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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린 악녀 메데이아[박한표의 그리스·로마 신화 읽기] <18-2>황금양피를 손에 넣은 이아손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아르고호 원정대’란 이름은 그들이 타고 갈 배를 만든 명장 아르고스의 이름에서 나왔다. 아르고는 ‘쾌속’이라는 뜻이니 직역하면 ‘쾌속선 원정대’다. 이 원정대에는 이아손을 비롯해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쌍둥이 장수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에 이르기까지 ‘한다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 55명이 함께 한다.

황금양피의 땅 콜키스에 닿기 위한 여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어떤 뱃사람에게도 녹록치 않은 흑해를 건너고, ‘맞부딪히는 두 개의 바위섬’ 심플레가데스의 사이를 꿰뚫고 지나가야만 한다. 이아손 일행이 심플레가데스, 그 죽음의 고랑을 피네우스의 지혜를 얻어 돌파하는 광경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아르고호 원정대가 항해를 시작한 이후 맨 처음 땅에 오른 곳이 헤파이스토스의 섬 렘노스(Lemnos)다. 이곳 여자들은 아프로디테 여신을 섬기는 것을 아주 게을리 했다.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여자들의 몸에서 악취가 풍기게 해 남편들이 아내를 멀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남편들은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고 바다 건너 트라키아에서 약탈해온 여자들하고만 사랑을 나눴다.

‘아르고호 원정대의 출발’ 도소 도시, 캔버스에 유채, 89×60㎝, 1510년경, 워싱턴내셔널갤러리(미국)

이에 질투를 느낀 렘노스 섬의 여자들은 의기투합하여 남편들을 모조리 몰살했다. 섬은 여자들만의 왕국이 되었다. 오랫동안 남자들 없이 살아가던 그녀들이 마침 섬에 상륙한 영웅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자 그들은 그곳에 눌러 앉을 태세였다. 하지만 목적을 잃어버린 이 행동을 비난하며 정신 차리게 해 준 헤라클레스의 경고로 다시 모험을 계속하게 된다.

그 다음 도착한 곳이 미시아 해안가였다. 그 곳에서 헤라클레스는 미소년 친구 힐라스를 잃고 그곳에서부터 모험을 포기한다. 숲 속으로 물을 찾으러 간 힐라스는 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샘의 요정들이 그를 물속으로 끌어당겨 샘에 빠져 죽게 한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잃어버린 친구 필라스를 찾아 헤매다가 아르고 원정대에 합류하지 못했다.

‘힐라스와 님프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캔버스에 유채, 132.1×197.5㎝, 1896년, 맨체스터아트갤러리(영국).

 그 후 비티니아 반도에 도착한다. 그 곳에는 아미코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이방인들이 들어오면 권투 시합을 해서 주먹으로 때려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는 아르고 원정대의 대표로 뽑힌 쌍둥이 형제 중 하나인 폴리데우케스가 휘두른 주먹에 목숨을 잃는다.

이어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앞을 보지 못하는 현자 피네우스가 사는 곳이었다. 피네우스는 원정대에게 남아있는 가장 큰 어려움인 두 개의 바위섬 심플레가데스 사이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다. 피네우스가 눈이 멀게 된 것은 현자이지만 제우스의 뜻을 함부로 인간들에게 알려 준 죄 때문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배고파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저주가 내려져 있었다. 음식을 먹으려고 손을 들면, 어디선가 괴물 새인 하르피아이가 날아와 음식을 가로채 갔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듣고, 피네우스를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도록 그 새를 쫓아주자 심플레가데스를 통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두 바위섬은 그 사이로 물체가 지나가면 서로 부딪혀 가루로 만들었다. 피네우스는 먼저 비둘기를 통과시킨 후, 부딪히자마자 벌어지는 순간을 이용하여 그 사이를 통과하라고 일러준다. 이것을 이윤기는 ‘문’이라고 했다. 어떤 문이든지 한 번 열면, 활짝 열리고 마는 문이다.

영웅 이아손이 지나간 뒤부터 이 바위 문은 서로 맞부딪치기를 그만두고 활짝 열리고 만다. 우리 각자는 나만의 심플레가데스가 있다. 우리 각자는 반드시 넘어야 할 ‘문’을 가지고 있다. 그 ‘문’을 건너야 한다.

원정대는 우여곡절 끝에 콜키스에 도착했지만, 그 나라 왕 아이에테스는 이아손에게 황금양피를 얻기 위한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다. 그 조건은 이랬다. 불을 뿜는 황소에게 쟁기를 매워 아레스의 밭을 갈고, 씨앗대신 용의 이빨을 뿌려 거기에서 솟아나는 전사들을 모두 죽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불 뿜는 황소에 접근할 수 없다. 순식간에 타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아손은 콜키스의 공주로 자신과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그 어려운 일을 해결한다. 여기서 팜므 파탈 메데이아가 등장한다.

이아손을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는 깊은 갈등에 빠진다. 이아손의 수호신 헤라의 부탁으로 아프로디테가 아들 에로스를 시켜 힘을 썼기 때문이다.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해야 하는 양심의 가책과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열정 사이의 갈등.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그리스로 데려가 아내로 삼아 달라는 조건과 함께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아손에게 가르쳐준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약물이 든 호리병 하나를 주며 과업을 시작하기 전에 온몸과 무기에 바르라고 말했다. 그 약물은 하루 동안 황소의 불로부터 보호해 주는 약이었다. 이어 땅에서 전사들이 솟아나오면 일일이 대적할 생각을 말고 그들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을 던지라고 귀띔해 줬다. 그리고는 전사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다 전멸한다고 일러줬다.

‘황금 양털을 손에 넣는 이아손’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 캔버스에 유채, 55.6㎝×81㎝, 1742~1743년경, 런던내셔널갤러리(영국).

이아손이 모든 과업을 완벽하게 해내자 아이에테스 왕은 딸의 개입을 눈치 챘다. 왜냐하면 마법의 약초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딸 메데이아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에테스는 이아손에게 며칠 뒤 황금양피를 넘겨주겠으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이아손 일행을 몰살할 계획을 세웠다. 아버지의 속내를 알아차린 딸 메데이아는 긴급한 사정을 이아손에 말해주며 황금양피를 탈취해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황금양피는 숲 한가운데 커다란 참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그 옆에는 절대 잠들지 않는 용이 눈을 부릅뜬 채 지키고 있다. 그러나 마법사이기도 한 메데이아가 멀리서 주문을 외우며 마법의 향수를 뿌리자 용은 스스로 눈을 감았다. 이아손이 그 사이에 참나무 가지에서 황금양피를 잽싸게 걷어냈다. 그리고 이아손과 메데이아는 그 길로 아르고 호에 승선해 서둘러 출항했다.

그러자 메데이아의 아버지 아이에테스는 아들 압시르토스를 보내 이아손 일행을 추격한다. 콜키스의 추격 팀은 지금의 다뉴브 강인 이스트로스 강어귀에서 이아손 일행과 마주친다. 이에 메데이아가 협상하자며 동생을 함정으로 유인하자, 이아손이 그를 살해했다.

또 다른 버전이 있다. 이아손 일행이 도망칠 때 메데이아는 동생을 유괴했다고 한다. 곧바로 추격한 아버지에게 거의 잡힐 찰나에 그녀는 동생을 토막 내 바다에 뿌려, 아들의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지체하는 아버지를 따돌렸다는 것이다. 메데이아가 악녀로서의 첫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박한표  sjpost@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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