과 대안에 1912년 신축된 신의주역. 1층은 역사로, 2층과 3층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사용했다.

1931년 1월 11일 총독부 이마무라(今村) 내무국장은 시라이시 (白石) 대전기성회장을 서울로 오도록 비밀리에 부른다.

시라이시와 유진순(劉鎭淳) 충남지사가 내무국장 관사에서 도청 이전에 대해 협의했다.

내용은 도청부지로 1만 평을 기부할 것, 직원 주택 200여 세대 준비할 것, 물가인상 방지할 것, 공주에 대한 위로금 4만 엔을 지원할 것 등이다.

대전 일본인기성회는 총독부의 요구조건을 흔쾌히 승락했다.

총독부는 대전으로 도청 이전을 하며 공주의 민심을 달랬다. 그중 하나인 금강철교 아래로 하얀 모래톱이 보인다. 옛 나무다리가 설치된 곳으로 나무교각 일부가 남아있다. 2019년 전재홍의 촬영 사진.
조선총독부 고다마 히데오 정무총감

조선총독부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 정무총감은 1931년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발표한다.

이청이 결정되자 몸이 단 공주 유력자들은 도지사와 면담을 시도했다. 더불어 공주시민회장 마루야마와 일행이 도쿄로 가 진정활동을 벌였다. 또 군민대회 개최, 시장의 철시, 공주민 진정활동이 전개됐다.

공주시민회의 활동이 이어지자 경찰은 사무실을 수색하고 간부들을 감금했다. 이러한 여러 우여곡절 끝에 충남도청은 경부철도와 호남철도의 도시, 일본인이 주축이 된 도시인 대전으로 옮긴다.

몇 푼의 위로금으로 공주의 민심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제는 대홍수에도 걱정이 없는 철교를 1932년 착공시키고, 더불어 공주사범학교도 개교시킨다.

조선 시대 세금으로 걷힌 곡물을 실은 세곡선은 바다와 한강을 거쳐 마포나루에 도착했다.
마포나루 전경. 기와와 초가가 뒤섞여있고 강가로 솟아오른 돛이 줄지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도시의 성쇠는 큰 틀에서 교통로의 변화에서 기인했다.

기껏해야 오솔길 수준의 과거길 밖에 없는 조선의 길은 세곡선과 물류의 이동을 수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와 대전에서 보듯이 조선의 전통도시들은 근대기 신교통로인 철로와 도로가 완비된 도시에 관공서와 상권 등 많은 것을 넘겨줘야 했다.

*사진 출처: 문체부 문화데이터광장, 전재홍의 촬영 사진, 위키백과.

전재홍  jhjun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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