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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왜 사랑보다 존중을 배우게 했을까[미노스의 동화마을] <9>아버지의 졸업선물

당황스럽고 가슴 벅찼던 그 기억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불현듯 떠올라 남모르는 미소를 슬며시 짓게 하곤 했다.

졸업식.
강당의 마이크를 통해 계속 호명되는 이름들. 교육감상, 교장상, 우등상, 공로상, 개근상….

상도 많고, 불리는 이름도 많고, 흰 포장의 크고 작은 상품도 많았다. 이렇게 저렇게 받은 상장에, 하나씩 받아든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뒤를 돌아보면 강당 가득히 서서 우리들을 지켜보는 학부모님들의 눈길이 그렇게 따스할 수가 없었다.

좁은 졸업식장의 붐비는 북새통 속에 온 가족이 다 와 있었다. 할머니, 누나, 엄마, 동생….

할머니들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기 마련이었고….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운동장에 나가 여기저기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초등학교 졸업식은 끝났다.

졸업선물.
할아버지는 중학교에 가서 입을 교복을 사주신다 하셨고, 할머니는 가방, 작은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사주신다고 하였다.

운동화를 사주신다는 이모를 따라 신발 가게에 들어서서, 눈을 홀리는 신발들을 바라보며 이것저것 골라 신어보는 이 기분.

결국은 이모가 권하는 것으로 사게 마련이었지만, 새 신발을 신고 느껴보는 기분은, 꿈틀거리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설렘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무슨 대견한 벼슬이나 한 양, 졸업선물을 받는 벅찬 즐거움을 어디에 비기랴.

그 졸업선물.
그 중에 인생을 관조해 보며 추억에 사는 초로의 나이가 된 지금에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선물이 있다.
아버지가 주신 졸업선물이었다.

아버지는 졸업식에 오시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바쁘신 분이었다.

졸업식 날 아침에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면서 저녁에 보자고 하셨다.

아버지가 준비한 졸업선물은 무엇일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집혀지는 것이 없어 더욱 궁금하기만 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엄마는 학예발표회 때 맞춰 입었던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를 꺼내 나에게 입혀주셨다. 곱게 다림질하여 바지 주름까지 빳빳이 세우셨다.

그리고 엄마 자신도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검은색 정장차림으로 곱게 화장을 하셨는데, 그렇게 차려입은 엄마를 보니, 마치 귀한 결혼식장에라도 가시는 양 우아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고결한 귀부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거리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미인이시라니….
중학교 다니는 누나도 검정색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아직 철없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멋진 옷을 입고 외식을 하러 나간다는 것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짜장면, 탕수육을 먹는 상상에 입안에 군침이 돌기 시작하였고 다리가 배배 꼬일 지경이었다. 온몸에 조바심이 날 뿐만 아니라, 뱃속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시그널마저 울려왔다.

엄마의 손을 잡았지만 한시도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종종거리며 엄마 주위를 빙빙 돌고, 흥분을 억제하지 못해 나는 참새처럼 종알거렸다.

평소 같으면 벌써 야단치며 제지하였을 테지만, 오늘만은 봐준다는 식으로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누나도 못마땅해 하면서도, 오늘만은 졸업식이니까 하면서 까부는 나를 관대히 대해 주었다.
졸업생의 특권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내가 예상했던 중국집도, 만두와 빈대떡이 있는 냉면집도 아니었다.
나로서는 처음 가보는 레스토랑이었다.

입구에 프랑스풍 테라스가 있고, 티크 빛 단단한 고급 목재로 바둑판 같이 짜 맞춘 마룻바닥에, 샹들리에 조명이 은은하면서도 격조 있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처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비넥타이를 매고 검은 정장을 입은 어른들이 시중을 드는 그 고상한 분위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주눅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 치마폭 뒤로 몸을 숨겼다.

그곳은 내 마음대로 주문하고 내 주장으로 떠들 수 있는, 말하자면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식당이었던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 역시 검정색 정장에 흰 드레스셔츠, 기장이 긴 검정색 오버코트를 걸치고 계셨는데 그 분위기 또한 평소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무엇이라 표현할까….
마치 연회장에 오신 손님을 맞는 귀족의 풍모라고나 할까….

아버지의 머리 뒤에서 마치 눈부신 빛이 나오는 것 같아 나는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단어이지만, ‘아우라’라 하는 그것을 그때 처음으로 체험했다. 기가 더욱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쩐지 아버지가 아버지 같지 않고,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아 그 분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망설여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들어서자, 얼굴 가득 미소를 띠우고 점잖게 걸어오시더니, 천천히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아 주셨다.

