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인간세계 정착하기 전 수혈의 역사적 비극과 뒷얘기
상태바
인간세계 정착하기 전 수혈의 역사적 비극과 뒷얘기
  • 이승구
  • 승인 2016.08.16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구박사의 명화와 삽화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2> 수혈(輸血)의 시작

늙거나 병들어 빈혈이 심한 사람, 심하게 다쳤거나 전쟁터 및 출산 중에 출혈이 심할 경우 젊음과 생기 회복은 물론 상처 치유와 생명을 되찾기 위해 몇 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회춘하기 위하여 젊은 아동들을 데리고 지내거나 무당에게 굿을 하거나 약초 달인 한약을 오랜 기간 복용하였을 수도 있었고, 상처에는 옷을 찢어 꽁꽁 동여매거나 풀이나 약초를 짓이겨 바르며 자연 치유되도록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여러 부작용과 염증의 악화로 상처가 덧나 더 오래 고생한 것은 아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천년도 더 지난 당시에는 그 모든 치료법들이 최선의 민간요법들이었으려니 생각하니 옛 사람들의 무지에 놀랍기도 하고 실소(失笑)를 띄우기도 한다. 하지만 숙연한 생각도 든다.



현대의 안정적 수혈방법이 확립되기까지는 약 600년의 오랜 기간과 무수한 우여곡절, 그리고 고귀한 생명의 속절없는 희생들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 뒤에는 우연한 발견과 그 사실들을 예의주시한 명철하고 용감한 의사들의 혁신적 사고와 무모한 시도들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기원전 2000년 전의 고대 이집트에도 건강한 혈액을 이용하여 늙거나 병든 사람에게 젊음과 생기를 부여하겠다는 문학 작품 속의 구절이 있다.


문헌상 최초의 수혈은 1492년 로마 교황 이노센트 8세로, 그는 임종 시 생존을 목적으로 소년 3명의 피를 마셨으나 4명 모두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후 인체의 혈액순환 체계를 해부학적으로 잘 정립한 영국의 윌리엄 하비(1578-1657)가 혈액순환론을 통해 인체 생리학을 소개했다.


1654년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폴리와 1666년 옥스퍼드의 리처드 로어는 개 실험을 통해 우리 몸을 돌아 폐로 들어가는 검붉은 피가 폐를 거치면서 산소공급으로 건강하고 선명한 색이 됨을 밝혔다.


이후 의사들은 동물과 동물 간 수혈실험을 통해 1667년에는 로어가 한 환자에게 양의 피를 수혈했고, 같은 해 프랑스 소르본대학 장 밥티스트 드니가 똑같이 양의 피로 첫 수혈은 로어 자신에게,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15세 소년에게 시행하여 후유증 없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1667년 7월 24일 수혈을 받은 스웨덴 남작 에릭 본테는 송아지 피를 수혈 받고 바로 사망하였다. 이후 1670년대까지 드니의 몇 차례 수혈 성공사례가 있었으나, 동물과 사람간의 수혈은 곧 폐기 되었다.


우리 몸은 다른 혈액형의 피가 섞이면 혈관내 피가 응고되면서 급성신부전과 심장이상의 합병증으로 죽음에 이른다. 동물과 사람의 피가 질적으로 다르고 사람에게 존재하는 혈액형으로 인해 인간 사이의 수혈에도 비적합형이 있음을 전혀 몰랐던 만큼 당시 수혈을 받았던 많은 이들의 비극적 결과는 심각했다. 마침내 1968년 프랑스 파리 시장은 모든 수혈을 금지하였다.


이때부터 수혈은 200년 이상 침체시기를 거치다가 1880년 우연히 런던의 한 의사에 의해 최초의 가족 간 수혈이 진행된다. 여동생의 난산 과정을 지켜보던 중 동생이 출혈성 쇼크 상태로 사경을 헤매자 자신의 피를 급히 수혈하여 생명을 구한 것이다. 이는 가족 간 혈액형의 유사성과 O형과 같이 누구에게나 피를 줄 수 있는 소위 보편적인 혈액이 두 사람 간에 작용했던 행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사람간의 선택적 수혈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행된다. 마침내는 20년 후 혈액형의 발견과 함께 수혈사의 전환기가 도래했다.


190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칼 란트슈타이너가 인간에게는 A형, B형, O형 세 종류의 혈액형이 있다고 발표하였고, 다음해에는 드카스 텔로가 새로운 혈액형 AB형을, 그리고 미국인 알렉산더 위너와 칼 란트슈타이너가 공동으로 RH형을 발견했다.


이후 사람의 정상 혈액은 혈액세포의 특정한 형태에 맞서는 응집소(항체)를 갖고 있어서 만일 수혈자와 공혈자의 혈액형이 달라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키면 급성신부전과 심정지 등의 중증 사망원인이 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동물과 인간간 수혈은 애초 생각할 수 없는 수혈법이었고, 같은 혈액형을 수혈하거나 응집되지 않는 O형은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혈액형임이 밝혀지면서 과거 600년에 걸친 동물 대 인간, 인간 대 인간의 수혈의학이 인간 대 인간간의 혈액 적합형 현대의학으로 확립되었다.


사람의 적혈구에는 500개 이상의 항원이 존재하며 이들 항원에 의해 ABO혈액형이 결정된다. 혈액형의 분포는 인종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한국은 A형이 평균 34%, O형 28%, B형 27% AB형 11% 정도다.


혈액형을 결정하는 항원은 적혈구 이외의 다른 조직에서도 발견되는데 백혈구중 하나인 림프구나 혈소판에서도 비록 수는 적으나 AB항원이 있으며, 혈장이나 침 속에도 혈액형 물질이 존재한다. 따라서 법의학적 이용이 가능하다.
 
칼 란트슈타이너는 1930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대전선병원 이승구 박사 약력]


-현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전문진료분야>

-소아정형, 골·관절 및 연부조직 종양, 수부정형, 류마티스질환
-골절정복술, 건, 인대, 신경수술, 양성종양절제술 등 1만6400여 수술례 


<주요 약력>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주임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부원장
-영국 옥스포드 Nuffield Center 정형외과센터 유학
-근정포장 및 훈장(2004)/ 옥조근정훈장(2013)
-SICOT 및 WPOA 국제위원
-대한골관절종양학회 회장(前)
-대한수부외과학회 회장(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