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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바람 든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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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바람 든 풍선?
  • 이순구
  • 승인 2017.06.2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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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미술산책] <14-2>파리의 추억 - 마르샬 레스
이순구 화가 | 만화영상학 박사

8월 한 달여의 긴 휴가를 마친 9월의 파리는 분주했다. 그 와중에 프랑스의 기차나 버스를 타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잡지나 신문보다는 책들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들이다. 여행자나 새로운 이주자들보다는 애초의 프랑스인들이 책을 더 읽는 듯하다. 휴대폰이 생기기 이전에는 더 많았다하니 이젠 서서히 이곳도 인터넷의 망령이 퍼지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미술은 바람이든 풍선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은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휘몰아친다. 때론 둥둥 떠다닌다. 미술이 떠다닌다는 생각이 반복해서 꼬리를 문다. 이런 생각의 시발점은 우선 현대미술의 모호함이며 다음으로는 가치의 척도에 대한 불신이다. 아마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에서 벗어나진 못하는 프랑스의 미망과도 같다는 생각이다.

많은 뮤제(musées, 박물관)들을 다니거나 그곳에 있는 작품들을 보아도 개인적인 큰 감흥보다는 인간의 노력에 대한 찬사의 마음이 앞서고, 심지어 그 투쟁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 같아 한편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고대의 유물과 고전적 그림들, 조각들을 보고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퐁피두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에서는 마르샬 레스(Martial Raysse 1936~ )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오달리스크(La grande odalisque)' 마르샬 레스, 믹스미디어, 1964년, 퐁피두센터

그는 프랑스 도자기를 만드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세부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18세에 니스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나 이듬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후 22세 때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와 함께 롱샹(Ronchamp) 갤러리에서 처음 작품을 발표한다.

그는 공장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이나 값싼 소재들을 이용해 새로운 표현방식을 이끌어 냈고 곧 주목을 받았다. 대량생산된 물품과 메스미디어의 이미지는 물론 고전 예술작품까지 소재로 차용해 완성한 작품들은 60년대 네온 불빛, 복사를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작업 방식으로 이어졌다. 1961년 밀라노 전시에서는 개장이후 15분 만에 모든 작품이 팔리기도 했다.

그는 1960년 이브 클라인(Yves Klein), 장 팅겔리(Jean Tinguely), 아르망(Arman) 등과 함께 신사실주의(Nouveau Realism) 운동을 전개했다. 대중소비 문화를 상징하는 시각적인 소재로 작품을 창조하기보다 오브제나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들은 1960년대 초 앵포르멜 미술에 대응해서 일상의 오브제와 메스미디어의 이미지들을 미술에 적극 수용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네온과 과감한 원색계열들로 현란한 그의 초기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화면의 다양한 시도들은 복사한 다른 화가의 이미지를 오려서 붙여 일부만 채색하거나 바탕에서 조금 들어내 입체적인 변화를 주었다. 변형된 사각의 캔버스를 이용하기도 하고 한쪽 귀퉁이가 접힌 모형의 캔버스를 그려 눈속임하기도 한다. 때론 캔버스를 겹치기도 했다.

요즘 미술의 방법론으로 생각하면 기본적인 것들이나 50, 60년대를 생각하면 대단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 주제들 또한 소비사회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 한 작품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당시의 프랑스, 현대미술을 뉴욕에 빼앗겼던 시기임을 생각하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시도로 점철된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시기가 지나면서 소비사회의 현실적 이미지 보다는 고전적 회화 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맞이한다. 입체물과 설치물, 조각과 얼굴 표정의 평면작품, 그리고 종래에는 다양한 군상들의 신화나 사회적 참여의 구상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초기 작품의 실험성에 비해 회화로 상당히 복귀했다는 점에서 약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종종 있는 일이기에 이해는 간다.

'그랑드 오달리스크' 앵그르, 캔버스에 유채, 91㎝×162㎝, 1814년, 루브르박물관(프랑스 파리)

여기에 소개하는 ‘그랑드 오달리스크 (La Grande Odalisque)’의 원작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Ingres, Jean Auguste Dominique, 1780-1867)의 1814년 작이다. 신고전주의 대표작가인 앵그르의 이상적 여인상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뼈가 없는 팔이라든가 척추가 세 개나 더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처럼 아름다움을 위해 인체를 과감히 변형시켰으나 일반적으로는 잘 눈치 챌 수 없는 이상적 인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매력이며 그래서 지금도 앵그르의 작품 앞에는 많은 관객이 몰려있다.

마르샬 레스는 이 작품의 얼굴부분을 1964년 당시 처음 나온 복사기를 이용해 확대 복사한 뒤 인체는 녹색으로 형광색채를 입히고 머리에 쓴 두건은 화려하게 변신시켜 물질성을 극대화 시켜 기존 회화에 대한 강한 반박과 변형을 추구한다.

배경의 붉은 색과 그 상단에 앉은 파리 한 마리는 이런 속된 물질성과 즉물성에 무엇인가 일침을 가함과 동시에 그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게 된다. 유난히 앵그르의 작품이 여럿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전적인 미와 고급예술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문화의 단순한 반영을 넘어 냉정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있다. 다양한 오브제와 화려한 문양, 달콤한 색채는 그 속에서 우리 삶의 이중성과 허무를 드러낸다.

전시장의 후반부는 그의 후기작들로 구성됐는데 자연과 과거로의 회귀가 드러나며 종교나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들로 이루어졌다. 아마 당대의 비판적이며 풍자성이 스스로 허무해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들은 제각기 말을 한다. 자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누구에게나 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대형화면의 천정화나 역사화가 그 가치를 자랑하는 것이나 퐁피두의 다른 전시장에 걸린 다듬어지지 않은 각목에 못하나 박아 놓은 페르난다 고메스(Fernanda Gomes, 1960~ )의 ‘못’된 작품 2012년 작 <무제>는 분명 동일한 가치는 아니라는 생각이 꼬리를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퐁피두센터를 나오면서 현대미술은 바람이든 풍선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무제' 페르난다 고메즈, 각목에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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