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스스로 자연이 되는 '엑스터시'
상태바
인간 스스로 자연이 되는 '엑스터시'
  • 박한표
  • 승인 2017.04.02 15: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15-4>그리스 비극의 탄생

디오니소스 축제는 원래 비밀의식으로 한밤중에 거행됐다. 신자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차지했는데, 그들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때로는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관습과 금기를 벗어난 원시적 힘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오니소스 주위에는 그들의 무리인 마이나데스(디오니소스 여신도)와 사티로스, 요정(님프) 등 추종자들이 따랐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그리스 예술의 극치인 비극이 태어난다. 비극을 뜻하는 영어 ‘Tragedy’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dia’다. ‘trago’란 양이고, ‘dia’는 노래란 뜻이다. 그러니까 ‘양의 노래’란 뜻이다. 초창기 그리스 비극은 배우와 합창단이 염소의 탈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비극은 겨울에 개최된 디오니소스 축제(디오니시아, Dionysia)에서 유래한 것이다. 디오니소스 여신도들이 가면을 쓰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던 전통에서 연극이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면은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사티로스의 가면이 사용됐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비극의 탄생>에서 조형예술(조형 의지)로 대표되는 아폴론적 예술과 해체 의지인 음악으로 대표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의 대립과 투쟁, 균형과 조화 속에서 예술의 정수인 그리스 비극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자연으로부터 이탈해 개체화된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대자연의 엄청난 공포와 전율, 그리고 엑스터시(무아경, 無我境)인 디오니소스적 내용을 아름다운 가상(假像)을 만들어 내는 조형 의지인 아폴론적 내용으로 표현된 것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 비극 속에는 두 가지 예술적 충동이 나타난다. 니체는 이를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이 두 충동이 다투는 듯 그리고 화합하는 듯 형성해나가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디오니소스의 세계는 세계의 원상(原像)이고, 아폴론의 세계는 가상(假像)의 세계다. 자연으로부터 이탈되어 개체화된 인간에게 세계의 원상은 너무나 벅찬 공포와 전율이다. 예컨대, 대우주와 대자연의 파노라마, 별들이 품어내는 원초적인 강렬한 빛과 열기, 신비스러운 자연 현상 등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상 앞에서 우리들의 삶을 가능하도록 하려면 일종의 ‘보호막’이 필요하다. 니체는 아폴론의 세계를 이러한 보호막으로 해석한다.


아폴론은 공포와 전율의 원초적 카오스(혼돈)로부터 코스모스(질서)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인간은 아폴론이 조형해주는 가상(환상의 세계)을 조용히 관조함으로써 폭풍노도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조각배 안에서도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아폴론의 세계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인간 개체의 한계를 지켜주는 절제와 중용 그리고 평정심이다.


이는 아폴론이 조형하는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다. 이 세계가 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중용’의 세계다. 그 선을 넘어 과도함의 상태로 들어가면 개체의 한계는 허물어지고 가상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예기치 않은 실수나 이탈에 의해 개체의 원리(정체성)가 깨어질 때,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솟아난다.


디오니소스의 세계에서는 개인과 개인 간의 벽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간의 벽 또한 허물어지고 서로 화해하는 ‘대향연(공포와 전율+황홀한 도취)’이 일어난다.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인간은 대자연의 도도한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인간 스스로가 자연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체에게서 디오니소스는 초인(초인)이고,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보자. 인간은 너무 큰 소리나 지나치게 밝은 빛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것을 견디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과도한 기쁨이나 슬픔도 감내하기 어렵다. 기쁨과 슬픔과 같은 감정이 지나치면 미칠 지경이 되거나 미쳐버린다. 심하면 죽기도 한다. 그래서 아폴론의 세계가 말하는 절제와 중용이 이를 방지해준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아폴론의 보호막은 우리를 평화롭게 해주지만, 약동하는 생명력, 힘찬 에너지를 앗아가기도 한다. 그리하여 디오니소스를 모시게 되면, 그는 아폴론의 보호막을 찢어버리고 시들어가는 개체에 원초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넣어준다.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간의 투쟁과 화합의 산물이지만, 비극의 궁극적 본질은 아폴론의 가상의 세계를 넘어선 디오니소스의 찬양(디티람보스, Dithyrambos)이다. 이성 중심의 합리주의에 뿌리를 둔 유럽 시민 사회의 편협함과 고루함에 질식할 것 같았던 니체에게 산소 같은 바람을 넣어준 것은 ‘아폴론적인 것’에 대비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