“오, 우리 순원 군 왔군요. 졸업을 축하합니다!”

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눈을 내 눈높이로 낮추고 내 눈을 정면으로 보시면서 말씀하셨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나에게 어린이용 존댓말을 쓰시곤 했지만, 지금 하시는 말씀은 어린이용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악수를 하였다. 쑥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축하말씀과 함께 입구에 두 줄로 서 있던 검은 정장의 넥타이 아저씨, 아가씨들이 일제히 배꼽인사를 하며, 겸연쩍어 엉거주춤 서 있는 나에게,

‘축하합니다!’
하며 입을 모아 외치는 것이 아닌가.

쑥스러움이 열배 더하여, 나는 어머니 치마폭에 얼굴을 감추고 거북함에 어쩔 줄을 모르고 다리를 꼬고 있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잡아주시는 손을 잡고 양쪽으로 줄지어 선 그들 사이를 걸어 들어갔다.

둥둥 구름 위를 걷는 듯 다리에 힘이 빠졌다.

웨이터들이 던지는 눈웃음에 눈이 부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는 큰소리를 치다가도 막상 일이 닥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여린 어린이였다.

우리가 안내되어 들어간 곳은 아담한 룸이었다.

창문마다 호사스런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예술품처럼 조각된 둥근 마호가니 테이블에, 프랑스 왕이나 앉았을 법한 높은 등받이가 있는 붉은색 의자들이 둘러져 놓여 있었다. 벽에는 유화로 그린 초상화가 반듯하게 걸려 있어, 그 화려한 명화아래 있는 의자가 상석임을 알 수 있는 고급스런 방이었다. 내 눈에는, 왕이 왕비와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왕실 같았다. 나는 호화로운 궁전에 들어온 것임을 알았다.

기가 팍 죽었다.

방에 들어서서, 등신처럼 서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또 손을 내밀어주셨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아버지는, 나를, 정중히, 조심스럽게, 그 상석의 의자에 앉혀 주시는 것이었다.

이 황당함과 황송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의자는 내 몸이 파묻히기에는 운동장같이 넓었고, 등받이는 머리를 기대기에 장대처럼 높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달랑거려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에 맞지 않는 무거운 왕관을 쓴 어린 왕이 되어버렸는데, 편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몹시 외롭고 무서웠다.

당장 내려와 엄마 무릎위에 안거나, 의자의 좁은 틈을 비집고 엄마와 살을 대고 앉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점잖게 나의 어깨를 눌러 그 의자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어 의자의 팔 받침에 몸을 바짝 붙여 앉았다.

나를 중앙으로, 아버지는 오른쪽에 엄마는 왼쪽에 그리고 누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누나는 맞은편에 그렇게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샐쭉 웃었는데, 그것이 선망의 웃음인지, 빈정거리는 웃음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웃음도 마음에 걸리고, 그런 높은 의자에 앉혀져 가족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만 같아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였다.

이때 한 팔에 냅킨을 걸치고 메뉴를 든 웨이터가 방에 들어왔다. 웨이터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우리들을 둘러보았다. 누구에게 먼저 메뉴를 보일지 망설이고 있자, 아버지가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웨이터에게 말하였다.

“오늘의 주빈에게 먼저….”

웨이터가 나에게 다가왔다.

메뉴를 펼쳐 보이며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묻는데, 당황스러운 것은 웨이터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이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프랑스 요리 주문을 받을 것인가?

반말을 해야 할지, 존댓말을 해야 할지 곤혹스런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망연하게 메뉴판을 펼쳐들고 서 있을 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오시더니 다시 무릎을 굽혀 내 눈을 바라보며 웨이터에게도 들으라는 식으로,

“순원 군. 오늘은 순원 군이 주빈이에요. 주빈은 이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니 순원 군이 먼저 마음대로 정하도록 해요. 무엇을 주문하고 싶어요?”

그러시면서 아버지는 웨이터가 무색하게 메뉴에 쓰여 있는 내용을 하나씩 설명하는 것이었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진지하였고, 무엇보다 정중하셨다.

에피타이저라는 것은 식사하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한 것인데, 가볍게 먹는 것이니 야채 위주로 정하면 좋고, 드레싱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웨이터가 설명을 할 테니 잘 듣고 결정하라는 말씀이셨다.

