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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욕망의 강,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이순구의 미술산책] <10>히에로니무스 보쉬의 ‘바보들의 배’

마음이 무겁다. 세월은 그렇게 오고 가건만 여느 봄과는 다르다. 가슴이 먹먹한 이 시대에 미술은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그러다 떠오른 작품이 있다.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풍자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의미로 책이 써졌으며 같은 주제로 영화화되기도 했고, 푸코(Michel Foucault)의 <광기의 역사> 도입부에 쓰인 것으로도 기억된다.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1450~1516)는 네덜란드 출신의 중세를 대표하는 종교화가다. 특이한 색채로 이상한 괴물, 납속의 유령, 텅 비어 있는 눈과 특이한 몸을 가진 사람, 무서운 지옥 등 상상의 세계를 많이 그렸다. 악마주의라는 오해도 받았으나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보쉬의 <바보들의 배(The Ship of Fools)>는 세로로 길쭉한 화면에 언뜻 보면 자그마한 정원 같은 곳에 소풍 나온 전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다에 떠있는 한 척의 배위에서 일어난 정경이다. 이 작품은 많은 알레고리를 포함한다. 이러한 상징성이나 우의적인 표현은 19세기에 이르러 도상학(Iconography)으로 발전한다.


이 그림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시점에 그려졌다. 무질서와 범죄가 넘쳐났으며 탐욕과 정욕이 넘치는 혼돈의 사회였다.


<바보들의 배>의 구성요소들은 많은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 배를 타고 있는 일곱 명의 중심에는 탁자를 가운데 두고 수도사와 수녀 복장의 두 인물이 위에서 내려뜨려진 팬케이크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흐릿한 눈빛과 벌린 입은 찬양이라기보다는 욕망의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수녀복장의 인물은 둥근 구멍이 있는 하얀 악기 라우테(laute)를 들고 있다. 이 악기는 당시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은닉된 음란함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 은닉된 음란함은 중세사회에서 수도승과 수녀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엄격한 규율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한자리에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탁자 위의 버찌 열매는 사랑의 징표이다. 배에 실린 술통과 술병, 돛으로 여겨지는 나무위에는 커다란 거위고기가 이들의 폭식과 폭음을 말해준다.


배위의 상황과는 다르게 물속의 벌거벗은 두 인물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향락의 음식을 제공한다. 노예들이다. 이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찾아볼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정처 없이 떠도는 배에는 두 나무가 그려져 있다. 하나는 인식의 나무이고 하나는 바보가 올라앉아 있는 나무이다.


인식의 나무는 선악을 구분할 줄 아는 선악과의 표상이다. 예전이나 오늘날에도 인식의 나무를 소유할 수 있는 자는 지식인과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인식의 나무를 가운데 세우고 배가 천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자들이다. 대중을 선도하고, 선을 판별하고 악을 규정하는 것도 그들의 지식이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 배를 따르고 숭상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권력자들이나 성직자들의 성스러운체하는 허식의 외설적인 이면을 보여준다.


화면의 중심을 가르는 인식의 나무에는 큰 거위 고기가 묶여있다.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의 형상은 거위 고기를 가져가려는 육욕적인 남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나무 위의 꽃다발은 그 나무에서 피운 것이 아니라 꺾어다 매어 놓은 상태이다. 이로써 나무 자체는 죽어있으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 나무의 시들은 잎사귀 속에 사람 해골 같기도 하고 올빼미 같기도 한 얼굴이 보인다. 올빼미는 지혜의 새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의 정황은 지혜는 보이지 않고,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예시한다.


이 나무의 중턱에 휘날리는 깃발은 초승달 문양의 이교도를 상징한다. 그러니 이교도 깃발아래 성직자들이 흥과 육욕에 취해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무에는 중세시대 전형의 바보의상을 입은 남자가 무엇을 마시는지 그릇을 들고 앉아 있다. 복장은 당시 유행하던 ‘바보축제(Feast of Fools)’의 바보복장이다. 이때 남자들은 바보의상을 입고 여러 가지 장식물로 치장을 했다고 한다. 장식물로는 방울을 달았으며 손에는 자기애의 허황됨의 상징인 거울을 들거나 남성들의 성징인 지팡이나 곤봉을 들기도 했다.


지팡이 꼭대기에 대부분 나무로 새긴 바보들의 얼굴상이 달려 있으며, 이것은 곤봉과 더불어 제어되지 않는 육체의 욕망을 상징한다. 또한 모자에 당나귀의 귀를 달고 있는데, 이는 어리석음의 표상을 의미한다. 더 비참한 인간은 그 바보나무 아래 토하는 인물이다. 얼마나 많은 욕망들을 먹었기에 바보나무를 잡고 시꺼먼 강으로 오물을 토해내는 걸까.


화면 왼쪽의 여성은 배 밑에 반쯤 누운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지 병을 높이 치켜세우고 미소를 보낸다. 그들에게도 모종의 거래가 있는 듯 표정들이 오묘하다. 이 배위에 오른 사람들의 운명은 탁자 위 주석잔 속에 있는 주사위와도 같다. 무슨 숫자가 나오든 그들의 방탕과 방종의 삶은 이미 운명 지워진 것이다.


이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검은 욕망의 강을 부유하는 이 현상은 미래도 이상도 없는 썩어가는 물길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바보들이 탄 배는 결국 그들만의 축제이므로 파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만이 된다는 자만심, 이기심, 무뇌증, 도덕성의 부재, 철면피, 악덕 등의 단어가 떠오르며 우리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바보들의 배>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순구  webmaster@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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