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해체와 재구성, 화가 강묘수의 ‘오마주’
상태바
해체와 재구성, 화가 강묘수의 ‘오마주’
  • 유태희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8.06.20 15: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평론] 소피아갤러리 초대전 ‘강묘수展’, 7월 13일까지
‘Hommage 中 see the sunrise II’ 강묘수, 캔버스에 혼합재료, 45.5×53.0㎝, 2018년.

서양화가 강묘수(姜妙受)는 경남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병약했다. 끊임없이 세상 밖을 동경하고 무한한 상상으로 채워진 나날을 보냈다. 이것들이 회상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구축한다. 강묘수가 자신의 미적 세계관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오마주 기법이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론을 주된 이론적 근거로 삼은 이유다. 동서양의 명작들에 대한 동경을 통해 새로운 표현적 기법을 채택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누군가를 존경하여 기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기념탑을 높이 쌓거나 큰 무덤을 만들기도 하고 동상을 세우거나 화폐에 새겨 넣기도 한다. 그 이름을 도시나 거리에 붙이는가 하면 기념사업회도 만든다. 서양에서는 기리는 대상의 이름을 자녀 이름에 넣는 방식으로 드러내지만, 동양에서는 직접 호칭을 삼갔다.

오마주(Hommage)는 프랑스어로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이다. 경의를 표하는 방식은 묵념이나 인사법 같은 형태로 사회적 의례화하기도 하지만, 문화 영역에선 하나의 표현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작가나 음악인들은 작품이나 연주를 헌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영화 제작자들은 존경하는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나 장면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는 방식을 쓴다.

영화에선 ‘오마주 기법’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조지 오웰의 경험을 담은 <카탈루냐 찬가>도 제목 자체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오마주라 할 수 있다.

‘Hommage 中 Red light’ 강묘수, 캔버스에 혼합재료, 193.9×130.3㎝, 2018년.

이런 관점에서 작가 강묘수의 미학 세계에서 개념은 하나의 사건이다. 개념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했을 때, 이는 철학이라는 학문 내부의 사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념들은 전적으로 철학에 속하는 것이지만, 이 개념은 ‘사물들과 존재들의 새로운 사건을 세우는 것, 항상 그것들에 새로운 사건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념은 ‘다가올 어떤 사건’의 윤곽을 미리 그리는 행위다.

개념들은 또한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사건을 재단하고 재구성된다. 그래서 지난 과거나 역사로서 사물을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들로 다시 불러들인다. 이것이 개념이 가지는 시대성이자 사물들에 새로운 사건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강묘수의 개념을 ‘순수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묘수는 미적 순수의 개념적 의미를 넘어서 갑자기 세상에 우뚝 세워져 마치 스트라빈스키 음악에서 느껴지는 푸르름과 투명함처럼 세련되고 아름다운 16세기 고려청자를 닮아가고 있다.

세종시 금남면 소피아갤러리(금남면 도남2길 50-5)에서 화가 강묘수展이 7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오마주’다. 곳곳에서 모네, 추사 김정희, 르네 마그리트, 겸재 정선, 사임당에 대한 강묘수만의 오마주를 발견할 수 있다.

소피아갤러리 2전시실 모습.

강묘수는 모네의 해돋이에 세한도의 소나무가 공존하되 쓸쓸하지 않은 소나무와 해돋이를 만들었다. 붉은 해의 장엄한 모습과 금강산을 오버랩시키는 방식으로 붉게 타오르는 금강전도를 그려냈다. “모델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한 화가 브리짓 라일리, “내가 본 꽃을 그대로만 그렸다면 아무도 내가 본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꽃이 작은 만큼 그림도 작게 그렸을 테니까”라고 한 조지아 오키프가 연상됐다.

작품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강묘수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은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면서 만들어진다. 동양의 먹과 나무를 태운 재, 그리고 서양의 물감을 혼합하여 매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강묘수는 바깥세상을 향해 ‘이게 바로 나’라고 외치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