아버지의 눈짓에 따라 웨이터는 나에게 드레싱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아버지가 내게 하는 정중한 모습을 본 탓인지, 처음의 웃음기는 없어지고 진지하게 존댓말로 설명을 했다.

쑥스러운 가운데 선택을 해야 했다. 모두가 그런 나를 지켜보는 모습을 보자 더욱 긴장이 되었는데, 웨이터의 설명을 듣고 메뉴를 고르는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누구에게 미루거나 엄마를 쳐다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엉덩이를 흔들어 의자 한가운데로 자리를 다시 잡아 앉았다.

메뉴를 향해 시선을 직선으로 꽂으며 집중했다.

아랫배에 힘을 준 탓인가. 뱃속에서 작은 기둥 하나가 위로 솟아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 기둥은 뱃속에서 올라와 내 등의 척추를 관통해 나를 반듯이 세워주는 지지대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가슴으로부터는 묵직한 추가 서서히 내려오며 아랫배를 지그시 누르는 것 이었다. 아랫배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팔 받침에 기울였던 자세를 반듯이 하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메뉴판의 내용을 짚으며 웨이터에게 지시하였다.

“1번으로 해주세요.”

말을 하면서 나는 달라져 있는 나의 목소리에 스스로 약간 놀랐다.

다음은 아버지 순서였다.

아버지는 메뉴판을 신중히 보시더니,
“나는 2번으로 해주세요.”
하였다.

엄마와 누나는 메뉴판을 함께 들여다보며 상의하고, 똑같은 것을 주문하였다. 엄마와 누나는 사이가 늘 저렇게 다정하였다.

첫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나가자 아버지는 조용히 입을 여셨다.

“오늘은 순원 군의 자랑스러운 졸업식이니, 아버지가 졸업선물을 주려고 해요. 오늘 식사는 순원 군을 위한 식사이고, 순원 군이 주빈입니다. 오늘 저녁만큼은 모든 것을 순원 군에게 집중해 주고, 순원 군의 말을 경청하도록 합시다. 그것이 내 졸업 선물이에요. 모두들 좋지요?”

가족 모두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버지의 말에 용기가 생기고, 메뉴를 한번 주문한 뒤부터는 마음이 보다 편해지면서 안정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식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웨이터는 식사 주문을 받을 때마다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나는 설명을 듣고 나 혼자 주문을 마쳤다. 아버지는 간간이, 나이프와 포크는 어떻게 쓰며, 물은 어디에, 주스는 어디에 놓일지도 미리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나를 마치 왕을 모시듯 대접해 주셨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말이 먹혀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 말에도 권위가 생긴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나는 늘 철이 없었고, 가당찮은 웃음거리가 되거나, 떼를 쓰지 않고서 내 뜻을 관철시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사자의 갈기가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나는 나의 몸집이 커지는 듯 느껴졌다.

넌지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정면으로 보였다. 눈부시지 않았다. 아버지도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셨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았다.

내 안에 ‘어른’이 생기고 있었다.

작은 기둥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새삼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았다.

방이 눈에 다 들어왔다. 커튼, 샹들리에는 물론이고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보조의자들도 보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보였다.

아버지가 주문한 주스가 들어왔다.

“우리 순원 군 졸업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어야지!”

우리는 주스 잔을 모두 들었다.

“짠.”

“순원군 졸업을 축하하며!”

“브라보!”

우리 네 가족은 잔을 같은 높이로 들고 부딪치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않던 어른의 말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작은 기둥이 점점 굵어지면서 그 울림통에서 울려 나온 메아리 같았다.

식사는 계속 이어졌는데, 아버지는 식사시간 내내 나를 완전한 어른으로 대접해주셨다. 아이를 대하는 친절한 어른의 표정이나 말투가 아니었다. 어른이 어른에게 하듯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해주셨고, 무슨 결정을 하든, 나의 의견을 반드시 들으시고, 관철시켜 주셨고, 나로 하여금 말을 끝내게 하셨다.

나의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으면,
“순원 군 넥타이가 비뚤어진 것 같아요. 혹시 내 넥타이도 비뚤어졌나요?”
하면서 넥타이를 바로 잡게 하셨다.

