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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난수 장군의 충절과 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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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난수 장군의 충절과 절개
  • 조희성
  • 승인 2017.03.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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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성의 스케치기행] 나성 독락정(羅城 獨樂亭)


정유년 설 연휴에 내린 잔설이 채 녹지 않은 세종시의 겨울. 며칠째 이어진 한파로 이면도로 그늘은 아직도 얼음판이다. 전월산 너머 호수공원을 거쳐 몰아치는 강바람 역시 매서운 한겨울을 실감하게 한다.


모처럼 시간 내서 찾은 나성동이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 물결 따라 자전거 길로 독락정(獨樂亭)에 이르렀다. 금남교를 달리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잠시 화첩을 펼쳐 나만의 스케치 세상에 접어든다.


고려때 공조전서를 지낸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은 고려 말 32세의 나이로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오른팔이 적에게 잘리자 잘린 팔을 화살집에 꽂고 계속 싸워 전승을 이끌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임 장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와 충절로 관직을 버리고 충청도 공주목 삼기촌(현재 세종시 남면 양화리)에서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은 후 세종이 1407년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에게 명해 임난수의 사당에 임씨가묘(林氏家廟)라고 쓴 액자를 상으로 내리고 나성리, 양화리 일대의 토지인 지금의 세종시 예정지를 하사했다. 영조(1679년) 때는 송시열이 고려 3충신으로 찬술해 3년 후 ‘고려 임장군 신도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나성 독락정(羅城 獨樂亭)은 1437년 임난수 장군의 아들 임목(林穆)이 선현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임목은 금강월봉(錦江月峰) 아래 은거하며 16년을 지내다 타계했으며 그 후 650년간 부안 임씨 후손들이 전국 최대의 집성촌을 이뤄왔다.


탄핵정국과 대선을 앞두고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태평성대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절실한 가운데 오늘날 고려충신 임난수(林蘭秀)장군의 충절과 절개가 더욱 그리워진다.

         

                             

글·그림 조희성(생활미술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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