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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고 감상적인 ‘바다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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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고 감상적인 ‘바다의 신’
  • 박한표
  • 승인 2016.11.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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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5>포세이돈

힘 비해 지략 모자라 땅에 대한 지배권 상실
자식들 하나같이 괴물, 제우스 후손들에 제거
자연·비합리성에 대한 인간·이성의 승리 상징


‘바다의 신’ 포세이돈. 로마신화에서는 넵투누스(Neptunus)로 불리고, 영어로 표기하면 넵튠(Neptune)이다. 넵튠은 해왕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원래 땅과 인연이 깊은 신이었다. <일리아드>에서 포세이돈은 ‘대지를 흔드는 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지를 뒤흔드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땅의 파괴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제우스가 올림포스에 자리 잡은 이후 포세이돈의 위상이 바뀐다.


티탄 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한 후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3형제는 올림포스 시대를 열고 천하를 3등분한다. 제우스는 하늘을, 하데스는 지하 세계를, 그리고 포세이돈은 바다를 각각 나누어 맡는다. 그리고 올림포스와 땅은 공동 관할하기로 협약을 맺는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점점 땅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해 간다. 포세이돈은 도시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아테나와 겨뤄 패했고, 아르고스의 관할권을 놓고는 헤라에게 졌다. 그런가 하면 가이아와 공동으로 관리하던 델포이도 아폴론에게 빼앗겼다. 이는 포세이돈이 땅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포세이돈이 폭풍 같은 성격과 힘에 비해 지략이 모자랐던 탓이다. 포세이돈은 독주를 막으려고 헤라, 아폴론, 아테나와 연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아폴론과 함께 트로이로 귀양 가는 신세에 처하기도 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으로 검푸른 바다를 무대로 삼지창 트리아이나(Triaina)를 휘두르며 파도를 일으키고 해일을 휘몰아친다. 제우스에게 밀려나서 힘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포세이돈은 여전히 거칠고 위협적인 존재다.

 


포세이돈의 성품은 폭풍에 요동치는 성난 파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제우스와는 반대다. 제우스가 보여주는 냉철한 현실 감각과 탁월한 정치력 같은 모습이 포세이돈에게는 없다. 포세이돈은 이것저것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술수도 모르고, 잔머리도 안 굴린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과 느낌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성급하고 직선적이며 변덕스럽다.


좋게 보면 순진하고 감상적이다. 제우스가 현실주의자라면, 포세이돈은 낭만주의자다. 포세이돈은 계산을 모르는 순정파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중 누구를 친구로 삼겠느냐고 묻는다면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반면 제우스는 조직의 리더로 적격이다. 제우스는 득과 실의 관계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득이 되면 싫은 일도 하고, 실이 되면 하고 싶은 일도 안 한다. 포세이돈은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한다.


트로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서 포세이돈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포세이돈은 전쟁 동안 그리스 편을 든다. 그 이유가 매우 간단하다. 트로이 성은 포세이돈이 아폴론과 함께 귀양살이하면서 쌓아올린 성이다. 그런데 그 당시 트로이의 라오메돈 왕이 약속한 품삯을 주지 않아 화가 치밀어 트로이에 등을 돌렸던 것이다. 그리고 복병을 숨긴 목마가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의 경고로 발각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에서 커다란 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 세 부자를 휘감아 죽게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그리스 측의 승리로 끝나자, 포세이돈의 마음이 변한다. 이때도 이유가 너무 간단하다. 그리스 군대가 자신이 쌓은 트로이 성을 부수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편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오는 10년 동안 바다에서 갖은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포세이돈도 제우스와 마찬가지로 여신과 요정, 인간에 걸쳐 수많은 애인을 두었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괴물이나 난폭한 자들뿐이었다. 그들의 운명은 순조롭지 못했고, 대부분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같은 영웅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오디세우스를 괴롭힌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족 폴리페모스(Polyphemos), 레토를 겁탈하려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맞은 거인 티티오스(Tityos), 지나가는 행인을 침대에 눕히고 몸이 침대보다 길면 잘라내고, 짧으면 잡아 늘리는 괴물 프로크루스테스(Prokrustes), 깊은 바다에 들어가도 어깨까지밖에 물이 차지 않아 바다 위를 걸어 다니던 오리온(Orion), 헤라클레스에게 씨름으로 도전한 거인 안타이오스(Antaios) 등이 모두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이 괴물들은 대부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등의 올림포스 2세대 신들이나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등과 같은 영웅들에게 퇴치 당한다. 제우스의 자식들에게 포세이돈의 세력들이 제거된 것이다. 결국 포세이돈은 제우스에게 완패했다. 포세이돈의 패배는 괴물, 즉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이성의 승리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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