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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火魔) 뚫고 찾은 인간애, 돌아온 소방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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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火魔) 뚫고 찾은 인간애, 돌아온 소방관 시인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7.10.20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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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신갑 시인
강신갑 시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치솟는 불길과 처참한 사고 현장. 매일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이 3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한 편의 시(詩)였다.

강신갑(59) 시인이 지난해 10월 출간한 시집 <오늘 밤 달이 뜨는가>로 제20회 대전시인상을 수상했다. 2002년 계간 <공무원문학>으로 등단해 2006년 귀천문학상을 수상한 뒤 퇴직 후 수상한 첫 문학상이다.

내달 3일 시상식을 앞둔 강 시인을 만났다. 현재 그는 지난해 2월 세종소방본부에서 퇴직한 후 내년 1월 고향 세종시로의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끔찍한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애’, 시로 승화하다

대전북부소방서 근무 당시 강신갑 시인의 방송 출연 모습. (자료=KBS대전 방송영상 캡처)

강 시인은 1986년 소방공무원에 합격했다. 이후 대전에서 20여 년간 일하다 2016년 2월 세종소방본부에서 명예퇴직했다. 30년 간의 소방공무원 생활을 버티게 한 건 8할이 ‘시’였다.

그는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구급활동을 반복하며 매일 처참한 현장을 봤고, 트라우마도 겪었다”며 “하지만 사람을 구해야하는 절박한 처지에서 느낀 감정과 인간애, 가까스로 구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로써 결집됐다”고 했다.

강 시인은 2002년 계간 공무원 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줄곧 시를 썼다. 출간한 5권의 시집 중 ‘119와 어머니’, ‘119의 마음’ 등의 시집에는 소방공무원 생활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 이야기가 잘 담겨있다.

평생을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소방관의 삶. 대전에서 근무할 때 마주했던 처참한 일가족 방화 사건은 지금까지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들 두 명이 불에 휩싸여 살려달라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아들은 서울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했고, 이틀 뒤 할아버지도 운명을 달리했다”며 “어린 손주 3명도 함께 목숨을 잃었는데, 이후 극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누군가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까지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트라우마는 곧 시로 결집됐다. 이는 강 시인이 생명에 대한 고귀함, 인간에 대한 존엄, 가슴 찡한 희망의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애와 희망 넘치는 시 써내려 갈 것”

제20회 대전시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강신갑 시인의 시집 <오늘 밤 달이 뜨는가>.

62편의 작품이 4부로 나눠 실린 그의 시집 <오늘 밤 달이 뜨는가>는 올해 제20회 대전시인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전시인상은 대전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상으로 최근 2년간 출판된 작품집을 대상으로 심사한다.

선정위원회는 그의 시집에 대해 “영혼이 담긴 농익은 시상과 영롱한 순정이 담겼다”며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인간애와 열정, 가슴앓이를 함축적인 시어와 뛰어난 상징을 통해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강 시인은 “기쁜 마음과 함께 더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든다”며 “독자들이 시를 읽으며 기쁨과 짠한 여운을 느끼길 바란다. 좌절한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오래전부터 습작을 해왔다. 문학적인 감수성은 강 시인의 집안 내력이기도 한데, 대전에서 출판사를 운영 중인 형 강신용 시인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퇴직 후 다시 찾은 고향 ‘세종시’

시집 <오늘 밤 달이 뜨는가> 수록 작품 '독락정'. 독락정은 옛 연기군 남면에 위치했던 곳으로 현재는 나성동으로 편입됐다.

5번째 시집의 제4부는 세종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채워졌다. 운주산성, 독락정, 대평동, 김종서 장군 묘 등을 소재로 썼다. 그의 고향은 금남면 영치리다.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은 내년 1월 이뤄진다.

강 시인은 “내년 고향 세종시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발전한 세종시를 보며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긍지와 자긍심도 든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세종시 발전은 긍정적인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퇴직 후 그는 학교와 대학, 기관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이주 후에는 세종시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채록, 시리즈 시로 발표할 계획이다.

그는 “전월산, 원수산, 오봉산, 장군산, 운주산 등 세종시 산과 둘레길을 걷는 것이 취미”라며 “알려지지 않은 세종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쓰면서 문화관광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세종시는 예향(藝鄕)의 도시”라며 “창립 60주년이 넘은 백수문학, 세종문학, 소금빛문학 등 동인지 활동이 아직까지도 활발하다. 문학적으로도 역사가 깊은 도시라는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30년 간 화재와 싸우던 소방관이 고향 세종시로 돌아온다. 그리운 고향에 관한 시를 쓰고,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다는 강 시인이 제2의 삶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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