그것은 완벽한 ‘존중’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런 사려 깊은 배려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뱃속에 있는 기둥이 더욱 더 중후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더해가는 중후함은,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를 더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자유’라는 것은, 어른의 입장에서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는 선입견과, 어린이 입장에서는 아직도 스스로가 어리다는 자포자기 속에서 내보이는 ‘어리광’같은 치기가 걷혀지면서 나타나는 ‘자유’, 즉, ‘자율’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나의 정신 연령보다 늘 더 어린 취급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어린이’라는 개념의 틀이 보호자에게는 ‘보호’를, 어린이에게는 ‘의존’이라는 무의식을 가두어 기르는 울타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느낄 때가 있었다.

어른의 ‘과잉보호’는 아이의 ‘무한의존’으로 확장되는 순환궤도같이 생각되었었다.

사실 다 안다. 아버지의 의도를….

아버지는 나를 어른스럽게 대접해줌으로써 내가 보다 어른스러워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식사중의 여러 대화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의도를 꿰뚫어 마음껏 어른 흉내를 내보았는데, 그러면서 내 스스로도 ‘내 속의 어른’이 이렇게 어른스러운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배려 속에서 나는 몸도 마음도 아버지만큼 자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다른 어른이 보면 건방지다고 핀잔을 들을 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에 한마디의 지적도 하지 않으셨고 오로지 어른스럽게 대해 주실 뿐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내 스스로의 표정과 목소리와 생각이 어른스러워져 가고 있음에 놀랐고, 그 느낌이 그대로 부모님에게도 공유되고 있음에 다시 놀랐다.

식사는 대단히 즐거웠다.

엄마의 칭찬과 아버지의 긍정.

졸업식에서 우등상과 반장을 했다고 받은 공로상에 부모님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선생님이 나를 얼마나 칭찬하셨는지 하는 이야기로부터, 내가 친구들에게 얼마나 멋진 친구였나 하는 식의 낯 뜨거운 찬사가 이어졌다.

누나는 나의 비밀을 안다는 듯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버지와 엄마는 그런 것은 전혀 무시하셨다.

부모님의 명분 있고 근거가 분명한 칭찬을 들을 적마다, 내 안의 기둥은 더욱 더 굳건해졌다.

급기야는 나도 부모님의 말씀에 어른스럽게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쑥스러운 기분은 이미 다 가셔졌다.

나는 어른이니까….

“아니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중학교에 가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 겸손함이 초등학생의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셨다.

이윽고,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었다.

문이 열리더니, 보기만 해도 이 레스토랑의 사장님으로 알 것 같은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손에는 작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함빡 웃음을 머금고 들어온 사장님은 막상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보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정색 일색의 귀족풍의 옷차림,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묘한 좌석배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감도는 범할 수 없는 기품….

뭐, 그런 것을 느낀 것 같았다.

만면을 웃음으로 애교를 머금고 여사장님은 아버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여기가 초등학교 아이가 졸업했다고 식사하는…
어머, 어머. 저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한 거예요?
무슨 유럽의 귀공자 같아요. 아니, 선생님. 선생님 뭐하시는 분이예요? 재벌 집 2세에요?”

그 여사장은,

나의 자연스럽고도 의젓한 모습과 우리 가족의 단란하고 품위 있는 식사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 내가 입구에서 아버지에게서 보았던 그 아우라를 보았던 것이리라.

“어쩌면, 저렇게 의젓해요? 어린아이가? 다 큰 어른 같네….”

나는 웃음을 머금고 편한 눈빛으로 여사장님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감히 어른에게 이런 눈길을 보내 본 적은 없었다. 어른들은 어른이니까. 그렇지만 그날은 나도 어른이었던 것이다.

여사장님의 칭찬은 듣기에도 민망하였다.

‘어른 같으면서도 건방 끼나 까부는 모습이 어쩌면 저렇게 없을 수 있을까요? 평소에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키셨어요?’ 등.

여사장님의 말이 수다스럽기만 했다.

여사장님은 나에게 꽃다발을 선사하셨다. 그리고는 ‘잠깐만요.’ 하고는 방을 나갔다. 다시 방에 들어온 여사장님 손에는 작은 포장의 선물이 들려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면 가끔 가족 손님들이 오죠. 그러면 꽃다발을 준비한답니다. 제 성의니까요. 하지만, 오늘 손님에게는 안 되겠어요.

이건 형식적인 것이 아니에요. 정말 선물을 주고 싶어요. 졸업을 한 어린이나 부모님이나 가족 모두 이렇게 멋진 졸업 식사를 하는 집은 보지 못했어요. 정말 멋있습니다.”

하면서 나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셨다.

식사가 끝났다.

