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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사랑에 관하여’ 화가와 시인이 쓴 그림 편지[인터뷰] 화가 강혁
화가 강혁.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30년 지기 고향 친구인 화가와 시인이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애도를 글로 또 그림으로 엮었다.

지난해 친구 박진성 시인과 함께 그림산문집 ‘미완성 연인들’을 출간한 강혁(39) 작가가 오는 8일까지 조치원정수장에서 드로잉 작품 60여 작품을 선보인다.

리모델링을 준비 중인 아직 미완의 공간. 사랑도 작품도 아직은 ‘미완’이라는 두 예술가가 주고받은 편지 같은 그림들. 얼마 전 파리에서 돌아온 강 작가를 지난 27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시인과 화가 둘의 접점에 대하여

내달 8일까지 조치원정수장에서 열리는 '미완성 연인들' 전시 팜플렛.

강 작가와 박 시인은 둘 다 세종시 금남면 용포리 출신이다. 함께 금남초등학교를 다니던 동네친구로 커서는 문학과 미술의 길을 걷다 다시 만났다.

“졸업을 앞두고 저와 박 시인 둘 다 대전으로 이사를 갔고, 커서는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는 사이가 됐어요. 대전에 문화예술 공간 ‘일리아’를 운영하면서 미술과 음악, 와인을 융합한 작업을 이미 하고 있었는데, 유명 시인이 된 친구에게도 콜라보 작업을 제안했죠. 보통 그림은 액자에 들어가야 완성이라고 보는데, 뜯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책 <미완성 연인들>은 강 작가의 드로잉 작품 50여 점이 박 시인의 짧은 글과 함께 원본 크기 그대로 수록됐다. 종이 재질을 살리고, 절취선을 넣어 쉽게 뜯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쉽게 말해 들고 다니는 미술관인 셈.

“밀라노에 있으면서 일 년 반 정도 작업했습니다. 박 시인의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고, 제 그림을 보고 박 시인이 글을 쓰는 경우도 있었죠. 때로는 친구가 이런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예술가로서 이 과정은 주고받는 놀이에 가까웠어요. ”

지난해 박 시인은 문화예술계 전반을 강타한 예술계 성폭력 폭로 피해자가 됐다. 최근 무고 선고를 받긴 했지만 지난 1년은 그에게도 친구에게도 고통의 시간이었다. 이 책 역시 출판기념회도 갖지 못했다.

“지난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출판기념회도 열지 못했어요. 우리 고향에서라도 이 책으로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죠. 세종시문화재단 공모에 선정돼 조치원정수장이라는 특별한 공간도 얻었어요. 조치원은 제 청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리모델링이 된다고 하는데 그 전에 전시를 할 수 있어 저희에겐 더 의미가 크죠. 앞으로 많은 예술인들이 이 공간을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내 인생의 ‘더미’ 그리고 파리

오선지 악보 형태 위에 더미를 소재로 그린 작품.

‘더미’. 외국에서는 자동차 충격 실험에서 쓰는 마네킹을 더미(Dummy)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많은 것이 모여 한 데 모인 덩어리를 더미라고 말한다. 작품 속에서 수 백, 수 천 개의 목각 인형은 유연한 몸통으로 그림의 작은 조각이 된다. 더미가 모여 작품이라는 '더미'를 이루고 있다.

“한예종 졸업 후 30대 초반, 눈코입이 없고 벌거벗은 관절인형을 우연히 만났어요.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던 저와 닮으면서도 압력을 받으면 유연한 형태를 취하는 목각인형. 2011년부터 더미랜드 시리즈를 시작으로 동양적인 느낌을 더한 더미 산수화, 최근에는 데생 방식의 더미 작품을 그리기도 했어요. 조그만 종이에 만년필로 그린 더미 그림이 제겐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파리 이응노 레지던스 제4기 작가로 선정돼 올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월 간 프랑스 파리에서 지냈다. 그가 묵었던 보쉬르센느(Vaux sur Seine)는 파리 시내에서 기차로 40분 떨어진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강 작가는 이곳에서 작품 활동과 오픈 스튜디오 전시를 병행했다.

“파리로 떠나면서 드로잉북을 챙겼지만 사실 쓸모가 없었어요. 사람들은 거리 벤치에 또 휴지통 위에 자기가 읽었던 책을 그대로 두고 가더라고요. 일종의 문화인거죠. 그래서 거리를 다니며 집어온 책 페이지마다 만년필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 그림을 찢어 샹들리에를 만들어 오픈스튜디오 전시 때 설치작품으로 선보였죠.”

그는 3개월 간 기차를 타고 다니며 파리와 인근 유럽 도시들을 여행했다. 종이 소재의 지끈과 맥가이버 칼을 가지고 다니며 줄곧 기차 안에서 미니 더미들을 만들었다. 신기한 시선으로 보는 외국인들에게 그는 종이 더미 인형을 건넸다.

“동양의 예술가를 만난 외국인들에게 더미 지끈 인형을 선물했어요. 이를 특별히 여긴 외국인들이 각자의 감성을 담아 선물받은 더미 사진을 찍어 제게 보냈죠. 무언가를 건네주고 또 건네받고. 새로운 소통을 통해 얻은 사진들은 내달 5일 대전 이응노 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리 레지던스 보고전을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예술 그 경계 너머

책 <미완성 연인들> 속 박진성 시인의 글과 강혁 작가의 그림 작품. 강 작가는 이번 콜라보 활동을 통해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다. 

‘식물처럼 헤어질 수도 있었지’. 박 시인의 글귀에 그가 그린 그림은 설치미술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화분에 꽂혀 있는 뿔테 안경 다리의 끝에는 왠지 노란색 가로등이 걸려 있을 것만 같다.

“파리에 가보니 젊은 작가들의 설치 작품이 거리 곳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놓여 있더라고요.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낙엽이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사람들은 그곳에 앉기도 하고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해요. 전시라는 것도 사실 틀에 박힌 갤러리에서만 열라는 법은 없어요. 색다른 공간에 작품이 놓인다면 사람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죠. 앞으로는 고향 세종시에서 그런 활동들을 해보고 싶어요.”

미술과 음악, 미술과 와인, 최근에는 미술과 문학까지. 현재 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소재로 한 가상현실(VR) 영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독립영화 또는 국제영화제 출품을 위해 감독들과의 미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콜라보 활동을 하면서 느낀 문학적 접근 방식이 큰 도움이 됐어요. 시각적인 감성에서 나아가 문학적인 감성도 많이 채워졌죠.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작품들이 나와 한 단계 발전했다는 느낌도 있어요. 사회비판적이기만 했던 사고에서 서정적인 작품이 탄생하기도 했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책 <미완성 연인들> 표사에서 시인 이제니는 이렇게 말했다. ‘지나간 사랑에 관한 애도의 기록이자 오랜 우정의 편지’. 눈과 입이 없는 더미들의 얼굴에 시인의 단어가 내려앉는다. 

내달 8일까지 열리는 조치원정수장 전시장 모습. 책 <미완성 연인들>에 수록된 드로잉 원본 작품이 누워진채로 전시돼있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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