다리를 달랑거리며 아버지가 앉혀주셨던 높은 의자에서 나는 혼자 내려왔다. 방을 나와 레스토랑 입구에 다다르자, 웨이터들이 다시 모였다. 그들은 줄을 서서 나가는 우리를 배웅하며 일제히 소리를 높였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나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들 사이를 걸어 나갔으나 다리가 떨리거나 비꼬이지 않았다. 웃어주는 그들의 눈빛이 하나도 눈부시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그날의 졸업 식사는 늘 바쁘셨던 아버지의 철저한 연출이었음을….
레스토랑의 선정에서부터 종업원들의 입구에서의 인사나 여사장님의 선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집은 지체 높은 집도 재벌 집 2세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봉급만으로 늘 생활에 쪼들리셨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에게 최고의 졸업선물을 해주셨던 것이다.

가방이나 시계 같은 것과는 기억의 밀도가 다른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졸업선물이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존중’이었다.

아버지는 이 선물을 통해 ‘내 안의 철들은 어른’을 선사하셨고, 한번 그렇게 확인된 ‘내 안의 철들은 어른’은 그 후의 나의 삶에 엄청난 지지대가 되었다.

졸업식사가 끝난 뒤부터 나의 집안에서의 위상이나 언행은 달라졌다. 적어도 나를 향한 ‘존중’이 스스럼없이 가족에게서 스며나왔다.

장담컨대, 그 이후로 곤란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린아이같이 징징거리는 버릇이 거의 없어졌다. 떳떳하게 요구하거나 당당하게 거부하고 깨끗하게 승복했다. 그것은 ‘자율’이었다.

웨이터의 설명을 듣고 혼자서 메뉴를 선택해야 했던,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져야했던 대견한 체험이 나로 하여금 상황을 진중하게 바라보는 버릇을 키워주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그날의 메뉴를 골랐던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것이 삶의 버릇이 되어 버렸다.

어른들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권위에 조건 없이 무릎을 꿇는 비겁함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철 들은 어른’이 나를 깨우며, 상기시키는 기억의 반추 속에서 쌓여진 자존심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교수로서의 긴 연구생활 동안, 아니 성인으로서의 긴 인생동안 나는 ‘사랑’받기보다 ‘존중’받기를 원했다.

‘사랑’은 달콤하고 포근한 것이지만, 간혹 나를 나약하게, 또는 사랑을 쫓는 응석꾼으로 만들지만, ‘존중’은 부드럽고 은은하게 나를 지지하여 독립심이 있고, 타인을 존중하는 믿음직한 전우로 만들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가운데, 업적도 신뢰도 존경심도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존중했고, 또 그들에게 존중받았다.

졸업시즌이 되어 부산한 어느 해 2월, 나는 어렵게 시간을 내어 실로 오래간만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셨던 그 레스토랑에 기억을 더듬어 가보기로 하였다.

몇 십 년만인가?

주변의 거리가 완전히 변하여서 찾기가 어려웠지만, 다행스럽게도 레스토랑은 의연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오래되어 낡아 버렸고, 여사장도 종업원들도 다 바뀌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사뭇 변했지만, 나의 추억을 되살릴 만큼의 분위기는 고맙게도 보전되어 있었다.

우리가 식사했던 그 방도 그대로 있었다.

그 붉은 색 의자하며 테이블, 커튼….

그렇지만 내심 놀랐다.

베르사유 궁전같이 기억되던 그 레스토랑은 지극히 평범한 양식당에 불과한 곳이었다.

나의 추억 속에서 어린 내가 그렇게 거대한 어른이 되었었던 것처럼, 그 레스토랑 또한 내 추억 속에서만 그렇게 화려한 궁전으로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보여주신 그 ‘존중’의 추억도 그렇게 짧은 것이었지만, 나에게는 평생 간직되는 길고 긴 ‘감동’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감동을 레스토랑의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행히 그들은 나를 몰라보고 있었다.

카운터에 비치되어 있는 방명록에 나의 추억이 담긴 감사의 말을 쓰고자 했다. 펜을 꺼냈다. 그리고 방명록에 또박또박 썼다.

“저에게 ‘존중’을 가르쳐 주신 아버님과 이 레스토랑 사장님과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그 ‘존중’의 전당이었던 이 아름다운 감동의 궁전을 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미국 하바드대학 총장”

글 맨 끝에 나는 내 이름을 작게 쓰고 사인을 하였다.

웨이터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나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그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 날 나에게 했던 것처럼,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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